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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2·3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싶어 만들었다는 '가나다라',  
 
**재일동포 2·3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싶어 만들었다는 '가나다라',  
 
**트윈 폴리오 해체 후 홀로서기를 시작하던 시절에 만든 '딩동댕 지난 여름' '꽃보다 귀한 여인' 등  
 
**트윈 폴리오 해체 후 홀로서기를 시작하던 시절에 만든 '딩동댕 지난 여름' '꽃보다 귀한 여인' 등  
그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노래를 만들고 불러 지금의 '가객(歌客)' '음유시인' 명성을 얻었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7/21/2011072102518.html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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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노래를 만들고 불러 지금의 '가객(歌客)' '음유시인' 명성을 얻었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7/21/2011072102518.html 윤형주 칼럼, '세시봉, 우리들의 이야기'#6트윈 폴리오 해체… 가객 송창식의 탄생]</ref>
  
 
*자세한 사항은 나무위키의 [https://namu.wiki/w/%EC%86%A1%EC%B0%BD%EC%8B%9D#s-2 송창식 생애] 부분 참고
 
*자세한 사항은 나무위키의 [https://namu.wiki/w/%EC%86%A1%EC%B0%BD%EC%8B%9D#s-2 송창식 생애] 부분 참고

2019년 6월 15일 (토) 22:32 판


정의

대한민국의 포크송 가수 및 싱어송라이터.

내용

인물정보

  • "포크를 대중화한 영원한 가객"[1]
  • 서울예술고등학교 졸업, 유명 지휘자 금난새와 동창이다.
금난새가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천재적인 친구가 있었는데 
너무 가난해서 수돗물로 배를 채우곤 했다."고 한 당사자가 송창식.
  • 음악감상실 세시봉에서 데뷔무대를 가졌다.
  • 1967년 같은 세시봉멤버였던 윤형주트윈폴리오로 데뷔하였다
    • 대표곡 : 웨딩케이크, 하얀손수건
  • 대부분의 곡을 직접 작사,곡 하고 노래까지 불렀다. (천재적인 싱어송 라이터)
"그간 발매한 앨범 수록곡 외 미발표한 자작곡이 1000여 곡 정도 된다"며 
"청년 시절에는 하루 종일 24시간을 음악에 살았다. 
 꿈속에서도 작곡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또 "꿈속에서 악상이 떠오르면, 
 아침에 일어나 악보로 정리한다"며 
 그만의 독특한 창착 과정을 공개하기도 했다.[2] 
  • 시인 서정주와의 인연도 깊다. 자신의 시를 가사로 쓰도록 허용하지 않기로 유명하나 송창식에게 만큼은 허용
  • 팬층이 두터운 편, 소설가 박완서도 송창식의 팬이었다고 한다. [3]
  • 그의 신조는 "연습 없이 노래는 없다. 연습과 결과는 완전히 정비례한다" 였다.
  • 트윈폴리오를 해체하고 송창식은 솔로로 활동하며 자신의 음악적 지평을 넓혔다.
    • 사랑에 관한 한 최고의 표현이 담긴 '우리는',
    • 재일동포 2·3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싶어 만들었다는 '가나다라',
    • 트윈 폴리오 해체 후 홀로서기를 시작하던 시절에 만든 '딩동댕 지난 여름' '꽃보다 귀한 여인' 등

그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노래를 만들고 불러 지금의 '가객(歌客)' '음유시인' 명성을 얻었다.[4]

음반

  • 네이버에 송창식 정규 앨범으로 등재된 음반을 기준으로 기입함.

에피소드

세시봉 데뷔무대

애초에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꿈꾸는 클래식 전공자였으나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사정 때문에 중도 포기하고
방황하다가 클래식 창법으로 대중가요계에 등장한 조영남을 만나면서 가수로 데뷔했다.
남루한 차림새에 기타 하나 들고 세시봉 무대에 처음 올라섰을 당시, 모두가 의아하게 여겼으나
그가 한 소절을 부르자마자 모두가 놀랐다고 한다.

송창식이 세시봉에서 어떻게 데뷔했는지는 유명하다.

그는 점퍼와 워커 차림에 낡은 통기타를 치며 오페라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불러냈다.
기대를 하지 않았던 만큼 모두가 깜짝 놀랐다. 그러나 다음에 뭘 불렀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때 그는 앙코르 송으로 한 곡을 더 불렀다. 노래를 부르기 전에 이렇게 운을 뗐다.

"십자군 전쟁 때 어느 병사의 이야기입니다."

주위가 숙연해졌다. 그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머니 나 울며 당신 곁을 떠났으나 나는 참 행복스러운 병정이오'로 시작하는
'어머니(Cara Mamma)'란 가곡이었다. 노래를 끝낸 뒤 그는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아들의 편지를 받은 것은 아들을 기다리다 숨진 어머니가 아니라 그 옆을 지켰던 신부님이었습니다."
그러곤 다시 기타를 치며 "오 마리아, 오 마리아, 오 마리아, 아멘"이란 구절을 불렀다.
나중에야 알았다. 악보를 구해봤더니 그 후렴이 없었다. 송창식에게 물었더니 그는
"내가 덧붙인 거야"라고 태연스레 대답했다. 그때 깨달았다. 그에겐 노래를 회화나 이야기처럼 불러내는 능력이 있었다.

타고난 재능이었다. [5]


아래는 송창식 첫 등장 당시 에피소드와 불렀던 노래 (MBC 예능 놀러와클립)

독특한 생활

  • 밤낮 바뀐 생활로 유명하다. 남들 다 잘 때 일어나고 다 일어날 때 잔다. 심지어는 시차가 반대인 미국에서도 그곳의 낮과 밤에 맞춰 거꾸로 자고 일어났다고 한다.
  • 위와 같은 생활 패턴이 생긴 것은 송창식의 자존심과도 관련이 있다는 윤형주의 이야기.
트윈 폴리오를 처음 시작했던 당시 송창식은 가난했고 갈 곳이 없었으나 자존심은 셌다.


종종 집에 데려갔을 때도 내 어머니의 관심을 불편해 했고, 이틀 만에 우리 집을 나와 세시봉으로 돌아갔다.
그런 그가 마침내 방 한 칸을 얻은 것이 1968년이었다.
당시 같이 어울렸던 사람 중 대일학원 강사였던 김영남씨가 술을 마시다 송창식에게 물었다.
"원효호텔에서 잘래?"
옳다구나 송창식이 따라간 곳이 서울 원효로에 있던 김영남씨의 집 뒷방이다.
북향인 데다 방 밖을 벽이 가로막아 빛이 들지 않았다. 낮 한 시에도 어두컴컴했다.
새벽에 잠드는 송창식의 지금 수면 습관도 그때 비롯된 것으로 짐작한다.


  • 가수 김도향과 함께 단전 호흡 수련을 오랫동안 해온 것으로도 유명하다.[6]
  • 인생관, 가치관이 특이하다. 매일같이 특이한 체조와 함께 점심마다 같은 음식을 하나 정해서 몇 년 째 먹는다고 한다. 현재는 스파게티만 3년~4년 째 점심으로 매일 같은 가게에서 먹는다고 한다. 스파게티 주인이 송창식씨가 매일 찾아와서 같은 스파게티를 먹으러 온다고 방송에까지 나왔었다.[7]
  •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도 송창식과의 인터뷰를 위해 새벽같이 찾아가 한참을 설득해서 성사시켰다.

금지곡

  • 당시 대부분의 대중가요는 여러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는데, 송창식의 노래 중에서도 왜 불러고래사냥이 지정되었다.
  • 왜 불러고래사냥 모두 박정희 정권 시절의 영화<바보들의 행진>(1975)의 OST였다.
    • 왜 불러는 영화에서 머리 긴 청년들이 장발단속을 피해 달리는 장면에서 쓰였다. 그러니까 청년들이 달아나면서 경찰들에게 "왜 불러"라고 놀리는 의도로 삽입된 것이 이 노래였는데, 덕분에 당시 공권력을 조롱했다는 이유로 금지곡명단에 오른 곡이다.[8]
    • 고래사냥은 염세주의를 부추긴다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고 하나, 영화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고래사냥 가사이다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 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 앉았네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삼등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간밤에 꾸었던 꿈의 세계는
아침에 일어나면 잊혀지지만
그래도 생각나는 내 꿈 하나는
조그만 예쁜 고래 한 마리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우리들 사랑이 깨진다 해도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는다 해도
우리들 가슴 속에는 뚜렷이 있다
한마리 예쁜 고래 하나가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 금지곡의 귀재(?)인 김민기가 유신정권을 비판하는 공장의 불빛이라는 노래극의 음반을 녹음할 때 작업실을 빌려주었다.[9]

멀티미디어

노래영상

담배가게 아가씨

  •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멤버인 정엽과 윤도현이 리메이크하며 유명해졌다.
  • 익살스러운 가사와 기타 리프가 멋진 곡이다.
  • 옆에서 기타를 치고 있는 사람은 기타리스트 함춘호인데, 송창식을 통해 기타를 접하게 되었고,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가수들의 음반작업에 참여하는 대표 기타리스트가 되었다. 송창식 공연이 있을 때엔 항상 동행하며 기타를 친다.

한 번쯤

비의 나그네

  • 가장 좋아하는 노래.
  • 작사는 향남, 작곡은 이장희가 했지만, 송창식 목소리와 잘 어울리는 곡이다.

네트워크 그래프

참고자료

이미지 출처

기여

주석

  1. 엠넷 legend 100 artist 소개문구
  2. 스타투데이 기사, 송창식 "미발표곡 1천곡, 금난새의 천재라는 평에‥" (2013.0925)
  3. 보그 매거진 "한 사람, 박완서"(2019.02.20)
  4. 윤형주 칼럼, '세시봉, 우리들의 이야기'#6트윈 폴리오 해체… 가객 송창식의 탄생
  5. 윤형주 조선일보 칼럼 세시봉, 우리들의 이야기 #4 무협지 읽는 사나이
  6. 나무위키 송창식 여담
  7. 나무위키 송창식 여담
  8. 나무위키 송창식 대표곡
  9. 송창식,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