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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5일 (일) 08:40 기준 최신판
Meta Data
- 타입: 문화유산
- 한글명: 양지향교
- 한자명: 陽智鄕校
- 지정종목: 문화재자료/경기문화재자료 제23호
- 지정일: 1983-09-19
- 주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향교로13번길 20(양지면 양지리 379)
- 위치: 위도 37.239195 / 경도 127.286246
- 편자: 심곡서원팀 최영희
간단한 소개
1983년 9월 19일 경기도문화재자료 제23호로 지정되었다. 향교재단에서 소유하고 있다. 1523년(중종 18)에 창건하였다. 1697년(숙종 23) 대성전을 중수하고 1792년(정조 16) 명륜당을 중건하였다. 그뒤 1928년, 1967년에 중수하였고 1971년에 명륜당을 복원하였다.
1981년에 대대적인으로 보수하였을 때 대성전, 명륜당, 내삼문을 해체하여 복원하는 도중 1697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망와 1개와 수막새 1개가 발견되었다. 망와와 수막새 기와에는 기와공들의 이름이 음각되어 있고 “화원(火員:불 때는 장인) 김상조(金尙曺)”라는 명문도 발견되었다.
명륜당을 해체하였을 때는 들보에서 상량문이 발견되었는데 “건륭 임자년(建隆壬子年:1792) 3월 29일 묘시(卯時)에 샹량한다”라는 기록과 당시 공사에 관여하였던 현감, 좌수 등 11명의 명단이 있었다. 그후 “소화(昭和) 3년 무진(戊辰:1928) 2월 25일 미시(未時)에 상량하고 중선(重繕)한다”라는 기록이 발견되었다. 이로써 일제강점기에도 중건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1986년에 중수하였다.
양지향교는 마을 뒤쪽 구릉에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전체적인 구조는 경사진 대지의 아래쪽 터에 명륜당이 있고 위쪽에는 대성전이 있어 전학후묘의 형식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나, 명륜당과 동재 터는 대성전의 주축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 본래는 외삼문과 좌우로 동재·서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언제 훼철되었는지 알 수 없다.
대성전은 19.66평에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익공계(翼工系) 맞배지붕이며, 앞쪽에 개방된 툇간이 있고 옆과 뒤쪽에는 방화벽이 설치되어 있다. 익공의 형태나 가구 수법이 견실한 것으로 미루어 17세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는 공자를 위시한 5성과 10철, 송의 6현, 한국의 18현의 신위가 봉안되어 있다.
내삼문 왼쪽에 있는 명륜당은 1971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이던 것을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복원하였다. 면적은 12.85평이며 팔작지붕에 홑처마이다. 중앙의 6칸 대청 좌우에 온돌방이 2칸씩 있다. 조선 후기의 소규모 향교 형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해마다 8월 27일 석전제를 봉행한다.
출처
두산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93055&cid=40942&categoryId=333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