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보 박태원 결혼식 방명록"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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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 박태원의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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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의 결혼==
구보 박태원은 1934년 10월 24일 결혼식을 올렸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조선중앙일보'에 같은 해 8월 1일부터 9월 19일까지 30회에 걸쳐 연재되었는데, 연재를 끝낸지 한 달만에 결혼을 한 셈이다. 박태원은 혼례를 올린 뒤 신부인 김정애의 집에서 사흘을 보내고, 10월 27일 결혼식 피로연을 가졌다.  피로연은 당시에 문단을 대표하는 문우들과 그의 동창들을 초청하여 요릿집에서 성대히 치뤄졌다고 하는데, '구보 박태원 결혼식 방명록'은 바로 이 때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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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은 1934년 10월 24일 결혼식을 올렸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조선중앙일보'에 같은 해 8월 1일부터 9월 19일까지 30회에 걸쳐 연재되었는데, 연재를 끝낸지 한 달만에 결혼을 한 셈이다. 박태원은 혼례를 올린 뒤 신부인 김정애의 집에서 사흘을 보내고, 10월 27일 결혼식 피로연을 가졌다.  피로연은 당시에 문단을 대표하는 문우들과 그의 동창들을 초청하여 요릿집에서 성대히 치뤄졌다고 하는데, '구보 박태원 결혼식 방명록'은 바로 이 때 만들어진 것이다.
  
 
==구보 박태원 결혼식 방명록==
 
==구보 박태원 결혼식 방명록==
 
방명록은 1책으로, 크기는 31x22.5cm이고, 표지를 제외하면 총 31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방명록의 표지에는 영문으로 'SKETCHBOOK'이라는 글자가 인쇄되어 있는데, 당시 시중에서 판매하던 양장본 형태의 스케치북을 방명록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방명록은 1책으로, 크기는 31x22.5cm이고, 표지를 제외하면 총 31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방명록의 표지에는 영문으로 'SKETCHBOOK'이라는 글자가 인쇄되어 있는데, 당시 시중에서 판매하던 양장본 형태의 스케치북을 방명록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방명록에 글을 남긴 인물들은 총 30명이다. 이들은 주로 '구인회' 동인들과 문단 작가들, 소설의 삽화가들, 그리고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와 호세이대학 동창생들이다. 이 방명록은 당대의 문단의 한 측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나아가 근대 경성의 풍속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방명록에 글을 남긴 인물들은 총 30명이다. 이들은 주로 '구인회' 동인들과 문단 작가들, 소설의 삽화가들, 그리고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와 호세이대학 동창생들이다. 이 방명록은 당대의 문단의 한 측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나아가 근대 경성의 풍속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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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은 박태원의 유족들이 보관해오다가,  2009년 박태원 탄생 100년을 계기로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되었다. 2016년 서울역사박물관은 방명록의 원문 이미지와 해제를 담은 도록을 출간하였고, 현재는 서울역사박물관의 온라인 아카이브 서비스를 통해서 원문을 PDF형태로 열람 할 수 있다.
 
방명록은 박태원의 유족들이 보관해오다가,  2009년 박태원 탄생 100년을 계기로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되었다. 2016년 서울역사박물관은 방명록의 원문 이미지와 해제를 담은 도록을 출간하였고, 현재는 서울역사박물관의 온라인 아카이브 서비스를 통해서 원문을 PDF형태로 열람 할 수 있다.
  

2019년 7월 29일 (월) 08:18 판

구보 박태원 결혼식 방명록()
대표명칭 구보 박태원 결혼식 방명록



박태원의 결혼

박태원은 1934년 10월 24일 결혼식을 올렸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조선중앙일보'에 같은 해 8월 1일부터 9월 19일까지 30회에 걸쳐 연재되었는데, 연재를 끝낸지 한 달만에 결혼을 한 셈이다. 박태원은 혼례를 올린 뒤 신부인 김정애의 집에서 사흘을 보내고, 10월 27일 결혼식 피로연을 가졌다. 피로연은 당시에 문단을 대표하는 문우들과 그의 동창들을 초청하여 요릿집에서 성대히 치뤄졌다고 하는데, '구보 박태원 결혼식 방명록'은 바로 이 때 만들어진 것이다.

구보 박태원 결혼식 방명록

방명록은 1책으로, 크기는 31x22.5cm이고, 표지를 제외하면 총 31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방명록의 표지에는 영문으로 'SKETCHBOOK'이라는 글자가 인쇄되어 있는데, 당시 시중에서 판매하던 양장본 형태의 스케치북을 방명록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방명록에 글을 남긴 인물들은 총 30명이다. 이들은 주로 '구인회' 동인들과 문단 작가들, 소설의 삽화가들, 그리고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와 호세이대학 동창생들이다. 이 방명록은 당대의 문단의 한 측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나아가 근대 경성의 풍속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방명록은 박태원의 유족들이 보관해오다가, 2009년 박태원 탄생 100년을 계기로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되었다. 2016년 서울역사박물관은 방명록의 원문 이미지와 해제를 담은 도록을 출간하였고, 현재는 서울역사박물관의 온라인 아카이브 서비스를 통해서 원문을 PDF형태로 열람 할 수 있다.

방명록의 인물들

번호는 방명록에 적힌 순서

  1. 이상(작가) - 구보 박태원 결혼식 방명록 - 이상 기록
  2. 정인택 - 구보 박태원 결혼식 방명록 - 정인택 기록
  3. 윤태영
  4. 소동규
  5. 백남희
  6. 김동일
  7. 김진섭
  8. 정지용
  9. 이승만(화가)
  10. 이태준
  11. 이무영
  12. 고희정
  13. 배운학
  14. 함화진
  15. RCS
  16. 안석영
  17. 김기림
  18. 조용만
  19. 윤희순
  20. 김상용
  21. 유운경
  22. 이석훈
  23. 유엽
  24. 이흡
  25. 조벽암
  26. 안희남
  27. 이하윤
  28. 김규택
  29. 이원조
  30. 김옥진

소장유물자료집7 구보 결혼, 서울역사박물관,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