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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5=<div style="text-align:justify">3월 26일 전에는 한국의 항구인 {{선교사편지공간태그|[[제물포]]}}로 가는 배가 없어서 그때까지 {{선교사편지공간태그|[[헵번의 사택(요코하마)|헵번 박사 댁]]}}에 머무르려 합니다. 그러는동안, 일본으로 망명해 {{선교사편지공간태그|[[요코하마]]}}에 있던 몇몇 한국인들<ref>박영효, 서광범, 김옥균</ref>의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제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었고 그 보답으로 저는 영어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한국어에 관한 책은 몇 권 볼 수 없지만 저는 그 책들을 얻게 되었고 그것들의 도움을 받으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div>
 
|번역문5=<div style="text-align:justify">3월 26일 전에는 한국의 항구인 {{선교사편지공간태그|[[제물포]]}}로 가는 배가 없어서 그때까지 {{선교사편지공간태그|[[헵번의 사택(요코하마)|헵번 박사 댁]]}}에 머무르려 합니다. 그러는동안, 일본으로 망명해 {{선교사편지공간태그|[[요코하마]]}}에 있던 몇몇 한국인들<ref>박영효, 서광범, 김옥균</ref>의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제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었고 그 보답으로 저는 영어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한국어에 관한 책은 몇 권 볼 수 없지만 저는 그 책들을 얻게 되었고 그것들의 도움을 받으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div>
 
|번역문6=<div style="text-align:justify">현재로서는 그것이 그리 큰 문제로 보이지 않지만 저는 아직 그러한 어려움에 직면하기 전(前) 상태에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같은 여성을 통하지 않고서는 한국 여성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더욱이 이렇게 하는 것도 현재 결혼한 여성만이 할 수 있습니다. 미망인이나 젊은 미혼 여성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선교사 부인 자격으로 가는 것이 아닌 이상, 여성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가는 것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만 만일 지금 일본으로 몇 사람이 보내진다면 이곳에서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을 것이고, 길이 열리자마자 한국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틀림없이 머지 않아 길이 열릴 것이라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박사님께서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 의사를 통해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미혼 남성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매우 적은 이곳 현지의 상황을 고려할 때 "본부에서 기혼 남성을 보내는 것이 타당하다"는 말을 저는 사방에서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알렌 의사는 편지를 통해서 저에게 일본에서 기다리는 동안 결혼하여 기혼자로서 한국에 들어 올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일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div>
 
|번역문6=<div style="text-align:justify">현재로서는 그것이 그리 큰 문제로 보이지 않지만 저는 아직 그러한 어려움에 직면하기 전(前) 상태에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같은 여성을 통하지 않고서는 한국 여성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더욱이 이렇게 하는 것도 현재 결혼한 여성만이 할 수 있습니다. 미망인이나 젊은 미혼 여성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선교사 부인 자격으로 가는 것이 아닌 이상, 여성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가는 것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만 만일 지금 일본으로 몇 사람이 보내진다면 이곳에서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을 것이고, 길이 열리자마자 한국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틀림없이 머지 않아 길이 열릴 것이라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박사님께서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 의사를 통해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미혼 남성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매우 적은 이곳 현지의 상황을 고려할 때 "본부에서 기혼 남성을 보내는 것이 타당하다"는 말을 저는 사방에서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알렌 의사는 편지를 통해서 저에게 일본에서 기다리는 동안 결혼하여 기혼자로서 한국에 들어 올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일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div>
|번역문7=<div style="text-align:justify">저는 휴가를 얻어 귀향 길에 오른 {{선교사편지인물태그|[[Foote, Lucius H.|푸트]]}} 장군<ref>주한 미국 공사</ref> 내외를 만나 보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무척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장군은 제가 한국으로 안전하게 들어가는 것은 확실하며, 기독교 학교를 시작할 수 있는 길이 지금 열려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푸트 장군은 지금 당장 전도 활동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제가 아직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으니, 현재로서 이 일은 가능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분은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 의사를 무척 좋게 생각하는 것 같았고 알렌 의사에 대해 극찬을 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편지인물태그|[[Carter,Rose F.|푸트 부인]]}}는 {{선교사편지인물태그|[[알렌 부인]]}}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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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7=<div style="text-align:justify">저는 휴가를 얻어 귀향 길에 오른 {{선교사편지인물태그|[[Foote, Lucius H.|푸트]]}} 장군<ref>주한 미국 공사</ref> 내외를 만나 보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무척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장군은 제가 한국으로 안전하게 들어가는 것은 확실하며, 기독교 학교를 시작할 수 있는 길이 지금 열려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푸트 장군은 지금 당장 전도 활동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제가 아직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으니, 현재로서 이 일은 가능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분은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 의사를 무척 좋게 생각하는 것 같았고 알렌 의사에 대해 극찬을 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편지인물태그|[[Carter, Rose F.|푸트 부인]]}}는 {{선교사편지인물태그|[[알렌 부인]]}}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div>
 
|번역문8=<div style="text-align:justify">최근, {{선교사편지단체태그|[[개화파]]}}가 {{선교사편지사건태그|[[갑신정변|정국을 장악하려는 시도]]}}가 성공을 거두었다면 틀림없이 선교 사역이 크게 활발해져, 증가한 사역 량(量)을 감당할 일손이 부족하였을 것입니다. 병환에서 이제 완전히 회복되셨기를 바랍니다.</div>
 
|번역문8=<div style="text-align:justify">최근, {{선교사편지단체태그|[[개화파]]}}가 {{선교사편지사건태그|[[갑신정변|정국을 장악하려는 시도]]}}가 성공을 거두었다면 틀림없이 선교 사역이 크게 활발해져, 증가한 사역 량(量)을 감당할 일손이 부족하였을 것입니다. 병환에서 이제 완전히 회복되셨기를 바랍니다.</div>
 
|번역문9=안녕히 계십시오.
 
|번역문9=안녕히 계십시오.

2019년 4월 22일 (월) 05:1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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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85년 2월 18일)
식별자 L18850218UTOE
한글명칭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85년 2월 18일)
영문명칭 Horace G. Underwood's Letter To Frank F. Ellinwood (Feb 18, 1885)
발신자 Underwood, Horace G.(원두우)
수신자 Ellinwood, Frank F.
작성연도 1885년
작성월일 2월 18일
작성공간 헵번의 사택(요코하마)
자료소장처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번역문출처 김인수, 『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2.



Dr. Horace G. Underwood
Yokohama, Japan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인물
일본, 요코하마공간
Feb 18, 1885 1885년 2월 18일
To Dr . Ellinwood 엘린우드(Ellinwood)인물 박사님께,
Dear Doctor, 박사님,
There being no steamer for Chemulpo, the port of Korea, before the 26th of March, I am stopping with Dr. Hepburn till then. In the mean time I have secured the services of some of the refugee Koreans who are in Yokohama and while they are teaching me Korean I in turn am giving them lessons in English. The books to be obtained on the language are very few and these I have got and am doing the best I can with them.
3월 26일 전에는 한국의 항구인 제물포공간로 가는 배가 없어서 그때까지 헵번 박사 댁공간에 머무르려 합니다. 그러는동안, 일본으로 망명해 요코하마공간에 있던 몇몇 한국인들[1]의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제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었고 그 보답으로 저는 영어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한국어에 관한 책은 몇 권 볼 수 없지만 저는 그 책들을 얻게 되었고 그것들의 도움을 받으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At present it does not seem such a formidable matter but I suppose I have not yet got to the difficulties. From all that I can learn it will be an impossibility to get at the women of Korea except through women and still further that at present this can only be done by married women, and widows and that young un-married women will be almost useless. It might not be policy for any female Missionaries to enter the country just now unless as Missionaries wives but if some could be sent new to Japan they could be learning the language here and enter as soon as the way opened which as far as I can ascertain must be before very long. I do not know whether you have yet heard it from Dr. Allen but I hear it on every side, that the influence of an un-married man is very much lessened thereby and that the circumstances in this field are such that it is hardly advisable for the Board to send any but MARRIED men; and in fact Dr. Allen writes on to me that if by waiting in Japan I could go into the country married it would be best to wait.
현재로서는 그것이 그리 큰 문제로 보이지 않지만 저는 아직 그러한 어려움에 직면하기 전(前) 상태에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같은 여성을 통하지 않고서는 한국 여성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더욱이 이렇게 하는 것도 현재 결혼한 여성만이 할 수 있습니다. 미망인이나 젊은 미혼 여성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선교사 부인 자격으로 가는 것이 아닌 이상, 여성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가는 것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만 만일 지금 일본으로 몇 사람이 보내진다면 이곳에서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을 것이고, 길이 열리자마자 한국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틀림없이 머지 않아 길이 열릴 것이라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박사님께서 알렌인물 의사를 통해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미혼 남성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매우 적은 이곳 현지의 상황을 고려할 때 "본부에서 기혼 남성을 보내는 것이 타당하다"는 말을 저는 사방에서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알렌 의사는 편지를 통해서 저에게 일본에서 기다리는 동안 결혼하여 기혼자로서 한국에 들어 올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일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I have met General and Mrs. Foote who are on their way home on leave of absence. I found them very pleasant indeed and the General said that he thought it would be perfectly safe for me to go into the country now and that the way for mission schools was now open. He also stated that it would be hardly advisable to do any preaching just now but as I dont know the language this of course is still a good way off. He seems to think a good deal of Dr. Allen and speaks of him in the highest terms and Mrs. Foote it appear had formed quite an attachment to Mrs. Allen.
저는 휴가를 얻어 귀향 길에 오른 푸트인물 장군[2] 내외를 만나 보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무척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장군은 제가 한국으로 안전하게 들어가는 것은 확실하며, 기독교 학교를 시작할 수 있는 길이 지금 열려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푸트 장군은 지금 당장 전도 활동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제가 아직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으니, 현재로서 이 일은 가능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분은 알렌인물 의사를 무척 좋게 생각하는 것 같았고 알렌 의사에 대해 극찬을 했습니다. 그리고 푸트 부인인물알렌 부인인물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Had the late attempt of the Progressionist party to gain control been successful, there is every evidence to prove the work of missions would have received such an impetus that it would have been difficult to find men enough to do the work that would have laid before them.Trusting that you have Bow fully recovered from yours sickness.
최근, 개화파단체정국을 장악하려는 시도사건가 성공을 거두었다면 틀림없이 선교 사역이 크게 활발해져, 증가한 사역 량(量)을 감당할 일손이 부족하였을 것입니다. 병환에서 이제 완전히 회복되셨기를 바랍니다.
I remain,Yours Truly, 안녕히 계십시오.
Horace G. Underwood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인물 올림.


주석

  1. 박영효, 서광범, 김옥균
  2. 주한 미국 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