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회암사지박물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Clayart141 (토론 | 기여) (d) |
Clayart141 (토론 | 기여) |
||
6번째 줄: | 6번째 줄: | ||
|주소 = 경기도 양주시 회암사길 11 | |주소 = 경기도 양주시 회암사길 11 | ||
|사진 = 회암사.jpg | |사진 = 회암사.jpg | ||
− | |웹사이트 = | + | |웹사이트 = https://www.yangju.go.kr/museum/index.do |
+ | }} | ||
== 정의 == | == 정의 == | ||
== 내용 == | == 내용 == |
2020년 4월 10일 (금) 08:27 판
시설 정보 | |
---|---|
명칭 |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 |
영문명칭 | Yangju City Hoeam temple Museum |
분류 | 박물관 |
설립 시기 | 2012년 10월 19일 |
규모 | |
주소 | 경기도 양주시 회암사길 11 |
웹사이트 | https://www.yangju.go.kr/museum/index.do |
정의
내용
회암동 천보산 자락에 위치한 회암사는 유교사회를 지향했던 조선시대에 왕실의 적극적 후원을 입은 조선최대의 왕실사찰로서 한국 불교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찬란했던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절터에 남아있는 유구를 통해 당시 회암사의 위상을 상상해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양주시에서는 이러한 회암사지를 경기북부 최고의 관광지와 역사교육의 장으로 조성하기 위해 회암사지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하였습니다. 종합정비계획에 따라 연차적으로 회암사지 발굴조사, 박물관 건립, 유적 및 단지정비 등의 사업을 추진하였으며,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은 그 사업의 일환으 로 2012년 10월 19일 개관한 이래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은 고려 말·조선 초 최대 왕실사찰이었던 회암사의 역사와 위상을 재조명하고, 유물수집·보관·연구·전시·교육기능을 통해 박물관 으로서의 역할을 올바르게 수행함은 물론, 대국민서비스를 강화함으로써 보다 발전적인 역사·문화중심기관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전문박물관으로 운영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국내·외 기관과의 문화교류 창구로 활용하여 문화예술 도시로서의 이미지를 창출하는데 기여하는 양주시의 대표 박물관으로 운영해 나갈 것입니다.
지식관계망
- 1. 고려 티벳불교와 선불교 선맥
- 고려왕실의 티벳불교 수용, 인도 나란다대학 출신 ‘지공’과 몽산덕이(철산소경의 제자), 그리고 ‘지공’과 ‘철산소경’을 존경한 고려승려 ‘민지’가 쓴 ‘금강산유점사사적기’
- 금강산유점사사적기
금강산유점사사적기(金剛山楡岾寺事蹟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고려대,동국대 소장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7542 보욱은 1861년(철종 12) 건봉사 연사(蓮社)에서 「무량수경중간서(無量壽經重刊序)」를 지은 바 있는데, 1871년에 민지의 사적기를 필사한 다음 여기에 『금강산유점사속사적기(金剛山楡岾寺續事蹟記)』를 부기하였다. 그 내용은 유점사의 중건 및 중수 때 시주한 사항과 고승들이 주석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조선 전기의 시주자로는 세조와 효령대군, 예종이 있으며 조선 중기는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仁穆王后), 조선 후기는 영조와 정조, 철종, 순종의 정비 순원왕후(順元王后) 등이 있다. 시주자에는 왕실 외에도 정난종(鄭蘭宗), 홍윤성(洪允性), 노사신(盧思愼), 한계희(韓繼熙), 김보근(金輔根), 김좌근(金左根), 이유원(李裕元) 등과 같은 유림도 기록되어 있다.
- 논문출처:懶翁의 檜巖寺 悟道에 대한 내용 모색 191p
- 철산소경과 지공이 모두 金剛山을 참배한 사실로 미루어보면, 당시 회암사는 개경에서 금강산에 이르는 노정에서 들리는 경유사찰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 2. 조선왕실 불사의 역사
- 조선왕조실록DB '회암사' 검색 시 297건의 기록.
- http://sillok.history.go.kr/search/searchResultList.do
- 크게 태조 이성계, 세조, 효령대군으로 인물을 소개할 계획
- 3. 일본과 불교 교류, 회암사
- 일본과 불교 교류
1) 논문출처:孝寧大君 李補(1396~1486)의 佛事活動과 그 意義 인용민(불교문화연구재연구소) 세조는 상원사 관음현상을 책으로 만들어 나라 안에 보급토록 하였고 일본사신에 게 하사할 정도로 상서로운 일을 널리 알리려 하였다. 2) 논문출처: 懶翁의 檜巖寺 悟道에 대한 내용 모색 191p 나옹의 회암사 수행과 관련해서, 「행장」은 유일하게 일본 승려 石翁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이는 내용적으로는 그다지 주목을 끌지 않 지만, 당시 회암사가 외국인도 와서 머물 정도로 일정한 규모와 개방성 을 가진 사찰이었다는 점을 알게 한다.
- 4. 그 외의 스토리 고안
- 황방리 왕녀 승복 태실
- 문정왕후 불사
- 5. 자료 활용안
- 금강산유점사사적기(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조선왕조실록DB
-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 주요유물 검색엔진(12000여점) 예로 효령대군 수막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