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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5일 (월) 19:40 판
한 팀 5명이 공을 바스켓에 던져 넣어 많이 넣은 수로 승패를 겨루는 스포츠 경기이다.
[[파일:Mvpsjh.jpg|400px|섬네일|1995-96시즌 연세대학교의 우승과 함께 MVP를 차지한 서장훈
목차
개요
캐나다계 미국인 제임스 네이스미스가 고안하였다. 양팀 각 5명[1]씩의 선수가 한 개의 공을 상대팀의 3 미터 높이의 바스켓에 던져 넣기 위해 공방전을 벌이는 스포츠이다. 공과 바스켓만 갖추어지면 두 명만으로도 작은 공간에서 얼마든지 경기를 할 수 있다. 강인한 체력, 재빠른 몸놀림, 지구력 등이 요구된다. 농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 중의 하나이다.
바스켓에 공을 던져 (슈팅) 넣으면 득점을 하는 방식으로, 경기 종료 후에 보다 많은 득점을 얻은 팀이 승리한다. 공은 튀기거나 (드리블) 같은 팀에게 패스를 하여 움직일 수 있다. 의도적인 신체적 접촉은 허락하지 않으며 공을 다루는 데에도 제약이 있다. (바이얼레이션)
농구는 만들어진 이래 슛과 패스, 드리블과 같은 공통 기술이 발전을 거듭해 왔으며, 선수의 포지션이나 공격과 수비 구조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보통 팀에서 가장 키가 큰 선수가 센터나 두 포워드 포지션 중 하나를 맡으며, 키가 작은 선수나 공을 다루는 실력이 뛰어나고 빠른 선수가 가드 포지션을 맡는다. 농구는 다양한 규칙을 가지고 있는 정식 경기와 더불어 편한 경기를 위한 변형이 다양하게 발전해 왔다. 일부 국가에서는 농구가 대중적인 관전 스포츠이기도 하다.
농구는 본래 농구 코트에서 하는 실내 경기로 고안된 것이지만, 오늘날에는 거리에 바스켓을 설치해 놓고 게임을 벌이는 '거리 농구'도 크게 유행하고 있다.[2] 도시와 근교 지역에서 인기가 있는 거리 농구는 몇가지 규칙이 변형된 형태로 3명씩의 선수가 반코트로 경기를 한다.[3]
역사
19세기 후반 미국에서는 비가 내리거나 추운 겨울에도 할 수 있는 구기종목으로 고안된 것이 농구이다. 1891년 매사추세츠 주 스프링필드에 있는 국제 YMCA 체육학교(후에 스프링필드대학교) 캐나다 출신의 교사 제임스 네이스미스(James Naismith)가 창안하였다.
처음에는 두 팀의 경기자 수가 일정하지 않았으나 1895년에 1팀은 5명으로 구성하기로 하고 1897년에 명문화되었고, 1896년 최초의 공식 경기규칙위원회가 구성되었다. 또, 당초 코트의 형태도 불규칙하였으나 1903년 코트의 라인은 모두 직선이어야 된다고 결정하였다. 1905년 미국 서부 대학 바스켓볼협회가 생겼고, 1915년에는 YMCA·미국체육협회·미국대학연맹이 협동하여 농구의 정상적인 발전을 보게 되었다.
농구의 전파는 YMCA를 통해 캐나다·남아메리카·일본·필리핀·한국·중국 등 아시아 지역을 비롯하여 유럽에서도 독일·불가리아·폴란드·프랑스·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에 보급되었다. 농구의 인기와 붐이 급격하게 고조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부터이다.
농구 경기는 제11회 베를린 올림픽대회 때부터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1952년의 제15회 헬싱키 올림픽대회까지는 미국의 규정에 따라 경기를 진행하였으나, 이후에는 국제아마추어농구연맹(Federation International Basketball Amateur:FIBA)의 규정에 따라 치러진다.
세계대회 규모의 국제경기는 각국 대표들로 구성된 FIBA가 주관하고, 올림픽 및 세계선수권대회에는 유럽·아시아·아프리카·남북 아메리카주의 각 지역에서 예선을 거친 대표팀이 출전하여 대전한다.
한편, 프로농구는 1898년 미국 뉴저지 주 트렌튼 팀이 생겼으며, 같은 해에 이미 미국에서는 리그전을 벌일 만큼 몇몇 프로팀이 신설되었다. 이후 프로팀의 경기가 활성화되면서 프로농구는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4]
방법
규칙은 FIBA(국제농구연맹)에서 제정한 국제규칙이 일반적으로 적용된다. 국제규정과 아메리칸 규정에 차이가 있듯이, 프로경기와 아마추어경기에도 각각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
각 팀은 5명의 선수로 구성되며, 그 중 주장은 시합 도중에 설명을 요구하든가 궁금한 사항이 있을 경우에는 심판에게 정중하게 질문할 수 있다. 선수의 교체 멤버는 각 팀에 7명까지 허용되며, 모든 선수는 유니폼의 앞과 뒷면에 4번부터 15번까지의 고유번호를 각각 사용하여야 한다.
심판은 주심·1부심·2부심으로 3명이 있고, 이밖에 경기기록원(기록원·보조기록원·경기시간 계시원·24초 계시원)과 감독관이 심판을 돕는다.
경기시간은 10분씩 4쿼터로 진행하며 NBA의 경우 12분씩 4쿼터로 진행한다.(아마추어나 대학생은 전·후반 각 20분씩이다.) 경기 진행 중에 코치는 작전타임을 요구할 수 있으며, 심판이 이것을 인정하면 전반전에 2회, 후반전에 3회, 각각 90초간의 차지드 타임아웃을 가질 수 있다. 게임은 센터서클에서 주심의 토스업으로 시작되며 1쿼터를 제외한 다른 모든 쿼터는 드로우인하는 선수에게 볼이 건네어지면 시작된다.
후반전에는 양 팀이 바스켓을 바꾸어서 경기를 재개한다. 점수는 필드스로[野投]에 의한 득점이 2점(단, 3점라인 밖은 3점)이고 프리스로(自由投)에 의한 득점은 1점인데, 실수로 자기 팀의 바스켓에 볼을 넣어도 상대팀의 득점으로 계산한다. 전체 시합시간을 통해 많이 득점한 팀이 승리하지만, 양 팀이 동점일 경우에는 승부가 가려질 때까지 1회 5분 동안 연장쿼터를 속행한다.
반칙에는 크게 2가지로 나뉘는데, 신체의 부당한 접촉으로 일어나는 퍼스널 파울과 코치의 반칙을 포함한 선수의 직접적인 파울 이외의 반칙으로 테크니컬 파울이 있다. 개인반칙은 차징·트리핑·해킹·푸싱·블로킹·홀딩 등이 포함되고, 테크니컬 파울은 게임 진행을 지연시킨다든지 수속상의 잘못 등이 포함된다.
반칙을 5차례 범하면 그 선수는 퇴장당한다. 반칙이 발생하면 그 상황에 따라서 상대편 선수에게 보상이 주어진다. 즉 슛 동작 중에 상대편의 반칙으로 인하여 그것이 성공하지 못했을 때는 2개의 자유투(3점 슛 동작에서는 3개)가 주어지고, 슛이 성공하였을 때는 보너스로 1개의 자유투가 주어지며, 슛 동작 이외의 경우에는 사이드라인에서의 스로인이 된다.
파울 이외에도 볼을 취급하는 중에 위반하는 것을 바이얼레이션이라고 하며, 이럴 경우 볼이 상대팀으로 넘어가 사이드라인에서 스로인이 된다.
그리고 한 팀이 한 쿼터에 4개의 팀파울을 범하면 5개째부터는 팀파울 페널티가 적용되어, 이후의 개인반칙에 대해서는 프리스로 2개가 주어진다.
공격은 크게 나누어 지공법(遲攻法)과 속공법(速攻法)으로 나뉘는데, 지공법은 볼의 컨트롤에 중점을 둠으로써 슛이 확실하게 성공할 때까지 패스나 드리블로 공격을 천천히 전개하는 것이고, 속공법은 빠른 경기 운영에 주안점을 두고 공격하는 것이다.
방어전술로는 상대편 선수를 1 대 1로 맡아서 지키는 대인방어와 어떤 특정지역을 선수 각자가 맡아서 지키는 지역방어 전법이 대표적이다. 또한 대인방어를 변화시킨 시프트디펜스 전법 외에, 올코트디펜스라든지 프레스디펜스 등이 있으며, 이러한 전법들을 여러 가지로 변형시켜서 개발한 방어법이 많이 등장한다.[5]
한국농구
역사
한국에 농구가 처음 소개된 것은 1907년 봄 황성기독교청년회(YMCA) 초대 총무이자 미국인 선교사인 길레트(P.Gillett:한국명 吉禮泰)에 의해서이다. 1916년 3월 25일 미국인 반하트가 기독청년회 간사로 부임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지도 보급이 이루어졌다. 그 후 1920년 3월 12일 중앙YMCA 회관에서 재경(在京) 서양인 팀과 YMCA 회원 팀이 시합을 가졌다. 그 뒤 이 경기는 연례 행사로 발전하였으며, 또한 각급 학교에서 농구부가 창설되는 계기가 되었다.
같은 해 3월 30일 YMCA 농구팀은 반하트와 감독 현동완(玄東完)의 인솔로 일본 도쿄로 최초 해외 원정 경기를 떠나 2승 3패의 전적을 남겼다. 한편 1925년에는 서양 여자팀과 이화 학당 여학생들 간에 농구 경기가 개최되어 여학생들에게도 보급되기 시작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중앙 YMCA에서 일본 와세다대학팀을 초청하여 국제 경기의 틀을 마련하였다.
1925년 9월에는 조선바스켓볼협회가 창립되었고 본격적인 농구훈련 및 지도가 시작된 것은 1927년 3월 당시 일본 도쿄 YMCA 체육부 간사인 F.브라운을 초빙하여 농구 강습회를 개최하면서부터였다. 1931년 4월에는 조선농구협회와 조선농구심판협회가 탄생하였다. 처음으로 농구 선수권대회가 개최된 것은 1931년 5월 27일부터 조선체육회와 기독청년회 공동 주최, 동아일보사의 후원으로 종로 YMCA 뒤뜰에서 개최된 제1회 전조선 농구선수권대회이다. 참가팀은 보성전문학교(지금의 고려대학교)와 연희전문학교(지금의 연세대학교)를 비롯한 13개 팀이었으며, 4일간의 열전 끝에 보성전문학교가 우승을 차지하였다.
1945년 12월 19일 조선농구협회가 재창립되었으며, 1948년 KBA(Korea Basketball Association:대한농구협회)로 개칭하였다. 또한 1946년 대한체육회에 가맹하였고, 1947년 FIBA(Fdration Internationale Basketball Association:국제농구연맹)에 가입하였다. 1963년에는 ABF(Asia Basketball Federation:아시아농구연맹)에 가입하였다. 1945년 대한농구협회가 창립되었으며, 1948년 대한농구협회로 개칭하였다.
1984년 제23회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서는 1960년대의 걸출한 선수, 박신자 이후 출현한 박찬숙 등이 활약하여 아시아의 강호 중국 등을 물리치고 은메달을 차지함으로써 역대 올림픽 참가 이래 처음으로 단체 구기 종목에서 메달을 획득하였다. 1983년부터는 한국 최대 규모의 성인 농구대회인 농구대잔치가 개최되었으며, 1997년에는 프로농구리그가 창설되어 오늘에 이른다. 그 이후에도 각종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으며 생활 체육으로서도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인기 스포츠가 되었다.[6]
전성기 : 1990년대
한국농구의 전성기는 1990년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당시 X세대들에 의해 한국농구는 농구대잔치로 인해 농구에 대한 인기는 급증하였다. 위성방송의 보편화가 있기 이전이었던 90년대에는 NBA의 시합을 보고, 마이클조던을 우상시하기도 하였다. 또한, 농구를 주제로 한 콘텐츠인 슬램덩크와 드라마 마지막 승부는 농구의 인기에 힘입어 많은 이들이 즐겨 보았다. 특히, 마지막 승부는 단번에 신인이었던 심은하를 스타의 자리에 올려놓은 작품이기도 하다. 또한 MBC배 농구대잔치로 인해서, 많은 대학농구스타들을 발굴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연세대학교의 연세대학교 농구부와 고려대학교의 농구부가 인기를 끌었다. 연세대학교 출신의 서장훈, 이상민, 우지원과 라이벌 고려대학교 출신의 현주엽, 전희철, 신기성의 인기는 현재 톱스타만큼이나 대단했다.
* 1994년 MBC배 대학농구 최종결승전 연세대학교 vs 고려대학교 영상
농구를 소재로 한 작품[7]
서브컬쳐에서 농구는 야구나 축구에 비해서 자주 다루어지는 종목이 아니다. 농구라는 종목의 인기에 비해서는 자주 다룬다고 볼 수는 없고 어떤면에서는 농구보다 배구가 더 대우가 좋다고도 볼 수 있다. 슬램덩크(1990~1996)가 메이저급으로 히트한 최초의 농구만화로 볼 수 있고, 슬램덩크 이후로는 나름대로 농구 만화가 나오고 있다.
만화/애니메이션
영화/드라마
게임
바깥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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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여
- 유현나 : 최초 작성
각주
- ↑ 실제 농구단들은 11~12 명의 선수들을 고용하며 그중의 5명으로 경기한다.
- ↑ 아주경제-국내 최초 길거리 농구 서바이벌 ‘리바운드’ 29일 첫 방송
- ↑ <출처> 위키피디아-농구
- ↑ <출처> 두산백과-농구
- ↑ <출처> 두산백과-농구
- ↑ <출처> 스포츠백과-농구
- ↑ <출처> 나무위키-농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