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n, John W."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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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존 | + | * 존 헤론(John W. Heron, 1856년 6월 15일 ~ 1890년 7월 26일)은 미국 장로교 해외선교부가 한국선교사에 처음 임명한 의료선교사이다. [[Allen, Horace N.|알렌]]과 [[Underwood, Horace G.(원두우)|언더우드]]의 선교사 임명은 헤론보다 늦었으나 그들이 먼저 한국에 도착했다. 테네시주의 메리빌 대학 의학과, 테네시 대학교 의과대학, 그리고 1883년 뉴욕 대학교 의과대학에 들어가 정식 의사자격시험에 합격하였다. 존스보로에서 만난 깁슨 의사의 딸인 [[Heron, Harriet G.|해리엇]]과 결혼 후 바로 미국을 출발하여 1885년 6월 20일 조선의 제물포에 도착하였고, 제중원에서 알렌, 언더우드와 함께 일헸다. 1887년 알렌의 후임으로 제 2대 제중원 원장으로 취임하였다. 그의 제안으로 조선성교서회(후일 대한예수교서회)가 시작되었다. 그는 왕후 민 씨 일가 중 한 명의 언청이 수술에 성공하여 왕실의 신뢰를 얻었다. 의료활동 중 전염성 이질에 걸려 1890년 7월 26일 사망 후 양화진에 묻힌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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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알렌이 기다리던 의사로, 병원에서도 받아들이기로 하였으며 정부에서도 원하고 있었다고 언급된다. <br/>「[[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50419)|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1885년 4월 19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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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2일 (금) 22:47 기준 최신판
존 윌리엄 헤론 John William Her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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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명 | 존 윌리엄 헤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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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 | John William Heron |
한자명 | 蕙論 |
성별 | 남자 |
생년 | 1856년 |
몰년 | 1890년 |
소속 | 장로교 |
직업 | 의사, 선교사 |
내한 연도 | 1885년 |
출신지 | 미국 |
출신학교 | 뉴욕대학교 |
배우자 | 헤리엇 엘리자베스 깁슨 |
기본 정보
- 존 헤론(John W. Heron, 1856년 6월 15일 ~ 1890년 7월 26일)은 미국 장로교 해외선교부가 한국선교사에 처음 임명한 의료선교사이다. 알렌과 언더우드의 선교사 임명은 헤론보다 늦었으나 그들이 먼저 한국에 도착했다. 테네시주의 메리빌 대학 의학과, 테네시 대학교 의과대학, 그리고 1883년 뉴욕 대학교 의과대학에 들어가 정식 의사자격시험에 합격하였다. 존스보로에서 만난 깁슨 의사의 딸인 해리엇과 결혼 후 바로 미국을 출발하여 1885년 6월 20일 조선의 제물포에 도착하였고, 제중원에서 알렌, 언더우드와 함께 일헸다. 1887년 알렌의 후임으로 제 2대 제중원 원장으로 취임하였다. 그의 제안으로 조선성교서회(후일 대한예수교서회)가 시작되었다. 그는 왕후 민 씨 일가 중 한 명의 언청이 수술에 성공하여 왕실의 신뢰를 얻었다. 의료활동 중 전염성 이질에 걸려 1890년 7월 26일 사망 후 양화진에 묻힌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가 되었다.
상세 정보
- 알렌이 기다리던 의사로, 병원에서도 받아들이기로 하였으며 정부에서도 원하고 있었다고 언급된다.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1885년 4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