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마산2보루"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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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년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외곽에 석축을 쌓고 내부에는 온돌과 배수로를 갖춘 건물과 저수시설이 설치되었음이 확인되었는데, 풍화암반층을 파내어 조성한 저수시설은 남북 3.4m, 동서 3.5m, 깊이 1.2m쯤 되며, 바닥에는 뻘흙을 발라 물이 빠져 나가는 것을 방지했고, 저수용량은 4㎥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보루 내부에서 함께 확인된 간이 대장간은 우리나라 최초로 발굴된 대장간이라는 의의가 있다. 성벽은 자연지형을 최대한 활용하여 축조하였으며, 용마산 정상부로 향하는 길목인 보루의 북동쪽에 치우쳐 치성 또는 출입시설로 추정되는 석축시설이 노출되었다. 이 시설물과 성벽이 접하는 지점을 중심으로 일부 구간에 걸쳐 보축된 성벽이 1~2.5m 높이로 남아 있다. | 2005~06년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외곽에 석축을 쌓고 내부에는 온돌과 배수로를 갖춘 건물과 저수시설이 설치되었음이 확인되었는데, 풍화암반층을 파내어 조성한 저수시설은 남북 3.4m, 동서 3.5m, 깊이 1.2m쯤 되며, 바닥에는 뻘흙을 발라 물이 빠져 나가는 것을 방지했고, 저수용량은 4㎥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보루 내부에서 함께 확인된 간이 대장간은 우리나라 최초로 발굴된 대장간이라는 의의가 있다. 성벽은 자연지형을 최대한 활용하여 축조하였으며, 용마산 정상부로 향하는 길목인 보루의 북동쪽에 치우쳐 치성 또는 출입시설로 추정되는 석축시설이 노출되었다. 이 시설물과 성벽이 접하는 지점을 중심으로 일부 구간에 걸쳐 보축된 성벽이 1~2.5m 높이로 남아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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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토유물 75점에는 남한의 고구려 유적에서 처음 발견된 통모양 네발토기, 돗자리를 짤 때 사용한 고드랫돌을 비롯하여 긴몸항아리, 귀 달린 그릇 등이 출토되었는데, 호와 옹, 장동호, 동이, 시루, 완, 접시, 뚜껑 등이 주종을 이루며 그 밖에 연통류, 이배류, 거의 모든 고구려 토기 기종이 출토되었다. 그중에서 개인의 식기류인 완, 접시, 반 등이 상대적으로 많은데 이것들의 바닥에는 개인 식별을 위한 여러 가지 부호가 새겨진 것도 있다. 철기는 철모, 철부, 철촉, 철준, 찰갑 등의 무기류가 가장 많으며, 쇠낫, 쇠도끼, 쇠주걱, 철겸과 같은 농공구류와 접시 형태의 용기류도 출토되었다. | 출토유물 75점에는 남한의 고구려 유적에서 처음 발견된 통모양 네발토기, 돗자리를 짤 때 사용한 고드랫돌을 비롯하여 긴몸항아리, 귀 달린 그릇 등이 출토되었는데, 호와 옹, 장동호, 동이, 시루, 완, 접시, 뚜껑 등이 주종을 이루며 그 밖에 연통류, 이배류, 거의 모든 고구려 토기 기종이 출토되었다. 그중에서 개인의 식기류인 완, 접시, 반 등이 상대적으로 많은데 이것들의 바닥에는 개인 식별을 위한 여러 가지 부호가 새겨진 것도 있다. 철기는 철모, 철부, 철촉, 철준, 찰갑 등의 무기류가 가장 많으며, 쇠낫, 쇠도끼, 쇠주걱, 철겸과 같은 농공구류와 접시 형태의 용기류도 출토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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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14일 (목) 16:38 판
용마산2보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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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 | 사적 제 455호 |
위치 | 광진구 중곡동 산3-6, 용마산 해발 230m |
시대 | 삼국시대 |
면적 | 663㎡ |
둘레 | 79m |
용마산2보루는 1보루에서 북쪽으로 250m정도 거리에 있으며, 용마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약 630m 가량 떨어진 해발230m 봉우리에 위치한다. 보루의 평면형태는 북동남서방향에 장축을 둔 타원형이다. 전체둘레는 663㎡로 아차산 일대의 보루 중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한다.
2005~06년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외곽에 석축을 쌓고 내부에는 온돌과 배수로를 갖춘 건물과 저수시설이 설치되었음이 확인되었는데, 풍화암반층을 파내어 조성한 저수시설은 남북 3.4m, 동서 3.5m, 깊이 1.2m쯤 되며, 바닥에는 뻘흙을 발라 물이 빠져 나가는 것을 방지했고, 저수용량은 4㎥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보루 내부에서 함께 확인된 간이 대장간은 우리나라 최초로 발굴된 대장간이라는 의의가 있다. 성벽은 자연지형을 최대한 활용하여 축조하였으며, 용마산 정상부로 향하는 길목인 보루의 북동쪽에 치우쳐 치성 또는 출입시설로 추정되는 석축시설이 노출되었다. 이 시설물과 성벽이 접하는 지점을 중심으로 일부 구간에 걸쳐 보축된 성벽이 1~2.5m 높이로 남아 있다.
출토유물 75점에는 남한의 고구려 유적에서 처음 발견된 통모양 네발토기, 돗자리를 짤 때 사용한 고드랫돌을 비롯하여 긴몸항아리, 귀 달린 그릇 등이 출토되었는데, 호와 옹, 장동호, 동이, 시루, 완, 접시, 뚜껑 등이 주종을 이루며 그 밖에 연통류, 이배류, 거의 모든 고구려 토기 기종이 출토되었다. 그중에서 개인의 식기류인 완, 접시, 반 등이 상대적으로 많은데 이것들의 바닥에는 개인 식별을 위한 여러 가지 부호가 새겨진 것도 있다. 철기는 철모, 철부, 철촉, 철준, 찰갑 등의 무기류가 가장 많으며, 쇠낫, 쇠도끼, 쇠주걱, 철겸과 같은 농공구류와 접시 형태의 용기류도 출토되었다.
관련 항목
S(객체1) | V(관계) | O(객체2) |
---|---|---|
용마산보루군 | isLocatedIn | 용마산, 광진구 중곡동, 중랑구 면목동, 구리시 아천동 |
용마산보루군 | isPartOf | 아차산 일대 보루군 |
용마산보루군 | isRelatedTo | 삼국시대 |
용마산1,2,3,4보루 | isLocatedIn | 광진구 중곡동 |
용마산5보루 | isLocatedIn | 구리시 아천동 |
용마산6,7보루 | isLocatedIn | 중랑구 면목동 |
용마산1,2,4,5보루 | isRelatedTo | 삼국시대, 고구려 |
용마산3,6,7보루 | isRelatedTo | 삼국시대, 신라 |
용마산보루군 | 둘레 및 면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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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산1보루 | 둘레 96m, 면적 627㎡ |
용마산2보루 | 둘레 79m, 면적 663㎡ |
용마산3보루 | 둘레 235m, 면적 2,289㎡ |
용마산4보루 | 둘레 263m, 면적 3,075㎡ |
용마산5보루 | 둘레 132m, 면적 936㎡ |
용마산6보루 | 둘레 195m, 면적 2,420㎡ |
용마산7보루 | 둘레 74m, 면적 4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