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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내용
조선의 문묘
조선에서는 문묘를 성균관에서 관장하였다. 성균관의 이런 건물들을 묘우(廟宇)라고 한다. 묘우의 주요 건물은 대성전(大成殿)으로서 좌우에 동무·서무라는 부속 행랑을 두어 예배 대상자를 봉안한다. 그리고 향사 때의 헌관과 집사(執事)들의 재계소(齋戒所)이자 향축(香祝)을 봉안하기 위한 곳으로 향관청(享官廳)이 있다.[3]
서울 문묘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 3가 에 있는 조선시대의 문묘. 1397년(태조 6)에 착공하여 그 이듬해인 1398년에 준공되었다. 1963년 1월 21일, 대성전(大成殿)·명륜당(明倫堂)·동무(東廡)·서무(西廡)·삼문(三門) 등 모두 5동이 보물 제141호로 지정되었다. 서울 문묘는 조선시대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의 제사와 유학교육을 동시에 담당하던 곳이자, 17세기에 지어진 건물이 현존하고 있는 곳으로서 한국유학사와 건축사에 있어서 귀중한 자료이다.[4]
우리나라 선현(先賢)의 문묘 종사는 고려 때부터 시작되었다. 고려시대인 1020년(현종 11)과 1022년에 최치원과 설총을 각각 종사하였고, 1319년(충숙왕 6)에는 안향을 종사하였다. 정몽주 등 기타 선현은 조선시대에 종사하였다.[5]
공자를 비롯한 이른바 4성(四聖), 공문10철(孔門十哲), 송조6현(宋朝六賢)과 우리나라 18현의 위판을 봉안하고 봄·가을로 석전(釋奠)을 봉행하고 있다.[6]
- 4성(四聖) - 안자(顔子), 증자(曾子), 자사(子思), 맹자(孟子).
- 공문10철(孔門十哲) - 비공민손(費公閔損), 염경(冉耕), 염옹(冉雍), 재여(宰予), 단목사(端木賜), 염구(冉求), 중유(仲由), 언언(言偃), 복상(卜商), 전손사(颛孫師).
- 송조6현(宋朝六賢) - 주돈이(周惇頤), 정호(程顥), 정이(程頤), 소옹(邵雍), 장재(張載), 주희(朱熹).
- 동방18현(東方十八賢) - 최치원(崔致遠), 설총(薛聰), 안유(安裕), 정몽주(鄭夢周), 정여창(鄭汝昌), 김굉필(金宏弼), 이언적(李彦迪), 조광조(趙光祖), 김인후(金麟厚), 이황(李滉), 성혼(成渾), 이이(李珥), 조헌(趙憲), 김장생(金長生), 송시열(宋時烈), 김집(金集), 박세채(朴世采), 송준길(宋浚吉)
관련 항목
- 장소
- 사건
- 문헌
웹자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문묘 기사.
- 위키피디아, 문묘 기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울문묘 기사.
- 이상해, 한국 미의 재발견 - 궁궐 · 유교건축, 2004, 솔출판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성전 기사.
- 성균관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