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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교향악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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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 어린이대공원 능동 숲속의 무대 |
범주 | 아티스트 |
정의 | 1945년에 설립된 고려교향악단에 모태를 두고 설립된 서울의 교향악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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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찬자 | 송해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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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서울시립교향악단은 한국의 대표적인 교향악단의 하나로, 관현악단 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해온 우리나라 교향악단의 역사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서울시향은 오랜 전통을 갖고 육성되어 온 단체답게 유려한 음색과 유창한 음감 등 특유한 감각이 있으며, 어느 객원 지휘에도 곧 적응하는 능숙한 감성을 가지고 있다. 레퍼토리는 고전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넓은 편이나 역시 낭만파 작품에서 감흥 깊은 연주력을 발휘한다.
역사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직접적인 모체는 1948년 1월 김생려를 중심으로 창단한 서울교향악단이 된다. 이 단체는 당시 재정난을 겪고 있던 고려교향악단의 40여 명과 김생려가 이끌고 있던 서울관현악단을 합쳐 조직한 것이다. 서울교향악단은 1948년 2월 김생려의 지휘로 창단 연주회를 가졌고, 제2회는 김준덕, 제3회부터 제14회까지는 당시 미군 정 고문이었던 롤프자코비가 지휘봉을 잡았다. 그 후 상임 지휘자로 김생려가 취임하고 임원식이 객원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1950년 4월 고려교향악단의 이사장인 독고성으로부터 고려교향악단의 악기와 악보를 인수, 사실상 고려교향악단을 흡수하게 되었으며 단원도 70여 명으로 증원시켰다. 고려교향악단은 우리나라 최초의 교향 악단으로, 1945년 9월 15일 계정식 · 현제명 · 김성태 등을 중심으로 조국이 해방되자, 일본 · 중국 · 만주 · 미국 등 해외에서 활동하던 연주인들이 귀국해서 조직한 악단이다. 고려교향악단은 1945년 10월 수도 극장 (현 스카라 극장)에서 계정식 지휘로 창단 연주회를 가졌고, 계정식의 뒤를 이어 임원식이 상임으로 취임하여 약 2년간 26회의 정기 연주회를 가졌으나 재정난으로 해산하고 말았다.
서울교향악단은 1950년 한국 동란으로 수난을 겪게 되었는데, 단원은 뿔뿔이 흩어지고 상당수가 북한에 납치되었으며, 악기와 악보는 소실 또는 분실되는 등 사실상 해산 상태의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해군 당국의 주선으로 다시 규합한 105명의 연주인으로 해군정훈음악대를 조직하여 1950년 11월 제1회 연주회를 서울시 공관에서 가졌고, 1954년 해군교향악단으로 개칭되었다. 그리고 1957년에는 동남아친선 문화사절로 사이공 · 홍콩 · 대만 등에서 순회 연주회를 갖기도 했다.
1957년 8월 1일 서울시의 시립교향악단 설치 조례에 의거, 서울시립교향악단으로 흡수되어 김생려가 단장이 되었다. 그러나 1961년 설치 조례개정으로 단장 김생려가 지휘자로 연주 활동을 계속하다가 사임하고, 그해 7월 13일 김만복이 상임 지휘자로 취임하였다.
서울시향은 김만복이 지휘를 맡으면서부터 실질적인 교향악단으로서의 기능을 갖추기 시작했고 활기와 의욕을 갖게 되었다. 1965년 3월에는 일본 도쿄와 이세에서 연주를 갖기도 했다. 그 후 1970년 8월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원경수가 상임 지휘자로 지휘봉을 잡았으나, 1971년 4월 정재동이 전임 지휘자로 취임, 1974년 상임이 되었다.
서울시향은 정재동 시대를 맞아 합주 기능의 연마와 음악적인 표현 기능 면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보게 되고, 알찬 음향과 유려한 음상의 꾸밈 등으로 전성 시대를 맞게 되었다. 1975년 1월, 110명의 4관 편성으로 국제적인 규모를 갖추게 되자 명실공히 세계성을 지향하는 연주 단체로 발전했다. 1977년에는 자유 중국 · 홍콩 · 태국 · 말레이시아 · 싱가포르 등 동남아 각국을 순회 연주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1982년 11월에는 로스앤젤레스 · 샌프란시스코 · 산타바바라 · 호놀룰루등 미국 서부를 순회 연주했고, 1986년 5월에는 뉴욕 · 워싱턴 · 시카고 · 샌프란시스코 · 로스앤젤레스 등의 미국 순회 연주에서 한국의 문화 예술 특히 교향악 연주 수준을 널리 선양했다. 1988년 5월에는 국내 교향악단으로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스페인 · 프랑스 · 스위스 · 벨기에 · 독일 · 룩셈부르크 등 유럽 14개 도시에서 연주, 한국 음악 예술의 면모를 서양 음악의 본고장에서 유감없이 발휘하여 크게 호평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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