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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후(金麟厚, 1510년 ~ 1560년)는 조선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자는 후지, 호는 하서(河西), 본관은 울산이다. 대한민국에서 부통령을 지낸 인촌 김성수와 기업인 김연수의 선조가 된다. 전라남도 출신이며 김안국의 문인.
Meta Data
- 타입: 인물
- 한글항목명: 김인후
- 한자항목명: 金麟厚
- 편자: 김바로
인물
- 조선 중기의 문신.
- 본관 울산. 자 후지(厚之). 호 하서(河西)·담재(澹齋). 시호 문정(文正). 1510년 전라도 장성현 대맥동리에서 출생하였다.
- 5대조 김온(金穩)은 서울에서 살았으나 세자 책봉에 연루되어 사사되자 가족들은 전라도 장성땅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 어려서 총명했으며 당시 전라도 관찰사 김안국에게도 지도를 받았다. 1528년 성균관에 들어가 이황(李滉)과 함께 학문을 닦았다.
- 1540년(중종 35)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 정자(正字)에 등용되었다가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뒤에 설서(說書)·부수찬(副修撰)을 거쳤고 당시 세자였던 인종을 가르쳤다.
- 부모 봉양을 위해 옥과현령(玉果縣令)으로 나갔다.
- 1545년(인종 1) 인종이 즉위 8개월만에 사망하고 을사사화(乙巳士禍)가 일어난 뒤에는 병을 이유로 사직하고 고향인 장성에 돌아가 성리학 연구에 정진하였다. 누차 교리(校理)에 임명되나 취임하지 않았는데 인종의 사망으로 충격을 받아 한때 술과 시로 방황하였다고 전한다.
- 성경(誠敬)의 실천을 학문의 목표로 하고, 이항(李恒)의 이기일물설(理氣一物說)에 반론하여, 이기(理氣)는 혼합(混合)해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천문·지리·의약·산수·율력(律曆)에도 정통하였다.
- 문묘(文廟)를 비롯하여 장성의 필암서원(筆巖書院), 남원의 노봉서원(露峯書院), 옥과(玉果)의 영귀서원(詠歸書院) 등에 배향되었다.
- 문집에 하서전집, 저서에 주역관상편(周易觀象篇) 서명사천도(西銘四天圖) 백련초해(百聯抄解) 등이 있다.
- 매년 4월에 선생을 기리는 춘향제(春享祭)가, 9월에는 추향제(秋享祭)가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에 있는 필암서원에서 열린다.
인물
혈연관계
증조부 : 김의강(金義剛)
할아버지 : 김환(金丸)
아버지 : 김영(金齡)
부인 : 윤임형(尹任衡)의 딸
장녀 : 조희문(趙希文)에게 출가
사회관계
스승 = 김안국
친구 = 이황
대항 = 이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