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무청 복제"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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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4일 (금) 18:00 판
목차
정의
- 경무청 체제(1894.07.14. ~ 1900.06.13.)에서의 경찰 복식제도 변화 정리이다.
<표 1> 경무청 복제의 변천 과정(1894.07.14. ~ 1900.06.13.) 분류 제정 칙령 내용 관보 복제
(服制)1895.04.19. 제81호 경무사 이하 복제 개국504년 4월 21일 1895.06.03. 제130호 경무사 이하 복제 각부 경무관 이하 순검 확대 적용 개국504년 6월 5일 1895.10.20. 제179호 警官表喪式 개국504년 10월 21일 1897.01.14. 제7호 경무사 이하 복제 개정 첨입 건양2년 1월 16일 1899.03.18. 제6호 경무사 이하 본청 각 항구 경무관의 예모·예장 광무3년 3월 28일 1899.03.26. 제9호 경무사·경무관·총순의 복제 개정
내용
- 경무청이 창설되고 9개월이 지난 1895년 4월 19일 칙령 제81호‘경무사이하 복제(警務使以下 服制)’가 제정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경찰 제복이 시작된다.
- 같은 해 6월과 10월, 1897년의 개정을 거치면서 점차 체계화되고, 1899년 3월 ‘경무사 이하 본청 및 각 항구 경무관의 예모(禮帽) 및 예장(禮裝)’으로 최초의 예복(禮服)이 제정된다. 26일은 칙령 제9호 ‘경무사·경무관·총순의 복제 개정’으로 경무사·경무관·총순의 상복(常服)을 개정한다.
- 경찰 조직의 특성상 계급에 따른 복식제도에 차이가 있어 구분이 용이하도록 품목별 세부 설명은 <표> 위주로 정리하고, 대한제국기 의례반차도에 등장하는 경찰의 제복 분석이 목적이므로 외투(갑종·을종)는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경무청 복제의 변천 과정
1895년 - 4월 19일 『관보』를 통해 반포된 내용에 의하면, 상복(常服)에 관해서만 <표>형식으로 규정되었다. 내용은 경무사·총무국장을 맡은 경무관·경무관·총순·순검(근위순검 포함)의 상모(常帽), 경무사 이하 총순의 상의(常衣)와 하의(夏衣)에 관한 것이다(순검의 常衣와 夏衣 규정 없음).
- 한편, <표> 뒤에는 “도식은 생략함(圖ᄂᆞᆫ 略홈)”이라 표기되어 있다. 본래 <표>와 도식이 함께 제정되었는데 『관보』에서 도식만 생략한 것이다. 해당 도식은 『의주』에서 볼 수 있다. <표>와 함께 <도식>이 수록되었는데, 상모·상복의 상의와 바지·외투·하의(夏衣) 상의와 바지등의 도식이 있다.
- <표>에서 언급이 없는 상복 바지, 하의 바지, 외투 등의 도식이 있어, 이때 이들 복식에 대한 형태도 확정된 것을 알 수 있다. 1895년 <표>에서 누락되었던 복식에 관한 제도는 1897년 복제에서 규정된다.[1]
<1895년 상복(常服) 도식>
서울대학교 규장각. 『議奏』(奎 17705. v. 6)
- 6월 3일 제정된 칙령 제130호는 ‘각부 경무관 이하 복제에 관한 건’으로 앞서 반포되었던 칙령 제81호의 복제를 각부 경무관 이하 순검에까지 적용하면서 상복(常服)과 하의(夏衣)의 착용 신분이 확대된다.[2]
1897년 - 1월 14일 제정된 칙령 제7호 ‘경무사 이하 복제의 개정과 첨입’으로 1895년의 칙령 제81호에서 누락되었던 순검의 상의(常衣)·하의(夏衣) 제식이 추가로 규정되고, 경무사·경무관·총순·순검의 상복바지[常袴]와 근위경무관·근위총순의 상모(常帽)에 관한 규정이 추가된다. 형태는 “그림과 같다(如圖)”고 하였으나 도식은 생략되었다.[5] 이때의 도식은 『의주』에서도 찾을 수 없다.
1899년 - 3월 18일에는 칙령 제6호 ‘경무사 이하 본청 및 각 항구 경무관의 예모(禮帽) 및 예장(禮裝)’으로 최초의 예복(禮服)을 제정하고, 26일 칙령 제9호 ‘경무사·경무관·총순의 복제 개정’으로 경무사·경무관·총순의 상복(常服)을 개정한다.
- 예복은 경무사·경무관의 예모와 예장에 관해 규정했다. 『관보』에 반포될 때는 도식이 생략되었는데, 『주본』에는 도식이 수록되었고 여기에는 총순도 포함된다. 예장의 구성은 예모(禮帽), 상의(上衣), 바지[袴], 식대(飾帶), 도(刀), 도대(刀帶), 도서(刀緖), 장갑[手套], 신[靴]이다. 상복과의 차이점은 육혈포가 없고 식대가 있으며, 신을 단화로만 규정한 것이다.
- 상복은 경무사·경무관·총순·순검의 상모와 경무사·경무관·총순의 외투와 상장(常裝)을 개정하면서 각 항구 경무관·총순과 13도 총순까지 확대 적용한다. 상장은 상모(常帽), 상의[常衣], 바지[袴], 도(刀), 도대(刀帶), 도서(刀緖), 육혈포(六穴砲), 장갑[手套], 신[靴]로 구성되었다. 이때 상복은 ‘사무를 볼 때(視務時)’라는 착용상황에 대한 규정이 처음으로 생기고, 동고(冬袴)와 하고(夏袴)는 예전대로 따르라 했다. 그리고 도(刀)의 착용상황과 방법, 권임순검의 상모, 상장(常裝)의 상의(上衣), 하의(夏衣) 등에 대해서도 규정한다.[6]
<1899년 예복·상복(常服) 도식>
서울대학교 규장각 『奏本』(奎 17703. v. 28)
상복(常服):동복(冬服)
- 상복(常服)은 계절에 따라 동복과 하복으로 나뉜다. 1895년 4월 19일에 처음 제정될 때, 경무사 이하 총순까지만 적용되었다가 6월 3일에 순검까지 확대 적용하였다.
상모(常帽)
- 1895년 4월 19일 제정되어 21일 반포된 최초의 상모는 경무사·총무국장·경무관·총순·순검·근위순검의 것이다. 이후 같은 해 6월 5일 칙령 제130호, 1897년 1월 14일 칙령 제7호와 1899년 3월 26일 칙령 제9호를 거치면서 제도변화를 보인다.
- 1895년의 상모는 투구형이고, 짙은 감색의 융으로 만든다. 정상(頂上)까지의 높이는 5촌이다. 안비(眼庇)는 모자 앞의 챙을 말하는데, 겉은 흑색이고 안은 맹황색(萌黃色)의 가죽소재이다.
- 상모의 구성은 정상의 이화, 대선(大線)과 소선(小線)으로 구분되는 하반부 횡장(橫章), 모자 정면의 전장(前章),턱끈을 뜻하는 이뉴(頤鈕)와 단추로 이루어진다.
- 위 제도는 1895년 6월 칙령 제130호에서 형태는 그대로 유지하되 착용신분을 각 부(府)의 경무관, 경무관보(警務官補), 총순, 순검까지 확대 적용하였다. 또 1897년 1월 14일 제정되어 16일에 반포된 칙령 제7호에서는 근위경무관과 근위총순의 횡장을 백융(白絨)이 아닌 황융(黃絨)으로 바꾸었다(이상<표 2>참조).[7]
- 투구형 상모는 1899년 3월 26일 제정된 칙령 제9호에서 형태가 달라져, 케피(képi)형으로 바뀌어 구조가 상반부와 하반부로 나뉘게 된다. 경무사·경무관·총순·순검 외에 권임순검의 제식을 규정하였다. 도식은 『주본』에 수록되어 있는데, 도식에서는 경무관을 총무국장 경무관과 일반 경무관으로 구분하였다.
- 소재는 짙은 감색의 융이고 정상까지의 높이는 5촌으로 이전과 같다. 챙은 가죽 소재로, 겉은 흑색, 안은 맹황색이다. 턱끈은 기존의 가죽 소재에서 흑사원직(黑絲圓織)으로 바뀌고, 단추도 주물을 도금하는데 무늬는 기존의 이화에서 무궁화[槿花]로 바꾼다. 상반부와 정수리가 만나는 곳을 둥글게 백색의 선으로 두르게 되고, 하반부의 횡장(橫章)은 모두 백융(白絨)을 사용하지만 근위 경찰은 황융(黃絨)이다. 폭에 대한 언급이 없는데, 1895년의 대선 너비 7푼, 소선 너비 2푼을 그대로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권임순검의 선을 1줄만 대는데, 그 너비가 7푼이라 한 것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대선과 소선 사이의 간격은 1푼이고, 전장(前章)은 주물을 도금한 이화무늬로 장식한다.
- 정상장(頂上章)에 대한 규정은 없지만, 이때 같이 반포된 예모와 상모의 기본형태가 같으므로 정상장은 예모와 같은 규정을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예모의 정상장은 백색 소재로 이화를 만들어 금으로 장식하고, 정수리 가장자리를 금선양고직(金線兩股織)으로 두른다. 금선양고직은 두 줄로 된 금선을 말한다.
상의(常衣)
- 1895년 4월 19일 칙령 제81호로 제정된 상의(常衣)는 경무사·총무국장·경무관·총순의 것이다. 같은 해 6월 3일 제정된 칙령 제130호에서 상복의 착용 대상 범위를 각 부(府)의 경무관 이하 순검까지 확대 적용하고, 1897년 1월 14일 칙령 제7호로 누락되었던 순검의 상의가 추가된다. 1899년 3월 26일 칙령 제9호에서는 상장(常裝)에 속한 품목으로 제정된다.
- 상복 상의는 1895년부터 1899년까지 모두 상모와 같은 짙은 감색의 융을 쓴다. 길이는 골반뼈 상단에서 4촌 5푼을 내려온 지점까지이고, 소매길이는 손목뼈까지 오도록 하였다. 양쪽 겨드랑이 아래의 하단에 3촌 5푼 길이의 트임이 있고, 상의의 모든 가장자리와 등의 봉제 부분에 폭 8푼의 흑모(黑毛)로 가선을 붙인다.
- 깃은 폭 1촌 2푼으로, 앞면에는 장식이 없고 뒷면에는 흑색 선이 부착된 모습이다(표5). 이는 도식이 잘못 그려진 것으로, 1899년 상의처럼 깃 전체에 선을 둘렀던 것으로 추측된다. 깃의 형태는 도식의 앞모습을 보면 플랫칼라처럼 보이지만 뒷모습을 보면 스탠딩칼라이다. 1899년 상의 개정시, 권임순검의 상의는 1895년 형태를 유지하는데, 이 깃도 스탠딩칼라이다. 따라서 1895년 상의의 깃은 스탠딩칼라로 보는 것이 타당할듯하다.
- 흉장(胸章)에는 숨은 후크단추를 좌우에 6개 달고, 7푼 폭의 흑모(黑毛)로 만든 가선을 붙이고, 그 위에 사복식(蛇腹飾)을 부착한다. 주머니[物入]는 제도에서 앞면 좌우에 각 1개씩, 좌측 가슴에 1개가 있다고 하였으나 도식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 수장(袖章)은 계급에 따라 대선·소선의 소재와 수(數)를 달리한다. 대선은 폭 1촌 2푼의 흑모연이고, 소선은 폭 1푼의 흑색 모사로 뱀무늬를 짠 끈[蛇腹組黑毛系]을 쓴다.
- 한편, 1895년 4월 제도에서 순검은 상모만 제정되고 나머지 복식에 관한 규정은 없다. 6월에 가서 4월의 제도를 순검에게까지 확대 적용하므로,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상의 형태는 <표 5>와 같을 것이다. 다만, <그림 1~3>의 사진을 보면, 우임의 더블브레스트(Double breasted)형이다. 손화중과 전봉준이 체포된 것이 1894년 12월 2일이므로, <표 5>의 경찰복이 규정되기 전의 사진이다. 그런데 <표 5>의 상의와 전혀 다른 형태를 입고 있는 것이다. 단추는 좌우에 각 5개씩 달려 있고, 상의의 길이는 엉덩이까지 내려와 있다. <그림 2>의 왼쪽에 있는 경찰의 소매에 선 1줄이 확인된다. 1895년의 제도에서 순검의 상의 도식이 없는데, 후술할 1897년 제도에서 “단추를 좌우에 각 5개씩”쓴다고 했으므로, 순검의 상의는 1895년부터 더블브레스트형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 사진에서 소매의 가는선 1줄이 확인되므로 소선 1줄을 장식했을 가능성이 있다.
- 1897년 규정된 순검의 상의는 소재, 상의와 소매의 길이, 트임 위치와 간격, 깃 너비 등은 1895년과 같다. 차이점은 수장에 선 장식이 없다. 또 흉장에 이화무늬의 동(銅) 단추를 좌우에 각 5개씩 붙이는데, 선행연구에서는 이를 근거로 더블브레스트형이었을 것으로 보았다.[8]
- 1899년 3월 26일의 칙령 제9호에서 상의(上衣)는 경무사·경무관·총순에 관해 규정되었다. 도식은 『주본』에 있다. 소재는 짙은 감색 융이고, 깃은 스탠딩칼라이다. 깃과 아래 몸판의 좌우 가장자리에 흑사광직(黑絲廣織)의 가선을 두르고, 단추는 흑색실로 둥글게 짠 끈으로 무궁화형 장식과 매듭단추를 맺었다. 육군의 상복을 참고하면, 착용자 기준으로 왼쪽에 암단추가 있고 오른쪽에 매듭단추가 있는 앞중심 여밈이고, 단추의 반대쪽을 무궁화형으로 장식하여 가로로 5쌍을 부착하였다.
- 수장(袖章)은 흑사편직(黑絲匾織)과 흑사(黑絲)로 만든 ‘우(又)’자형 선으로 장식한다. 흑사편직의 수는 모든 계급이 1줄로 같고, 흑사로 만든‘우’자형 선의 수는 제식과 도식에 차이가 있다. 제식에는 경무사 4줄·경무관 3줄·총순 2줄이고, 도식은 경무사 5줄·총무국장 4줄·경무관 3줄·총순 2줄이다. 이렇게 도식과 제식이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은 같은 날 규정된 예복의 예모·수장·의령장에도 보이고 있어 무엇이 실제 적용된 규정인지 불확실하다. 다만, 당시의 경무청 관제에서 경무관 내에도 등급 구분이 있어, 총무국장은 3등 이상의 주임관인 경무관이 맡았고, 5서(署)의 경무서장은 같은 경무관이지만 6등 주임관이 맡았기 때문에 이들의 신분표시에 차등을 두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도식에 무게를 두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또 제식에는 없지만 도식에서는 수장의 맨 위에 이화장식이 있다. 예복의 상의처럼 자수를 놓거나 혹은 다회로 장식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 권임순검의 상의는 폭 7푼의 흑모를 사복식으로 부착하고, 수장은 흑사 ‘우(又)’자형 1줄을 부착한다고 따로 규정한다. 도식을 보면, 1895년 상복 상의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후크형 단추자리와 옷전체 가장자리에 사복식의 장식이 부착되었다. 수장은 흑사편직 1줄과 흑사 ‘우(又)’자형 선 1줄이 있고, 이화는 없다.
이때의 제도에 순검 상의는 언급이 없다. 따라서 이전의 더블브레스트형을 계속 착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본다면 1899년의 복제를 통해 상의는 삼중구조가 된다. 경무사부터 총순까지는 일자형으로 근화형 매듭단추를 단 형태이고, 권임순검은 일자형으로 사복식 장식이 부착되고 후크를 단 형태이며, 순검은 더블브레스트형인 것이다. |
바지[常袴]
상복(常服):하복(夏服)
- 상복의 하복은 1895년 칙령 제81호에서 경무사·총무국장·경무관·총순의 하복이 처음 제정되고, 『의주』에 도식이 있다. 제도에서는 상의만 규정했지만, 도식에는 바지도 있다. 모자는 제도와 도식에 모두 나타나지 않으므로 동복의 모자를 착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1899년 칙령 제9호에서는 권임순검의 하복에 관해 언급한다.
- 1895년의 규정은 하복의 색은 백색이고, 소재는 적당한 것을 임의로 쓴다.
- 상의는 여밈이 일자형이고, 앞 중심에 5개의 단추를 부착한다. 동복과는 다르게 수장을 제외한 모든 곳에 선장식이 없고, 상의 좌측 위와 양쪽 아래에 1개씩 덮개가 없는 주머니가 있다. 수장은 대선과 소선으로 장식하는데, 백색이다. 장식은 “동의와 같다(如冬衣)”라 했으므로, 경무사는 폭 1촌 2푼의 대선 1줄과 폭 1푼의 소선 4줄로 장식하고, 총무국장은 대선 1줄과 소선 3줄, 경무관은 대선 1줄과 소선 2줄, 총순은 대선 1줄과 소선 1줄이다. 순검의 하복은 1897년 1월 14일 칙령 제7호에서 규정되는데 수장에 선장식이 없고, 나머지는 동의와 같다. 이때의 동의가 더블브레스트형으로 추정되므로, 하복도 백색의 좌우에 각 5개의 단추를 단 더블브레스트형일 것이다.
- 하복 바지는 1895년에 규정이 없고 도식만 있는데, 옆선이 없는 형태이다. 이것은 모든 계급이 선장식이 없는 동일한 형태의 하복 바지를 입었고, 순검은 동복과 하복이 색과 소재만 다르고 상의와 바지의 모든 제식이 같다는 의미가 된다.
- 1899년에는 경무사 이하의 하복 중 하고(夏袴)에 관해서만 “이전의 표에 의하여 계속 사용할 것(舊表에 依ᄒᆞ야 仍用ᄒᆞᆯ事)”이라 하여, 바지는 1895년 제도를 유지했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 권임순검의 복식을 규정하면서 하복에 관해서도 언급하는데, “하의는 바지만 백색을 쓰되 근위입직과 평상출입이라도 궐내에서는 백색을 착용하지 말 것”[9]이라 하였다. 따라서 권임순검은 동복과 같은 감색 상의에 백색 바지를 하복으로 입었고, 궐 안에서는 백색바지를 입을 수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구분 | 경무사 | 총무국장경무관 | 경무관 | 총순 | 순검 | |
---|---|---|---|---|---|---|
제식(製式) | 백색의 적당한 소재 동복과 같으나 전체에 흑모연 부착하지 않음 |
1895년에 규정 없음. 1897년에 규정됨. 수장에 선장식 없고 '冬衣'와 같다고 규정 더블브레스트 추정 | ||||
흉장(胸章) | 단추 5개 부착 | |||||
수장 (袖章) |
소재 | 대선·소선 공통 백색 대선 폭 1촌, 소선 1푼 | ||||
장식 | 대선 1줄·소선 4줄 | 대선 1줄·소선 3줄 | 대선 1줄·소선 2줄 | 대선 1줄·소선 1줄 |
예복(禮服)
예모(禮帽)
- •
- •
상의(上衣)
- •
- •
바지[袴]
- •
- •
부속품
- •
- •
상장(喪章)
- •
- •
경무청시기 경찰 제복에 대한 견해
- 1895년의 투구형 상모는 <그림 1>, <그림 2>, <그림 3>에서 볼 수 있다. <그림 1>과 <그림 2>는 동학농민혁명으로 인해 1894년 12월 체포된 손화중(1861~1895년)과 전봉준(1855~1895년)의 사진이다. 이들 옆에 있는 경찰은 전통 난모(暖帽) 위에 투구형 상모를 쓰고 있다. <그림 3>은 가마를 탄 관원의 양 옆에 백색 하복을 입은 경찰 4명이 있는데, 이들의 상모도 투구형이다. 사진에서는 정수리가 둥근 형태, 이마의 전장 장식, 챙의 모의 전체에 원형을 그리며 둘러져 있는 것이 확인된다. 챙의 모양으로 보아 당시의 제식과 도식이 반포되지는 않았지만, 1895년 상모가 규정되기 이전에 착용되었던 전통식과 서양식이 맞물린 과도기 형태로 추측된다.
- 1895년의 상의는 깃의 앞과 뒷모습이 잘못 그려진 것으로, 전체에 선을 둘렀던 1899년 상의 깃과 같은 형태로 추정된다. 1899년 상의 개정시, 1895년의 스탠딩칼라를 유지했던 권임순검의 사례로 보아 1895년 상의의 깃은 스탠딩칼라로 보는 것이 타당할듯하다.
<그림 1> 손화중과 순검 |
<그림 2> 전봉준과 순검 |
<그림 3> 가마를 탄 관원과 경찰 |
지식관계망
클래스
관계정보
시각자료
주석
- ↑ 『관보』 개국 504년(1895) 4월 21일; 『議奏』 개국 504년(1895) 4월 19일. ‘警務廳官吏의 服制에 대한 內閣決定書’
- ↑ 『관보』 개국 504년(1895) 6월 5일 칙령 제130호 ‘各府警務官以下服制에 關ᄒᆞᄂᆞᆫ件’.
- ↑ 『관보』 개국 504년(1895) 10월 21일 칙령 제179호 ‘警官表喪式’.
- ↑ 『의주』 개국 504년(1895) 10월 20일.
- ↑ 『관보』 건양 2년(1897) 1월 16일.
- ↑ 『관보』 광무 3년(1899) 3월 28일.
- ↑ 『관보』 건양 2년(1897) 1월 16일: 【勅令】第七號. “第四條. 警務官常帽表橫章欄內에 但近衛警務官用黃絨九字와 總巡常帽表欄內에 但近衛總巡用黃絨八字 添入事.”
- ↑ 김정민, 「구한말 경찰복 연구」, 석사학위논문,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2011. 62-63쪽
- ↑ 『관보』 1899년 3월 28일: 【勅令】 第9號. 第四條. 刀ᄂᆞᆫ 乘馬時가 아니면 房內外ᄅᆞᆯ 勿論ᄒᆞ고 環을 刀帶釣鐵에 掛ᄒᆞᆯ事. 但權任巡檢의 帽裝은 本表와 如ᄒᆞ되 常帽橫章에 白絨七分橫線一條ᄅᆞᆯ 餙ᄒᆞ고 常裝上衣에 黑毛七分幅巳腹을 附ᄒᆞ고 袖章에 黑絲一條ᄅᆞᆯ 飾ᄒᆞ고 “夏衣에ᄂᆞᆫ 袴만 白色을 角호ᄃᆡ 近衛入直과 平常出入이라도 闕內에ᄂᆞᆫ 白色을 勿着ᄒᆞᆯ事”
참고문헌
『고종실록(高宗實錄)』, 『관보(官報)』, 『의궤(儀軌)』, 『의주(議奏)』, 『일성록(日省錄)』, 『주본(奏本)』, 『칙령(勅令)』
- 단행본
- 경찰청, 『韓國警察服制史』, 민속원, 2015.
- 국립고궁박물관, 『100년 전의 기억, 대한제국』, 그라픽네트, 2010.
- 국방군사연구소, 『韓國의 軍服飾發達史Ⅰ』, 군인공제회 제1문화사업소, 1997.
- 학위논문
- 김정민, 「구한말 경찰복 연구」, 석사학위논문,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2011.
- 박선희, 「대한제국기 의례반차도의 경찰 제복 고증」, 석사학위논문, 단국대학교 대학원,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