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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뜬다리부두 | |대표명칭 = 뜬다리부두 | ||
− | | | + | |건립·제작 = 193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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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 =='''개관'''== | ||
− | + | 군산내항[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687047&cid=51946&categoryId=55073]은 금강하구와 중부 서해안 지역에 자리한 지리적 특징 때문에 고려 이후 호남지역의 세곡을 저장 운반하는 조운창고가 운영되던 물류유통의 중심지였다. | |
이러한 해상교통로로서의 역할 때문에 1899년 개항이후 근대적인 항구로서의 축항공사가 추진되었고 이 때 뜬다리 부두 역시 만들어진다. 군산 내항에 자리한 부잔교는 | 이러한 해상교통로로서의 역할 때문에 1899년 개항이후 근대적인 항구로서의 축항공사가 추진되었고 이 때 뜬다리 부두 역시 만들어진다. 군산 내항에 자리한 부잔교는 | ||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여 썰물 때면 갯벌이 드러나 배의 접안이 어려운 서해안의 자연환경을 극복하고자 건조한 인공구조물이다. 기본형태는 바닷물의 수위에 따라 |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여 썰물 때면 갯벌이 드러나 배의 접안이 어려운 서해안의 자연환경을 극복하고자 건조한 인공구조물이다. 기본형태는 바닷물의 수위에 따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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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공사 자체가 위험했기 때문이며 완성된 대형 부잔교의 입수식 때 사고가 나서 한국인 노동자 10여명이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고 증언한다.<ref>http://www.gunsan.go.kr/tour/board/view.gunsan;jsessionid=Zy1aGDclZQsq61QT811vrL1DE6jB4VU58s01m3OqbrsViXyVM13m6XqXi15q6vJR.www2_servlet_engine1?boardId=BBS_0000274&menuCd=DOM_000000702008018000&startPage=1&dataSid=262655&contentsSid=4252&cpath=%2Ftour 군산시 문화관광</ref> | 그 이유는 공사 자체가 위험했기 때문이며 완성된 대형 부잔교의 입수식 때 사고가 나서 한국인 노동자 10여명이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고 증언한다.<ref>http://www.gunsan.go.kr/tour/board/view.gunsan;jsessionid=Zy1aGDclZQsq61QT811vrL1DE6jB4VU58s01m3OqbrsViXyVM13m6XqXi15q6vJR.www2_servlet_engine1?boardId=BBS_0000274&menuCd=DOM_000000702008018000&startPage=1&dataSid=262655&contentsSid=4252&cpath=%2Ftour 군산시 문화관광</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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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군산 문화재'''== |
+ | *[[동국사]] | ||
+ | *[[초원사진관]] | ||
+ | |||
+ | =='''참고문헌'''== | ||
+ | *근대 문화 유산 목록화 및 조사 보고서 (전라북도, 2004) | ||
+ | *근대 문화의 도시 군산 (군산시, 2007) | ||
=='''출처'''== |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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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한국학중앙연구원 2018 봄 답사 자료집]] | [[분류:한국학중앙연구원 2018 봄 답사 자료집]] |
2018년 6월 16일 (토) 19:20 기준 최신판
뜬다리부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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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 번호 | |
지정일 | |
지정 명칭 | 군산 내항 뜬다리 |
한자 명칭 | 群山內港- |
영문 명칭 | Bujan Bridge in Inner Harbor |
분류 |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유형 유산 |
건립·제작 | 1933년 |
주소 | 전라북도 군산시 장미동 |
위도 | 35.991738 |
경도 | 126.713951 |
웹사이트 |
목차
개관
군산내항[1]은 금강하구와 중부 서해안 지역에 자리한 지리적 특징 때문에 고려 이후 호남지역의 세곡을 저장 운반하는 조운창고가 운영되던 물류유통의 중심지였다. 이러한 해상교통로로서의 역할 때문에 1899년 개항이후 근대적인 항구로서의 축항공사가 추진되었고 이 때 뜬다리 부두 역시 만들어진다. 군산 내항에 자리한 부잔교는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여 썰물 때면 갯벌이 드러나 배의 접안이 어려운 서해안의 자연환경을 극복하고자 건조한 인공구조물이다. 기본형태는 바닷물의 수위에 따라 상하로 움직이는 다리와 다리에 연결된 콘크리트 함선이 일체형으로 만들어져 썰물때면 콘크리트 함선이 접안시설로 이용되는 형태이다.
부잔교의 건립은 군산항 제3차 축항 공사 기간인 1926~1933년까지 3기를 설치하여 3천톤급 기선 3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수덕산 토석 채취공사에 참여한 지역민에 의하면 하루 임금이 80전으로 다른 일에 비하여 삯이 높았는데 그 이유는 공사 자체가 위험했기 때문이며 완성된 대형 부잔교의 입수식 때 사고가 나서 한국인 노동자 10여명이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고 증언한다.[1]
Bujan Bridge in Inner Harbor
Gunsan Inner Harbor had had been a logistics hub in the Honam region since Goryeo period due to its strategic location. As the harbor was an important maritime route, construction was underway to build up a modern port with the opening of the Gunsan port in 1899. The Bujan Bridge, or floating pier, was also constructed together with other port facilities. The floating pier was designed to deal with the steep gap in water level as a result of the ebb and flow of the tides in the West Sea. Three floating piers were constructed during the third phase of Gunsan port (1926~1933), expanding the capacity to accommodate aws many as three 3,000-ton ships at the same time.
Дөндари Бүдү
Гүнсаны усан онгоцны боомт нь Гөмган мөрөн дэх далайн цутгалан болоод Сохэан(баруун зүгт орших далайн эрэг)-ы төвийн бүс нутгаар байрласан газарзүйн онцлогоосоо шалтгаалан Гурёгоос хойш Хунамын бүс нутгийн иргэдээс татварт хураасан тариа будааг хадгалах мөн тээвэрлэх зорилгоор усан онгоцыг тээвэрлэлтэнд ашиглаж байсан гол төв цэг байв. Энэхүү боомт нь далайн тээвэрлэлтийг хариуцан явуулж байсан тул 1899 онд боомтыг нээсний дараа орчин үед нийцсэн боомтыг барьж байгуулах барилгын ажлыг явуулж эхлүүлсэн бөгөөд энэ үед Дөндари Бүдү ч мөн адил баригдсан юм. Гүнсаны усан онгоцны боомтонд байрласан Бүжан гүүр буюу Дөндари Бүдү нь далайн түрлэг ба татлагын хоорондох ялгаа ихтэйгээс болоод далайн усны татлага эхлэх үед хуурай газар ил гарч усан онгоц далайд гарахад асуудал үүсгэдэг Сохэан эргийн байгалийн бэрхшээлийг даван гарахын тулд байгуулсан байгууламж юм.
현황
군산 내항 뜬다리는 육상에서 해상으로 연결되는 다리 형태의 구조물 2개를 해상에서 콘크리트 부유체로 서로 연결하여 1기의 뜬다리를 구성하는 형식으로 설치되었다. 그러나 1930년대 초반에 설치된 3기의 뜬다리 각각에서 다리 형태의 구조물 1개씩이 멸실되어 현재는 각 뜬다리의 일부인 총 3개의 다리 형태 구조물이 현존하고 있다. [2]
정의
간만의 차를 극복하고, 선박을 접안시키기 위하여 1930년대 군산 내항에 설치한 다리 형태의 구조물.[3]
건립 경위
군산 내항 뜬다리는 간만의 차를 극복하고 대형 선박을 접안시켜 일본으로의 미곡 반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1926년~1932년 사이에 진행된 제3차 축항 공사를 통해 3기가 설치되었다.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조선 총독이 1926년 기공식에 참석할 만큼 제3차 축항 공사는 군산을 통해 미곡 수탈을 확대하고자 했던 일본 제국주의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제3차 축항공사에서 완공된 뜬다리를 통해 썰물 때에도 3천 톤급 기선 3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었다. 또한, 1936년~1938년 사이에 진행된 제4차 축항 공사에서 뜬다리 1기를 추가 설치하여 3천 톤급 기선 6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도록 하였다.[4]
변천
군산 내항 뜬다리는 1926년~1932년의 제3차 축항 공사와 1936년~1938년의 제4차 축항 공사를 통해 설치되었으나 부분적으로 멸실되었고, 현재는 제3차 축항 공사 과정에서 설치되었던 뜬다리 3기 각각의 일부가 현존하고 있다.[5]
구성
군산 내항 뜬다리는 육상에서 바다 쪽으로 연장된 2개의 다리 형태 구조물 각각을 중간에 4개의 원기둥 형태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에 연결하여 간만의 차에 의해 상하 변위가 가능하게 하고 끝 부분을 선박이 접안하는 콘크리트 부유체 위에 얹어 놓은 형태로 구성하였다.[6]
사진
영상
- YTN 사이언스, "수탈과 저항의 역사를 간직한 군산", YouTube, 게시일: 2017년 8월 2일.
가상현실
위치
군산 문화재
참고문헌
- 근대 문화 유산 목록화 및 조사 보고서 (전라북도, 2004)
- 근대 문화의 도시 군산 (군산시, 2007)
출처
- ↑ http://www.gunsan.go.kr/tour/board/view.gunsan;jsessionid=Zy1aGDclZQsq61QT811vrL1DE6jB4VU58s01m3OqbrsViXyVM13m6XqXi15q6vJR.www2_servlet_engine1?boardId=BBS_0000274&menuCd=DOM_000000702008018000&startPage=1&dataSid=262655&contentsSid=4252&cpath=%2Ftour 군산시 문화관광
- ↑ http://www.grandculture.net/ko/Contents?dataType=99&contents_id=GC05700681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 ↑ http://www.grandculture.net/ko/Contents?dataType=99&contents_id=GC05700681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 ↑ http://www.grandculture.net/ko/Contents?dataType=99&contents_id=GC05700681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 ↑ http://www.grandculture.net/ko/Contents?dataType=99&contents_id=GC05700681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 ↑ http://www.grandculture.net/ko/Contents?dataType=99&contents_id=GC05700681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기여
일자 | 역할 | 이름 | 전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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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4. | 정리 | 최정훈 | 인문정보학 |
2018.4. | 편집 | 최정훈 | 인문정보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