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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곡동고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서울중곡동고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8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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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3월 15일 : 서울특별시조례 제10호에 의해 중곡동이 됨
 
* 1950년 3월 15일 : 서울특별시조례 제10호에 의해 중곡동이 됨
 
* 1995년 3월 1일 : 법률 제4802호에 의해 성동구 중 동2로 이동지역이 광진구로 분구되면서 광진구 중곡동이 됨
 
* 1995년 3월 1일 : 법률 제4802호에 의해 성동구 중 동2로 이동지역이 광진구로 분구되면서 광진구 중곡동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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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중곡동고분<REF>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서울중곡동고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8063]</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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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동에 있었던 백제시대의 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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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기의 백제시대 돌방무덤[石室墳]이 존재하였으나 현재는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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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곡동 갑분(甲墳)ㆍ을분(乙墳)으로 명명된 두 고분은 광복 전에 조사되었는데, 당시의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고양시 독도면 중곡리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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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은 거의 평지에 가까운 낮은 구릉상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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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조를 보면 돌방은 장방형으로, 남벽 중앙에는 널길[羨道]이 설치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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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덤 내부는 할석(割石)으로 쌓아 축조되었으며, 천장은 판석 수매로 덮여져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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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방 내부에는 지름 약 18㎝(6치) 내외의 강돌을 써서 만든, 바닥보다 한단 높은 주검받침대[屍床臺]를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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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의 입구는 할석으로 막고 그 위에 봉분을 설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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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김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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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문화유산 디지털 콘텐츠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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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11일 (토) 14:59 기준 최신판


개요

  • 중곡동은 아차산 서쪽 기슭에 위치하며, 동명의 유래는 중곡동이 자리잡은 위치가 능동과 면목동 중간에 있으므로, ‘간뎃말’ 또는 한자음으로 ‘중곡리’라함. 중곡동은 천호대로, 동일로, 능동로, 복개천길이 지나고 지하철 5,7호선이 교차하는 교통이 편리한 지역이며, 수방시설 개선과 중랑천변 개발로 안전하고 쾌적하게 조성된 일반주택지역임.

지명 유래

  • 능말(능동)과 면목동의 가운데 있으므로 가운데말 · 간뎃말이라고 하던 것을 한자명으로 표기한 데서 유래됨.
  • 그런데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로 장내중곡리라 이름 하였던 것을 분석해 보면, 그 일대에 있던 국립목마장인 사복시 전곶목장 안의 가운데 마을이라는 뜻으로 이름 붙여진 것으로도 볼 수 있음.

행정동 이력

  • 1949년 8월 13일 : 대통령령 제159호에 의해 경기도 고양군 뚝도면에서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어 중곡리가 됨
  • 1950년 : 서울특별시조례 제10호에 의해 중곡동으로 개칭됨.
  • 1953년 3월 : 장안북부동회가 설치되어 중곡동과 능동의 행정을 담당함.
  • 1955년 4월 18일 : 서울특별시조례 제66호에 의해 행정동제가 시행되면서 장안동사무소가 설치되어 송정동 · 능동 · 화양동 · 군자동 · 중곡동 · 모진동을 관할
  • 1970년 5월 5일 : 서울특별시조례 제613호에 의해 관할 법정동과 행정동명을 일치시키면서 장안동이 폐동되고 중곡동사무소가 설치되어 중곡동 · 능동 일원을 관할하게 됨으로써 행정동으로서의 중곡동이 탄생. 이때 화양동 · 송정동 · 군자동 · 모진동을 관할구역으로 화양동사무소가 설치됨.
  • 1973년 7월 1일 서울특별시조례 제784호에 의해 중곡동과 화양동의 일부를 관할구역으로 장안동이 다시 설치됨.
  • 1975년 10월 1일 : 서울특별시조례 제981호에 의해 중곡동은 중곡제1동 · 중곡제2동 · 능동으로 분동됨
  • 1995년 3월 1일 법률 제4802호로 성동구에서 광진구가 분구되면서, 중곡동 일원은 서울특별시광진구조례 제3호(1995년 3월 9일 공포하여 3월 1일로 소급 적용)로 광진구에 속하게 됨

법정동 유래

  • 조선시대 : 경기 양주군 고양주면에 속함
  • 갑오개혁 이후 :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한성부에 편입되어 남서(南署) 두모방(성외) 전곶중계 · 하계 면목리동이 됨
  • 1911년 4월 1일 : 경기도령 제3호로 경성부를 5부 36방, 성외를 8면으로 할 때 경성부 두모면 장내중곡리가 됨.
  • 1914년 4월 1일 :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기도 고양군에 편입되어 뚝도면 중곡리가 됨
  • 1949년 8월 13일 : 대통령령 제159호에 의해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어 성동구 중곡리가 됨.
  • 1950년 3월 15일 : 서울특별시조례 제10호에 의해 중곡동이 됨
  • 1995년 3월 1일 : 법률 제4802호에 의해 성동구 중 동2로 이동지역이 광진구로 분구되면서 광진구 중곡동이 됨

서울중곡동고분[1]

  •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동에 있었던 백제시대의 고분.
  • 2기의 백제시대 돌방무덤[石室墳]이 존재하였으나 현재는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음
  • 중곡동 갑분(甲墳)ㆍ을분(乙墳)으로 명명된 두 고분은 광복 전에 조사되었는데, 당시의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고양시 독도면 중곡리였음.
  • 이들은 거의 평지에 가까운 낮은 구릉상에 있음
  • 구조를 보면 돌방은 장방형으로, 남벽 중앙에는 널길[羨道]이 설치되어 있음.
  • 무덤 내부는 할석(割石)으로 쌓아 축조되었으며, 천장은 판석 수매로 덮여져 있음.
  • 돌방 내부에는 지름 약 18㎝(6치) 내외의 강돌을 써서 만든, 바닥보다 한단 높은 주검받침대[屍床臺]를 설치.
  • 현실의 입구는 할석으로 막고 그 위에 봉분을 설치.

지도

중곡동-일제시대지도

클래스

  • 장소
  • 장소-행정구역

관련 문서

이 문서 관계 관련 문서
중곡동 A는 B에 일부걸쳐있다 아차산

기여

출처

  • 위키피디아-중곡동
  • 서울지명사전-중곡동,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9년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서울중곡동고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