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마산1보루"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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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산1보루는 용마산 정상부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의 끝 봉우리 해발 175m에 위치한다. 평면 형태는 남북으로 긴 장타원형이며, 전체 둘레는 96m, 내부면적은 627㎡ 규모로 아차산 일대의 보루 중 작은 편에 속한다. 이 유적은 1942년 『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를 통해 처음 알려졌고, 1994년 구리문화원에 의한 아차산 지표조사와 2003년 서울시의 서울소재 성곽조사를 통해 자세한 내용이 소개되었다. 유적이 위치한 봉우리는 주 능선 방향을 제외한 나머지 삼면이 급경사를 이루며, 정상부의 좁고 긴 평탄면에 석축열을 비롯한 약간의 유구와 정상부 아래쪽에서 성벽으로 추정되는 석축 일부가 남아있다. 석축은 화강암을 30~40cm크기로 거칠게 다듬어 사용했으며, 원래 높이는 대략 4~5m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상부 주변에서 주로 니질태토의 황갈색이나 회흑색을 띠는 호형토기 등 고구려 토기편이 수습되었다. | 용마산1보루는 용마산 정상부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의 끝 봉우리 해발 175m에 위치한다. 평면 형태는 남북으로 긴 장타원형이며, 전체 둘레는 96m, 내부면적은 627㎡ 규모로 아차산 일대의 보루 중 작은 편에 속한다. 이 유적은 1942년 『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를 통해 처음 알려졌고, 1994년 구리문화원에 의한 아차산 지표조사와 2003년 서울시의 서울소재 성곽조사를 통해 자세한 내용이 소개되었다. 유적이 위치한 봉우리는 주 능선 방향을 제외한 나머지 삼면이 급경사를 이루며, 정상부의 좁고 긴 평탄면에 석축열을 비롯한 약간의 유구와 정상부 아래쪽에서 성벽으로 추정되는 석축 일부가 남아있다. 석축은 화강암을 30~40cm크기로 거칠게 다듬어 사용했으며, 원래 높이는 대략 4~5m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상부 주변에서 주로 니질태토의 황갈색이나 회흑색을 띠는 호형토기 등 고구려 토기편이 수습되었다. |
2016년 4월 12일 (화) 17:13 판
용마산1보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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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목 | 사적 제 455호 |
위치 | 용마산 해발 175m |
시대 | 삼국시대 |
면적 | 627㎡ |
둘레 | 96m |
용마산1보루는 용마산 정상부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의 끝 봉우리 해발 175m에 위치한다. 평면 형태는 남북으로 긴 장타원형이며, 전체 둘레는 96m, 내부면적은 627㎡ 규모로 아차산 일대의 보루 중 작은 편에 속한다. 이 유적은 1942년 『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를 통해 처음 알려졌고, 1994년 구리문화원에 의한 아차산 지표조사와 2003년 서울시의 서울소재 성곽조사를 통해 자세한 내용이 소개되었다. 유적이 위치한 봉우리는 주 능선 방향을 제외한 나머지 삼면이 급경사를 이루며, 정상부의 좁고 긴 평탄면에 석축열을 비롯한 약간의 유구와 정상부 아래쪽에서 성벽으로 추정되는 석축 일부가 남아있다. 석축은 화강암을 30~40cm크기로 거칠게 다듬어 사용했으며, 원래 높이는 대략 4~5m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상부 주변에서 주로 니질태토의 황갈색이나 회흑색을 띠는 호형토기 등 고구려 토기편이 수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