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50706)"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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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15=Horace G. Underwood
 
|원문15=Horace G. Underwood
  
|번역문1={{선교사편지인물태그|[[Underwood, Horace G.(원두우)|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br/>한국, {{선교사편지공간태그|[[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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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1={{선교사편지인물태그|[[Underwood, Horace G.(원두우)|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br/>일본, {{선교사편지공간태그|[[요코하마]]}}
 
|번역문2=1885년 7월 6일
 
|번역문2=1885년 7월 6일
 
|번역문3={{선교사편지인물태그|[[Ellinwood, Frank F.|엘린우드]]}} 박사님께,
 
|번역문3={{선교사편지인물태그|[[Ellinwood, Frank F.|엘린우드]]}} 박사님께,
|번역문4=<div style="text-align:justify">박사님께서 보내주신 지난 {{선교사편지자료태그|[[etter From Ellinwood To Underwood (18850525)|5월 25일자 편지]]}}가 방금 전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박사님께서 그 전에 보내주셨던 편지도 방금 전 도착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은 이곳<ref>이곳 : 서울</ref>이 아닌 본국의 어려움 때문에 중단되었었기 때문에 저로서는 그 문제에 대해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어서 5월 25일자 편지에 대해서는 제가 답신을 보내드릴 필요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상황파악을 전혀 하지 못한 채, 여러 가지 결정을 내렸던 것은 아니라는 점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편지를 썼던 것은 {{선교사편지공간태그|[[요코하마(横浜)]]}}에 있는 {{선교사편지인물태그|[[Roomis, Henry|루미스]]}}는 제게 매우 다급하게 전했던 충고를 들은 후였습니다. 그분은 일본에 있는 다른 어떤 선교사들보다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국에 와 있는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으로부터도 비슷한 조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한국사람들도 한결같이 제게 “그렇게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안전할 것이라”고 단언했었습니다. 제가 지금 박사님께서 편지에서 하셨던 말씀에 대해 변명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한국에 관해 제가 내렸던 결정이 전적으로 부적절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을 뿐입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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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4=<div style="text-align:justify">박사님께서 보내주신 지난 {{선교사편지자료태그|[[Letter From Ellinwood To Underwood (18850525)|5월 25일자 편지]]}}가 방금 전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박사님께서 그 전에 보내주셨던 편지도 방금 전 도착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은 이곳<ref>이곳 : 서울</ref>이 아닌 본국의 어려움 때문에 중단되었었기 때문에 저로서는 그 문제에 대해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어서 5월 25일자 편지에 대해서는 제가 답신을 보내드릴 필요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상황파악을 전혀 하지 못한 채, 여러 가지 결정을 내렸던 것은 아니라는 점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편지를 썼던 것은 {{선교사편지공간태그|[[요코하마|요코하마(横浜)]]}}에 있는 {{선교사편지인물태그|[[Roomis, Henry|루미스]]}}는 제게 매우 다급하게 전했던 충고를 들은 후였습니다. 그분은 일본에 있는 다른 어떤 선교사들보다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국에 와 있는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으로부터도 비슷한 조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한국사람들도 한결같이 제게 “그렇게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안전할 것이라”고 단언했었습니다. 제가 지금 박사님께서 편지에서 하셨던 말씀에 대해 변명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한국에 관해 제가 내렸던 결정이 전적으로 부적절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을 뿐입니다.</div>
 
|번역문5=<div style="text-align:justify">저는 지금 언어 공부에 매우 열심히 임하고 있으며 그리고 모든 것을________ (편지가 구겨져 알아 볼 수 없게 되었음) 하게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div>
 
|번역문5=<div style="text-align:justify">저는 지금 언어 공부에 매우 열심히 임하고 있으며 그리고 모든 것을________ (편지가 구겨져 알아 볼 수 없게 되었음) 하게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div>
 
|번역문6=<div style="text-align:justify">일전에 박사님께 말씀드렸다고 생각되는데, {{선교사편지인물태그|[[송순용|제 언어 교사]]}}<ref>언어 교사 : 송순용(宋淳容, 字는 德祚), 언더우드의 한국어 교사. 1885년 7월 6일자 편지에 '나의 선생님(my teacher)'으로 지칭.</ref>는 로마 카톨릭교도이며 저는 그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교회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은 일인지 아닌지 알 수 없어서 잠시 동안 주저했습니다만 그는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교사이며 (어디에서나 이 사람은 이런 칭찬을 듣습니다) 우리에게 와서 자신이 언어 교사 일을 하고 싶다고 했기 때문에 그에게서 배워야겠다고 결정했습니다.</div>
 
|번역문6=<div style="text-align:justify">일전에 박사님께 말씀드렸다고 생각되는데, {{선교사편지인물태그|[[송순용|제 언어 교사]]}}<ref>언어 교사 : 송순용(宋淳容, 字는 德祚), 언더우드의 한국어 교사. 1885년 7월 6일자 편지에 '나의 선생님(my teacher)'으로 지칭.</ref>는 로마 카톨릭교도이며 저는 그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교회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은 일인지 아닌지 알 수 없어서 잠시 동안 주저했습니다만 그는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교사이며 (어디에서나 이 사람은 이런 칭찬을 듣습니다) 우리에게 와서 자신이 언어 교사 일을 하고 싶다고 했기 때문에 그에게서 배워야겠다고 결정했습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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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9=<div style="text-align:justify">얼마 전에는 신부들이 그에게 “두 가지 종교가 있는데 하나는 그들의 정통적인 종교이고 다른 하는 이단이며 그 이단은 매우 악한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 “이단”이라는 것이 정말로 잘못된 것이라면 그 잘못된 점을 그 자신이 감지할 수 있을 것이며 단지 그것에 대해 알아보기만 하는 것은 아무런 해악도 끼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제가 그를 가르쳐 주기를 바랬습니다. 또 그는 얼마 전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을 보았고 성경 한 권(券)을 자신도 손에 넣게 되었는데 신부들은 “이것은 해로운 책이기 때문에 읽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빼앗아 버렸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가 읽었던 내용은 모두 유익한 것이었다고 하며 제가 허락해 주면 자신이 보았던 것들을 제게 더 많이 읽어 주고 싶어했습니다. 물론 저는 너무 기뻤지만, 현재로서는 제가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는 없습니다. 그는 영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모르고 저도 신학적인 토론을 오래 할 수 있을 만큼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div>
 
|번역문9=<div style="text-align:justify">얼마 전에는 신부들이 그에게 “두 가지 종교가 있는데 하나는 그들의 정통적인 종교이고 다른 하는 이단이며 그 이단은 매우 악한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 “이단”이라는 것이 정말로 잘못된 것이라면 그 잘못된 점을 그 자신이 감지할 수 있을 것이며 단지 그것에 대해 알아보기만 하는 것은 아무런 해악도 끼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제가 그를 가르쳐 주기를 바랬습니다. 또 그는 얼마 전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을 보았고 성경 한 권(券)을 자신도 손에 넣게 되었는데 신부들은 “이것은 해로운 책이기 때문에 읽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빼앗아 버렸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가 읽었던 내용은 모두 유익한 것이었다고 하며 제가 허락해 주면 자신이 보았던 것들을 제게 더 많이 읽어 주고 싶어했습니다. 물론 저는 너무 기뻤지만, 현재로서는 제가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는 없습니다. 그는 영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모르고 저도 신학적인 토론을 오래 할 수 있을 만큼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div>
 
|번역문10=<div style="text-align:justify">물론 이곳에서, 이런 사람들이 하는 말을 쉽게 믿는 것이 아니라 매우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하는 이야기가 사실과 다르다는 증거가 없는 한, 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장래에 유용한 일을 준비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데 그것을 막아서는 안될 겁니다. 매일 아침 저에게 찾아오는 소년들이 몇 명 있는데 저는 그 소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려 하고 있습니다. 학교로 쓸 수 있는 건물이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고 시작하자마자 많은 학생들이 모이게 될 겁니다. 이 일이 제게 부담이 되지 않게 하려면, 10명에서 12명 정도만 가르쳐야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면 제가 한국어 공부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수 있고, 보다 직접적으로 필요한 공부를 해야 할 시간을 뺏기지도 않을 겁니다.</div>
 
|번역문10=<div style="text-align:justify">물론 이곳에서, 이런 사람들이 하는 말을 쉽게 믿는 것이 아니라 매우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하는 이야기가 사실과 다르다는 증거가 없는 한, 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장래에 유용한 일을 준비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데 그것을 막아서는 안될 겁니다. 매일 아침 저에게 찾아오는 소년들이 몇 명 있는데 저는 그 소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려 하고 있습니다. 학교로 쓸 수 있는 건물이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고 시작하자마자 많은 학생들이 모이게 될 겁니다. 이 일이 제게 부담이 되지 않게 하려면, 10명에서 12명 정도만 가르쳐야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면 제가 한국어 공부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수 있고, 보다 직접적으로 필요한 공부를 해야 할 시간을 뺏기지도 않을 겁니다.</div>
|번역문11=<div style="text-align:justify">박사님께서 지금쯤 틀림없이 알게 되셨을 거라 생각되는데, 알렌은 선교부의 재정을 제게 넘겨주었습니다. 이곳에는 돈이 항상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을 때 자금을 확보해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당분간 우리 수중에 충분한 돈이 있게 하기 위해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이 제안해 준대로 {{선교사편지인물태그|[[L. T. Townsend.|타운젠드]]}}씨에게서 약 2,000달러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구입하는 거의 모든 것이 일본이나 상해에서 수입되어야 하기 때문에 물건들을 매입하는데 매우 많은 돈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우리가 쓸 수 있는 이곳 물건도 매우 비싼 값을 주어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보다 이곳에서 사는데 훨씬 더 많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적어도 일본에서의 사례금만큼은 받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부에서 이렇게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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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11=<div style="text-align:justify">박사님께서 지금쯤 틀림없이 알게 되셨을 거라 생각되는데,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은 선교부의 재정을 제게 넘겨주었습니다. 이곳에는 돈이 항상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을 때 자금을 확보해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당분간 우리 수중에 충분한 돈이 있게 하기 위해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이 제안해 준대로 {{선교사편지인물태그|[[Townsend, Luther. T.|타운젠드]]}}씨에게서 약 2,000달러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구입하는 거의 모든 것이 일본이나 상해에서 수입되어야 하기 때문에 물건들을 매입하는데 매우 많은 돈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우리가 쓸 수 있는 이곳 물건도 매우 비싼 값을 주어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보다 이곳에서 사는데 훨씬 더 많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적어도 일본에서의 사례금만큼은 받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부에서 이렇게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div>
 
|번역문12=<div style="text-align:justify">박사님께서 아시다시피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 의사는 {{선교사편지인물태그|[[Heron, John W.|헤론]]}} 의사가 얻으려 하는 {{선교사편지공간태그|[[헤론의 사택|그 집]]}}을 수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손보아야 할 곳이 많습니다. 별로 좋지 않은 집이 계속 손상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집을 살만한 곳이 되게 하는 일이 지금 진행중입니다. 이미 심하게 상해 버렸거나 부서져 내리려는 부분들을 교체하기 위해서 상당히 많은 양의 목재가 필요하므로 돈이 더 많이 필요한 형편입니다. 이 작업에 필요한 총 금액은 내부 장식이나 페인트칠을 위해 필요한 비용을 제외하고 약 590달러가 될 겁니다. 매우 신속하게 {{선교사편지인물태그|[[Heron, John W.|헤론]]}}이 집을 완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서 지금 사람들이 이 일에 힘쓰고 있습니다.</div>
 
|번역문12=<div style="text-align:justify">박사님께서 아시다시피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 의사는 {{선교사편지인물태그|[[Heron, John W.|헤론]]}} 의사가 얻으려 하는 {{선교사편지공간태그|[[헤론의 사택|그 집]]}}을 수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손보아야 할 곳이 많습니다. 별로 좋지 않은 집이 계속 손상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집을 살만한 곳이 되게 하는 일이 지금 진행중입니다. 이미 심하게 상해 버렸거나 부서져 내리려는 부분들을 교체하기 위해서 상당히 많은 양의 목재가 필요하므로 돈이 더 많이 필요한 형편입니다. 이 작업에 필요한 총 금액은 내부 장식이나 페인트칠을 위해 필요한 비용을 제외하고 약 590달러가 될 겁니다. 매우 신속하게 {{선교사편지인물태그|[[Heron, John W.|헤론]]}}이 집을 완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서 지금 사람들이 이 일에 힘쓰고 있습니다.</div>
 
|번역문13=<div style="text-align:justify">한국인 망명자들<ref>망명자들 : 서광범, 서재필, 박영효</ref> 중에서 몇 사람이 미국으로 갔다는 사실을 박사님께서도 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선교부에서 그들에게 도움을 베풀어준다면 우리 선교 사역의 장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선교사편지단체태그|[[감리교]]}} 형제들은 이 사실을 민감하게 인식하고 있어서 그들 모두의 안전이 보장받게 하며 그들이 교육의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힘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 중에 {{선교사편지단체태그|[[장로교|장로교인들]]}}에 의해 기독교를 배우고 교화(敎化)될 사람이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곳에서 가장 많은 호감을 얻고 있으며 세 사람 중에서 가장 성격이 좋은 사람은 {{선교사편지인물태그|[[서광범]]}}입니다. 그 나머지 사람들은 무척 거친 사람들입니다. 적어도 {{선교사편지사건태그|[[갑신정변|지난번 소요(騷擾)]]}} 때 그들의 모습은 그렇게 보였습니다. 서광범은 이곳에 있는 그의 친구 중 몇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서 그의 어머니가 기독교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되기를 소망합니다.</div>
 
|번역문13=<div style="text-align:justify">한국인 망명자들<ref>망명자들 : 서광범, 서재필, 박영효</ref> 중에서 몇 사람이 미국으로 갔다는 사실을 박사님께서도 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선교부에서 그들에게 도움을 베풀어준다면 우리 선교 사역의 장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선교사편지단체태그|[[감리교]]}} 형제들은 이 사실을 민감하게 인식하고 있어서 그들 모두의 안전이 보장받게 하며 그들이 교육의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힘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 중에 {{선교사편지단체태그|[[장로교|장로교인들]]}}에 의해 기독교를 배우고 교화(敎化)될 사람이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곳에서 가장 많은 호감을 얻고 있으며 세 사람 중에서 가장 성격이 좋은 사람은 {{선교사편지인물태그|[[서광범]]}}입니다. 그 나머지 사람들은 무척 거친 사람들입니다. 적어도 {{선교사편지사건태그|[[갑신정변|지난번 소요(騷擾)]]}} 때 그들의 모습은 그렇게 보였습니다. 서광범은 이곳에 있는 그의 친구 중 몇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서 그의 어머니가 기독교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되기를 소망합니다.</div>

2021년 5월 26일 (수) 15:49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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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85년 7월 6일)
식별자 L18850706UTOE
한글명칭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85년 7월 6일)
영문명칭 Horace G. Underwood's Letter To Frank F. Ellinwood (July 6, 1885)
발신자 Underwood, Horace G.(원두우)
수신자 Ellinwood, Frank F.
작성연도 1885년
작성월일 7월 6일
작성공간 서울
번역문출처 김인수, 『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2.



Dr. Horace G. Underwood
Yokohama, Japan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인물
일본, 요코하마공간
July 6, 1885 1885년 7월 6일
To Dr . Ellinwood 엘린우드인물 박사님께,
Yours of the 25th of May just to hand and I would state that your former letter also came July 6 to hand but as the whole matter had to be dropped not on account of difficulties here but at home I thought that there was nothing further to be said upon the subject and therefore did not reply to yours of a former date. Might I however say, simply to show that my actions were not those of one who knew nothing of the state of affairs, that what I then wrote was only after the very urgent advice of Rev. H. Loomis of Yokohama, who I think knows almost more about Korea than any other Missionary in Japan, similar advice from Mr. Allen who was on the field; and the repeated assertions of all the Koreans that I met who had just come from their own land that it would be perfectly safe. I do not state this in any way as an answer to your letter but simply to show that my actions were not as far as Korea was concerned entirely out of place.
박사님께서 보내주신 지난 5월 25일자 편지자료가 방금 전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박사님께서 그 전에 보내주셨던 편지도 방금 전 도착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은 이곳[1]이 아닌 본국의 어려움 때문에 중단되었었기 때문에 저로서는 그 문제에 대해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어서 5월 25일자 편지에 대해서는 제가 답신을 보내드릴 필요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상황파악을 전혀 하지 못한 채, 여러 가지 결정을 내렸던 것은 아니라는 점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편지를 썼던 것은 요코하마(横浜)공간에 있는 루미스인물는 제게 매우 다급하게 전했던 충고를 들은 후였습니다. 그분은 일본에 있는 다른 어떤 선교사들보다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국에 와 있는 알렌인물으로부터도 비슷한 조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한국사람들도 한결같이 제게 “그렇게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안전할 것이라”고 단언했었습니다. 제가 지금 박사님께서 편지에서 하셨던 말씀에 대해 변명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한국에 관해 제가 내렸던 결정이 전적으로 부적절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I am now hard at work at the language and am trying to make everything (next Line creased and covered up.)
저는 지금 언어 공부에 매우 열심히 임하고 있으며 그리고 모든 것을________ (편지가 구겨져 알아 볼 수 없게 되었음) 하게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I have, as I think I told you, secured the services of a Romanist as my teacher. I hesitated for some time about the matter not knowing whether it were well to use one of them or not but as he is by for the best teacher in the country (at least this is the name that he has every where) and came to us asking to be employed in this way I concluded to take him.
일전에 박사님께 말씀드렸다고 생각되는데, 제 언어 교사인물[2]는 로마 카톨릭교도이며 저는 그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교회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은 일인지 아닌지 알 수 없어서 잠시 동안 주저했습니다만 그는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교사이며 (어디에서나 이 사람은 이런 칭찬을 듣습니다) 우리에게 와서 자신이 언어 교사 일을 하고 싶다고 했기 때문에 그에게서 배워야겠다고 결정했습니다.
He has had a good deal of practice in teaching foreigners having taught some 7 or 8 of the Franciscan Fathers. and also had something to do in the compiling of the French Dictionary.
그는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데 많은 경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프란체스코회단체 소속 신부들 7~8명을 가르쳤으며 불어 사전문헌을 편집하는데도 기여하였습니다.
I was in a little doubt even after I had taken him as to whether it was a wise move but now feel quite confidant that it was providential. He came to me the other day and told me that the Fathers had refused him the sacraments if he continued to teach me and then on his insisting they had refused the sacraments to all the members of his family.
제가 그의 도움을 받기로 결정한 이후에도 그렇게 한 것이 현명한 일이었는지에 대해 의심하는 마음이 다소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고 분명히 느껴집니다. 며칠 전 그는 내게 와서 “그가 나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 것 때문에 신부들이 그에게 성례를 베풀어주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나를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지 않겠다”고 하자 그의 가족 전체에게 성례를 베풀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He said that some time ago the Fathers had told him that there were two kinds of religion theirs and heresy and that the latter was very bad but he thought that if it was really wrong he would be enabled to see it and that there would be no harm in his snowing something about it and he wanted me to teach him. He further stated that he had noticed that we read the Bible part of which had fallen into his hands some time ago but had been taken away from him by the fathers who had said that it was bad book and that he ought not to read it but that all that he had read was good and he wanted to read me more of it if I would let him. I, of course was only too glad to be able to do so but at present I cannot do very much in the way of teaching him myself as he does not know a word of English and I do not yet know Korean well enough to hold very long theological discussions in it.
얼마 전에는 신부들이 그에게 “두 가지 종교가 있는데 하나는 그들의 정통적인 종교이고 다른 하는 이단이며 그 이단은 매우 악한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 “이단”이라는 것이 정말로 잘못된 것이라면 그 잘못된 점을 그 자신이 감지할 수 있을 것이며 단지 그것에 대해 알아보기만 하는 것은 아무런 해악도 끼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제가 그를 가르쳐 주기를 바랬습니다. 또 그는 얼마 전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을 보았고 성경 한 권(券)을 자신도 손에 넣게 되었는데 신부들은 “이것은 해로운 책이기 때문에 읽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빼앗아 버렸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가 읽었던 내용은 모두 유익한 것이었다고 하며 제가 허락해 주면 자신이 보았던 것들을 제게 더 많이 읽어 주고 싶어했습니다. 물론 저는 너무 기뻤지만, 현재로서는 제가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는 없습니다. 그는 영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모르고 저도 신학적인 토론을 오래 할 수 있을 만큼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Of course I have not forgotten that out here one has to be very careful with regard to the amount of trust that he places in the word of these men but as long as I find nothing to lead me to believe to the contrary I must take the man at his word and I certainly cannot refuse what does seem a very good opening up of some way for preparing for future usefulness by providence. I have a few boys come to me every morning and I am trying to teach them English. If I only had some building in which to have a school I could do so at once and have an abundance of pupils from the very start and if it would not be calling too much attention to my presence I think that I should try and pick out some 10 or 12 boys to teach who would be just enough to really be a help to me in learning the language and at the same time not enough to take any time away from the more direct study.
물론 이곳에서, 이런 사람들이 하는 말을 쉽게 믿는 것이 아니라 매우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하는 이야기가 사실과 다르다는 증거가 없는 한, 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장래에 유용한 일을 준비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데 그것을 막아서는 안될 겁니다. 매일 아침 저에게 찾아오는 소년들이 몇 명 있는데 저는 그 소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려 하고 있습니다. 학교로 쓸 수 있는 건물이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고 시작하자마자 많은 학생들이 모이게 될 겁니다. 이 일이 제게 부담이 되지 않게 하려면, 10명에서 12명 정도만 가르쳐야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면 제가 한국어 공부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수 있고, 보다 직접적으로 필요한 공부를 해야 할 시간을 뺏기지도 않을 겁니다.
As you of course know by this time Dr. Allen has handed over to me the treasuryship of this mission. As out here at present we have to take money when we can get it welch is not always I at the suggestion of Dr. Allen took about two thousand dollars from Mr. Townsend so that we will have enough on hand for some time. Things are very high indeed here as almost every thing that we get has to be imported from Japan or Shanghai and even what native things we can use are to be had only at a very high price. We have thought it necessary to draw the Japan salary at least and trust that the board will sanction this as it is good deal more costly to live here than there.
박사님께서 지금쯤 틀림없이 알게 되셨을 거라 생각되는데, 알렌인물은 선교부의 재정을 제게 넘겨주었습니다. 이곳에는 돈이 항상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을 때 자금을 확보해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당분간 우리 수중에 충분한 돈이 있게 하기 위해 알렌인물이 제안해 준대로 타운젠드인물씨에게서 약 2,000달러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구입하는 거의 모든 것이 일본이나 상해에서 수입되어야 하기 때문에 물건들을 매입하는데 매우 많은 돈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우리가 쓸 수 있는 이곳 물건도 매우 비싼 값을 주어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보다 이곳에서 사는데 훨씬 더 많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적어도 일본에서의 사례금만큼은 받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부에서 이렇게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As you know I suppose Dr. Allen had seen to a good deal of the repairing of the house that Dr. Heron is to occupy but it will still need some further repairs before it is finished. It was also thought well as the third house was vanishing piece by piece to have that made ready for dwelling in and this is now underway. As quite a number of new timbers had to be put in the place of those that were rotten or fast approaching it, it cost more than it would otherwise would have done. The total cost of this work which will make it habitable but will do nothing to the inside of the house nor will this include any painting will be about $590.00. It has been found necessary to at once see about the finishing of Dr. Heron's house and the men are now at work.
박사님께서 아시다시피 알렌인물 의사는 헤론인물 의사가 얻으려 하는 그 집공간을 수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손보아야 할 곳이 많습니다. 별로 좋지 않은 집이 계속 손상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집을 살만한 곳이 되게 하는 일이 지금 진행중입니다. 이미 심하게 상해 버렸거나 부서져 내리려는 부분들을 교체하기 위해서 상당히 많은 양의 목재가 필요하므로 돈이 더 많이 필요한 형편입니다. 이 작업에 필요한 총 금액은 내부 장식이나 페인트칠을 위해 필요한 비용을 제외하고 약 590달러가 될 겁니다. 매우 신속하게 헤론인물이 집을 완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서 지금 사람들이 이 일에 힘쓰고 있습니다.
I suppose that you already know that the Korean refugees have some of them come to America. If they could be aided in some way by the board it might I think be a means of helping the work wonderfully in the future. Our Methodist Brethren are alive to this fact and are going to try and secure them all and attend to their education but might not at least some of these men be taught Christianity and civilization by the Presbyterians. The man who is most liked here and is the finest of the tree is Soh Kwang Pom. The others are very brutal, at least they showed themselves such during the last disturbance. Soh Kwang Pom has written over here to some of his friends requesting that if possible his mother be taught Christianity. I hope that some way may be found of doffing this.
한국인 망명자들[3] 중에서 몇 사람이 미국으로 갔다는 사실을 박사님께서도 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선교부에서 그들에게 도움을 베풀어준다면 우리 선교 사역의 장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감리교단체 형제들은 이 사실을 민감하게 인식하고 있어서 그들 모두의 안전이 보장받게 하며 그들이 교육의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힘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 중에 장로교인들단체에 의해 기독교를 배우고 교화(敎化)될 사람이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곳에서 가장 많은 호감을 얻고 있으며 세 사람 중에서 가장 성격이 좋은 사람은 서광범인물입니다. 그 나머지 사람들은 무척 거친 사람들입니다. 적어도 지난번 소요(騷擾)사건 때 그들의 모습은 그렇게 보였습니다. 서광범은 이곳에 있는 그의 친구 중 몇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서 그의 어머니가 기독교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Yours Truly, 안녕히 계십시오.
Horace G. Underwood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인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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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이곳 : 서울
  2. 언어 교사 : 송순용(宋淳容, 字는 德祚), 언더우드의 한국어 교사. 1885년 7월 6일자 편지에 '나의 선생님(my teacher)'으로 지칭.
  3. 망명자들 : 서광범, 서재필, 박영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