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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九日,至常州府,是日晴,請朝,無錫縣知縣,忘其姓名,來遺礙物,自驛過建渡橋,入無錫縣治之中,縣即古句吳太伯所都,過建虹橋、都憲門、少司寇弟、億豐橋、進士坊,至錫山之下,山縣西北間,又自錫山過十里鋪、高橋巡檢司、(藩)【潘]鋪、洛社鋪、石潭橋、横林鎮鋪、橫林橋、戚墅鋪、興明橋,至劍井,井在東岸,作屋以覆,即瑞氣升騰之地,日夕,過鷹鋪、大橋,至宋菱橋,橋之東西,皆作二層,閣以當路,即進士牌樓也,又過大虹橋三,至常州府,從東水關入城,府治及武(晉)進縣”之治,俱在城中,所過虹橋,亦至七八,行十餘里,至毗陵曝泊,又出自西水關,府即延陵郡吳季子采邑,湖山之美,亭臺之設,自古稱道,又過遞運所、沛河橋,至(牛)(牛)大壩,手牽舟上岸,繞度壩限,日曙矣,  
 
十九日,至常州府,是日晴,請朝,無錫縣知縣,忘其姓名,來遺礙物,自驛過建渡橋,入無錫縣治之中,縣即古句吳太伯所都,過建虹橋、都憲門、少司寇弟、億豐橋、進士坊,至錫山之下,山縣西北間,又自錫山過十里鋪、高橋巡檢司、(藩)【潘]鋪、洛社鋪、石潭橋、横林鎮鋪、橫林橋、戚墅鋪、興明橋,至劍井,井在東岸,作屋以覆,即瑞氣升騰之地,日夕,過鷹鋪、大橋,至宋菱橋,橋之東西,皆作二層,閣以當路,即進士牌樓也,又過大虹橋三,至常州府,從東水關入城,府治及武(晉)進縣”之治,俱在城中,所過虹橋,亦至七八,行十餘里,至毗陵曝泊,又出自西水關,府即延陵郡吳季子采邑,湖山之美,亭臺之設,自古稱道,又過遞運所、沛河橋,至(牛)(牛)大壩,手牽舟上岸,繞度壩限,日曙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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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부(常州府) 도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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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은 맑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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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일 (목) 16:38 판

개요

학력

  • 역사교육과 재학

관심사

음악

  • ost, 기타, 플룻 연주곡

유튜브

답사

환경

디지털 큐레이션 기획

역사 영상 콘텐츠를 통한 사료의 재창출

  • 역사 영상 콘텐츠
  • 한국사 교과서 수록 사료
  • 교과서에 수록된 사료를 중점적으로 탐색하여 그 사료가 바탕이 된 역사 영상 콘텐츠를 찾아 연관성을 확립하고, 역사 교육 자료의 소재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 타겟 대상:역사교사
  • 타겟 메시지:디지털 역사자료를 통해 역사 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 도입·실행

역사

  • 한국의 건국 신화
  1. 역사 영역에서의 신화
  2. 종류

교육

  • 역사교육
  • 현장 체험 학습
  • 탐구식 수업

환경

  • 환경오염
  • 재활용품

영상

  • 드라마
  • 예능
  • 유튜브

전시

최부의 표해록

2월 19일

十九日,至常州府,是日晴,請朝,無錫縣知縣,忘其姓名,來遺礙物,自驛過建渡橋,入無錫縣治之中,縣即古句吳太伯所都,過建虹橋、都憲門、少司寇弟、億豐橋、進士坊,至錫山之下,山縣西北間,又自錫山過十里鋪、高橋巡檢司、(藩)【潘]鋪、洛社鋪、石潭橋、横林鎮鋪、橫林橋、戚墅鋪、興明橋,至劍井,井在東岸,作屋以覆,即瑞氣升騰之地,日夕,過鷹鋪、大橋,至宋菱橋,橋之東西,皆作二層,閣以當路,即進士牌樓也,又過大虹橋三,至常州府,從東水關入城,府治及武(晉)進縣”之治,俱在城中,所過虹橋,亦至七八,行十餘里,至毗陵曝泊,又出自西水關,府即延陵郡吳季子采邑,湖山之美,亭臺之設,自古稱道,又過遞運所、沛河橋,至(牛)(牛)大壩,手牽舟上岸,繞度壩限,日曙矣,

상주부(常州府) 도착하였습니다. 이 날은 맑았습니다. 아침에 성명은 잊은 무석현(無錫縣)(无锡, Wúxī, 우시)[1][2][3][4][5][6][7]의 지현244이 와서 찬거리를 주었습니다. 석산역에서 건도교(建渡橋)를 지나 무석현치(無錫縣治)의 안으로 들어왔는데, 무석현은 곧 옛날 구오(句吳) 태백(太伯)245이 도읍했던 곳이었습니다. 건홍교(建虹橋)·도헌문(都憲門)·소사구제(少司寇第)246. 억풍교(億豊橋)·진사방(進士坊)을 지나 석산(錫山)의 아래에 이르렀는데, 석산은 무석현의 서쪽과 북쪽 사이에 있었습니다. 또 석산에서 십리포(十里鋪)·고교순검사(高橋巡檢司) 247. 반봉포(潘q鋪) 248. 낙사포(洛社鋪)·석독교(石潭橋)·횡림진포(橫林鎭鋪)·횡림교(橫林橋)·척서포(戚墅鋪)·흥명교(興明橋)를 지나 검정(劍井)에 이르렀습니다. 검정은 동쪽 언덕에 있었는데 지붕을 만들어 덮었으니, 곧 상서로운 기운이 올라오는 곳이었습니다. 해질 무렵 마안포(行爲鋪)249, 대교(大橋)를 지나 채릉교(采__橋)에 이르렀습니다. 채릉교의 동쪽, 서쪽에는 모두 2층 누각을 지어서 길을 막고 있으니 곧 진사패루(進士牌樓)였습니다. 또 큰 홍교(虹橋) 셋을 지나 상주부에 이르러서 동수관(東水關)250으로부터 성에 들어갔습니다. 상주부의 부치와 무진현(武進縣)의 현치는 모두 성안에 있었습니다. 지나온 홍교 또한 7-8개나 되었습니다. 10여 리를 가서 비릉역(此陵驛)에 이르러 조금 머물렀다가 다시 서수관(西水關)으로 나왔습니다. 상주부는 곧 연릉군(延陵郡)이므로, 오나라 계자(季子)[8][9]252의 채읍(采邑) 253 으로서, 호수와 산의 아름다움과 정(亭)과 대(臺)의 설치는 예로부터 명성이 자자합니다. 또 체운소(遞運所)254와 패하교(流河橋)를 지나 분우대파(奪牛大廟)에 이르러, 배를 당겨 매고 언덕으로 끌어올려 겨우 방죽의 끝을 지나니 날이 샜습니다.

  • 기후
  • 제도(관직)
  • 지명
  • 지리
  • 역사
  • 토목
  • 건축물
  • 풍경
  • 기술
  • 시간

19th Day. Arrival at Ch’ang-chou Prefecture. This day was fair. At dawn the County Magistrate of Wu-hsi County – I have forgotten his name - came and presented food to us. From the station we [continued on through Wu-hsi County and Ch’ang-chou Prefecture to Niu-pen Great Embankment].

2월 20일

2월 21일

2월 22일

2월 23일

2월 24일

2월 25일

2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