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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9=H. G. Underw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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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1={{선교사편지인물태그|[[Dr. Horace G. Underwood(원두우)|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br/>한국,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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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4=<div style="text-align:justify">지난번 우편물이 도착할 때 박사님의 {{선교사편지편지태그|[[8월 11일자 편지]]}}를 받아 보게 되었습니다. 그 편지에서 제가 지난 번 서신의 내용 중 사용했던 ‘그리스도인답지 않은’이란 표현은 극도로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라 책망하셨고, 박사님께서는 지금까지 그러한 격렬하고 과도한 표현은 삼가해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말씀이 사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박사님께서 그러한 격렬한 느낌을 주는 표현을 애써 피하려 하셨다고는 해도 박사님 편지에는 제가 사용했던 것보다 열 배는 더 극단적인 의미를 암시하는 표현들이 있었습니다. 그 편지들이 어디에서 온 것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박사님의 서명이 있었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박사님께 대한 사적인 감정을 가지고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 편지들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에 대한 매우 단호하고도 정당한 감정을 가지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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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4=<div style="text-align:justify">지난번 우편물이 도착할 때 박사님의 {{선교사편지자료태그|[[Letter From Ellinwood To Underwood (18870811) | 8월 11일자 편지]]}}를 받아 보게 되었습니다. 그 편지에서 제가 지난 번 서신의 내용 중 사용했던 ‘그리스도인답지 않은’이란 표현은 극도로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라 책망하셨고, 박사님께서는 지금까지 그러한 격렬하고 과도한 표현은 삼가해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말씀이 사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박사님께서 그러한 격렬한 느낌을 주는 표현을 애써 피하려 하셨다고는 해도 박사님 편지에는 제가 사용했던 것보다 열 배는 더 극단적인 의미를 암시하는 표현들이 있었습니다. 그 편지들이 어디에서 온 것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박사님의 서명이 있었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박사님께 대한 사적인 감정을 가지고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 편지들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에 대한 매우 단호하고도 정당한 감정을 가지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div>
|번역문5=<div style="text-align:justify">그렇지만 박사님의 편지를 본 후에 곧 제가 편견을 가지고 읽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박사님의 5월 4일자 편지를 제 답신의 사본과 함께 <ref> 두 분의 목사님 : <ref/>에게 가지고 갔습니다. 그리고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그분들에게 박사님의 편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저의 답장이 지나치게 과격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두 분 다 주저 없이 그 문제에 대한 제 생각에 동의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제 말이 조금도 과격하지 않았다고 단언했습니다. 그분들이 제 답신에 도를 넘는 표현들이 있었다고 답했다면, 저는 이 편지에서 박사님께 사과의 말씀을 드렸을 것입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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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5=<div style="text-align:justify">그렇지만 박사님의 편지를 본 후에 곧 제가 편견을 가지고 읽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박사님의 {{선교사편지자료태그|[[Letter From Ellinwood To Underwood (18870504)|5월 4일자 편지]]}}를 제 답신의 사본과 함께 두 분의 목사님<ref> 두 분의 목사님 : 아펜젤러와 아무개로 추정</ref>에게 가지고 갔습니다. 그리고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그분들에게 박사님의 편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저의 답장이 지나치게 과격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두 분 다 주저 없이 그 문제에 대한 제 생각에 동의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제 말이 조금도 과격하지 않았다고 단언했습니다. 그분들이 제 답신에 도를 넘는 표현들이 있었다고 답했다면, 저는 이 편지에서 박사님께 사과의 말씀을 드렸을 것입니다. </div>
 
|번역문6=<div style="text-align:justify">제가 말씀드렸던 것은 전달하고자 하는 바였습니다. 저는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이 변죽만 울리는 것보다 나으며 대개의 경우는 보다 신속하고도 적절한 이해를 갖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div>
 
|번역문6=<div style="text-align:justify">제가 말씀드렸던 것은 전달하고자 하는 바였습니다. 저는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이 변죽만 울리는 것보다 나으며 대개의 경우는 보다 신속하고도 적절한 이해를 갖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div>
|번역문7=<div style="text-align:justify">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편견이 없는 판관(判官)들이 이 문제를 맡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분들이 박사님의 5월 4일자 편지에 들어 있는 암시적 표현이 적절한 것이라 결론을 내린다면, 그리스도인답게 기꺼이 사과를 드리겠습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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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7=<div style="text-align:justify">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편견이 없는 판관(判官)들이 이 문제를 맡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분들이 박사님의 {{선교사편지자료태그|[[Letter From Ellinwood To Underwood (18870504)|5월 4일자 편지]]}}에 들어 있는 암시적 표현이 적절한 것이라 결론을 내린다면, 그리스도인답게 기꺼이 사과를 드리겠습니다.</div>
 
|번역문8=안녕히 계십시오.
 
|번역문8=안녕히 계십시오.
|번역문9={{선교사편지인물태그|[[Dr. Horace G. Underwood(원두우)|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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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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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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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선교사편지]] [[분류:선교사편지_편지]] [[분류:선교사편지_From_Underwood]] [[분류:선교사편지_To_Ellinwood]] [[분류:선교사편지_1887년]] [[분류:선교사편지_서울]]

2020년 9월 13일 (일) 22:37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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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87년 9월 30일)
식별자 L18870930UTOE
한글명칭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87년 9월 30일)
영문명칭 Horace G. Underwood's Letter To Frank F. Ellinwood (September 17, 1887)
발신자 Underwood, Horace G.(원두우)
수신자 Ellinwood, Frank F.
작성연도 1887년
작성월일 9월 30일
작성공간 서울
자료소장처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번역문출처 김인수, 『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2.




Dr. Horace G. Underwood
Seoul, Korea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인물
한국, 서울
Sept 30, 1887 1887년 9월 30일
Dear Dr. Ellinwood, 엘린우드인물 박사님께,
Yours of Aug. 11 came to hand by the last mail in. You therein charge that the adjective 󰡐unchristian' used by me in a former letter, was too violent and extreme and assert that heretofore you have avoided all such violent and extreme adjectives. All this may be true, although you nay have carefully avoided all extreme adjectives your letters have contained implications that have been ten times more extreme than any adjectives I have ever used. As to whence the letters come I do not know but as your signature is attached to them, I address you, not having any personal feelings against yourself but having very strong and what I feel to be just feelings concerning the matter contained in the letters.
지난번 우편물이 도착할 때 박사님의 8월 11일자 편지자료를 받아 보게 되었습니다. 그 편지에서 제가 지난 번 서신의 내용 중 사용했던 ‘그리스도인답지 않은’이란 표현은 극도로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라 책망하셨고, 박사님께서는 지금까지 그러한 격렬하고 과도한 표현은 삼가해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말씀이 사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박사님께서 그러한 격렬한 느낌을 주는 표현을 애써 피하려 하셨다고는 해도 박사님 편지에는 제가 사용했던 것보다 열 배는 더 극단적인 의미를 암시하는 표현들이 있었습니다. 그 편지들이 어디에서 온 것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박사님의 서명이 있었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박사님께 대한 사적인 감정을 가지고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 편지들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에 대한 매우 단호하고도 정당한 감정을 가지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However as soon as your letter came, thinking that I might have been biased in my reading, I at once took yours of May 4th with a copy of my answer to it, to two ministers of the Gospel and without a word or comment asked them what they thought of your letter and whether my answer was too strong. They both at once made statements agreeing with my thought upon the matter and asserted that my language had not been too strong at all. Had they thought in any way that it had been, this letter would have brought to you an apology from me.
그렇지만 박사님의 편지를 본 후에 곧 제가 편견을 가지고 읽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박사님의 5월 4일자 편지자료를 제 답신의 사본과 함께 두 분의 목사님[1]에게 가지고 갔습니다. 그리고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그분들에게 박사님의 편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저의 답장이 지나치게 과격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두 분 다 주저 없이 그 문제에 대한 제 생각에 동의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제 말이 조금도 과격하지 않았다고 단언했습니다. 그분들이 제 답신에 도를 넘는 표현들이 있었다고 답했다면, 저는 이 편지에서 박사님께 사과의 말씀을 드렸을 것입니다.
As it is I still think that what I said was what I meant and I am one of those who believe that plain English is always easier than beating around the bush and will in the end as a rule bring about a more speedy and better understanding.
제가 말씀드렸던 것은 전달하고자 하는 바였습니다. 저는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이 변죽만 울리는 것보다 나으며 대개의 경우는 보다 신속하고도 적절한 이해를 갖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Realizing that it may be said that these men out here are already biased I would add that I am willing to leave it to any unbiased judges and if they shall decide that the implication made in your letter of May 4th was just, charitable and Christian I will apologize.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편견이 없는 판관(判官)들이 이 문제를 맡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분들이 박사님의 5월 4일자 편지자료에 들어 있는 암시적 표현이 적절한 것이라 결론을 내린다면, 그리스도인답게 기꺼이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Yours Most Sincerely, 안녕히 계십시오.
H. G. Underwood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인물 올림.


주석

  1. 두 분의 목사님 : 아펜젤러와 아무개로 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