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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중국의 수도를 모방하여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헤이안 교토도 서쪽 일대인 우쿄에느 많은 부분이 습지였기 때문에, 수도의 중심이 점차로 사쿄 즉 동쪽으로 이동해 갔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이 시대의 교토가 도시라고는 해도 종교시설이나 산문 등을 제외하면 건물의 대부분은 단층집이었다. 또 하나 주의해야 할 점은 헤이안시대 중기부터 음양도 등의 영향을 받아서 동북 방향은 귀신이 짐입해 오는 귀문의 방위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 속에 살면서 사람들은 계속해서 오래 전부터 있던 [[교토]]를 환상하고 있었다. 현실의 교토가 환상의 교토와 여러 가지로 뒤섞이며, 고토는 언제나 사람들의 이미지 안에서 존재하고 있엇던 것이다. 교토의 공포 공간, 요괴출몰 공간을 생각할 때, 우리들은 이러한 조건을 항상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특히, 교토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니]]'라는 존재가 교토의 괴이 공포 현상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다. 전여명이나 원령 등도 이 '[[오니]]'라는 명칭으로 설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 우선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중국의 수도를 모방하여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헤이안 교토도 서쪽 일대인 우쿄에느 많은 부분이 습지였기 때문에, 수도의 중심이 점차로 사쿄 즉 동쪽으로 이동해 갔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이 시대의 교토가 도시라고는 해도 종교시설이나 산문 등을 제외하면 건물의 대부분은 단층집이었다. 또 하나 주의해야 할 점은 헤이안시대 중기부터 음양도 등의 영향을 받아서 동북 방향은 귀신이 짐입해 오는 귀문의 방위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 속에 살면서 사람들은 계속해서 오래 전부터 있던 [[교토]]를 환상하고 있었다. 현실의 교토가 환상의 교토와 여러 가지로 뒤섞이며, 고토는 언제나 사람들의 이미지 안에서 존재하고 있엇던 것이다. 교토의 공포 공간, 요괴출몰 공간을 생각할 때, 우리들은 이러한 조건을 항상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특히, 교토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니]]'라는 존재가 교토의 괴이 공포 현상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다. 전여명이나 원령 등도 이 '[[오니]]'라는 명칭으로 설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 ||
− | 주작문 이외에도 교토의 도시공간에는 도시적인 공포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이 점재하고 있었다. 낡은 저택이나 저택이 있던 자리 즉 '유령의 저택' 이다. | + | 주작문 이외에도 교토의 도시공간에는 도시적인 공포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이 점재하고 있었다. 낡은 저택이나 저택이 있던 자리 즉 '유령의 저택' 이다. <ref> 고마쓰 가즈히꼬, 『일본의 요괴학 연구』, 민속원, 2009.05.07. p110~p115 </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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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 ==설화== |
2017년 6월 1일 (목) 18:00 판
개요
헤이안시대의 교토도 그 내부에 전답이나 벌판이 포함되어 있고,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인 소위 '소분지우주'이며, 교토의 귀족을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은 자연과 인공의 이중구조로 된 도시 공간에서 형성된 코스몰로지 속에서 살고 있었다. 이것은 인구가 100만 명이라고 하던 거대도시 에도와도 같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중 구조를 가진 도시에서는 요괴도 이중성을 배경으로 발생된다. 다시 말해서 자연 가운데에서 만들어진 요괴와 인공공간의 안에서 만들어진 요괴라는 2종류이 요괴들이 도시를 배회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금석이야기에 쓰여지던 당시의 주민에게는 교토의 어떤 곳이 무섭게 여겨지는 공간이며, 또 거기에 어떤 요괴가 출몰했는지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중국의 수도를 모방하여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헤이안 교토도 서쪽 일대인 우쿄에느 많은 부분이 습지였기 때문에, 수도의 중심이 점차로 사쿄 즉 동쪽으로 이동해 갔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이 시대의 교토가 도시라고는 해도 종교시설이나 산문 등을 제외하면 건물의 대부분은 단층집이었다. 또 하나 주의해야 할 점은 헤이안시대 중기부터 음양도 등의 영향을 받아서 동북 방향은 귀신이 짐입해 오는 귀문의 방위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 속에 살면서 사람들은 계속해서 오래 전부터 있던 교토를 환상하고 있었다. 현실의 교토가 환상의 교토와 여러 가지로 뒤섞이며, 고토는 언제나 사람들의 이미지 안에서 존재하고 있엇던 것이다. 교토의 공포 공간, 요괴출몰 공간을 생각할 때, 우리들은 이러한 조건을 항상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특히, 교토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니'라는 존재가 교토의 괴이 공포 현상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다. 전여명이나 원령 등도 이 '오니'라는 명칭으로 설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주작문 이외에도 교토의 도시공간에는 도시적인 공포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이 점재하고 있었다. 낡은 저택이나 저택이 있던 자리 즉 '유령의 저택' 이다. [1]
설화
참의 벼슬에 있던 미요시 기요유키는 학식이 풍부하고 음양도에도 토오한 사람이었다. 교토 시내 고조호리카와 부근에 흉가라 하여 오랫동안 비어있는 낡은 집이 있었다. 주위의 반대를 물리치고 이 집을 사서, 길일을 택하여 기요유키는 하인에게 다다미 한 장을 들려 이 집에 들어왔다. 예상한 대로 밤중이 되자 기괴한 사건이 잇달아 벌어졌다. 우선 천장에서 덜그럭 덜그럭 하는 소리가 나서 올려다보았더니, 천장에 설치해놓은 격자 사이로 여러 가지 기괴한 얼굴 이 나타났다. 기요유키가 무시하고 의연하게 있으니, 드디어 그 얼굴이 사라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남쪽의 차양 아래에 키가 1자 정도되는 말을 탄 자들이 4,50명 나타나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해 갔 다. 이어서 창고문이 3자 정도 열리더니 높이 3자 정도의 흑갈색의 이상한 색 옷을 입은 색기 있는 여자가 부채로 얼굴을 가 리고 무릎 걸음으로 나왔다. 기요유키가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잠시 후 여자는 창고 쪽으로 물러갔다. 이때 부채 사이로 비친 여자의 얼굴은 코가 길고 붉은 빛을 띠고, 번득이는 은으로 만든 것 같은 4,5치 정도의 송곳니가 입술을 뚫고 나와 있었다. 잠시 후 달빛이 비치는 정원에 연한 노란색 기모노를 입은 노인이 나타나서, 무릎을 꿇고 글 쓴 종이를 내밀었다. 기요유키가 "이넋은 무엇인가?"라고 묻자, 노인은 "이 지은 오랜 세월 동안 우리들이 살고 있는 곳이므로, 당신이 이 집 에서 살겠다고 하시니, 우리들은 어떻게 합니까. 매우 난처합니다."라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기요유키는 "정당한 수속을 거쳐서 내가 구입한 집이다. 사람을 위협해서 살 수 없도록 하는 너희들이야마로 괘씸 한 놈이다."라고 물러나지 않았다. 노인은 "말씀하시는 것은 지당합니다만, 우리는 갈 곳이 없습니다. 단지, 대학료의 남문 동쪽 옆에 공터가 있으니, 허락 해주시면 거기로 이동하고 싶습니다만 어떠하신지요."라고 물었다. 기요유키는 "그것은 괜찮다. 곧 일족을 데리고 옮겨라."라고 대답했다. 노인이 "잘 알았습니다."라고 대답하니, 4,50명이 화답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이후로 이 저택에서 괴이현상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공간
- 고조호리카와
각주
- ↑ 고마쓰 가즈히꼬, 『일본의 요괴학 연구』, 민속원, 2009.05.07. p110~p115
관련항목
노드 | 관계 | 노드 |
---|---|---|
금석 이야기 | ~가 바탕이다. | 교토 |
금석 이야기 | ~를 다룬다. | 일본의 요괴 |
금석 이야기 | ~가 등장한다. | 오니 |
금석 이야기 | ~에 쓰여졌다. | 헤이안 시대 |
기여
- 이동희: 처음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