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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민의 성원과 기금에 힘입어 창설된 전남대학교(全南大學校)는 5.18민주화운동이 시작된 곳으로 전남대 정문은 5.18민주화운동의 최초 시위가 있었던 곳이다.  
 
지역주민의 성원과 기금에 힘입어 창설된 전남대학교(全南大學校)는 5.18민주화운동이 시작된 곳으로 전남대 정문은 5.18민주화운동의 최초 시위가 있었던 곳이다.  

2023년 5월 4일 (목) 10:00 기준 최신판

Definition

지역주민의 성원과 기금에 힘입어 창설된 전남대학교(全南大學校)는 5.18민주화운동이 시작된 곳으로 전남대 정문은 5.18민주화운동의 최초 시위가 있었던 곳이다.

이후 시위가 확산되고, 계엄군이 극단적으로 진압하면서 피해자들이 속출했으며 전남대학교 병원은 부상자 및 사망자로 북적였다. 특히 5월 20일 광주역에서 계엄군의 집단발포가 이루어진 이후 여러 집단발포가 있었는데, 이에 전남대학교 병원 응급실에 총상을 당한 응급 환자들이 물밀 듯 후송되었다. [1]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난 집단발포는 5월 21일 전남도청 앞에서 발생한 것으로 사망 최소 54명, 부상 500명 이상이다. 같은 날 전남대학교에서의 집단발포로 최소 2명이 사망하고 5명이 부상 당했는데, 사망자 중에는 임신 8개월의 임산부였던 최미애(23) 씨도 있었다.

또한 전남대학교 병원은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5월 21일 몇몇 시민들이 병원 옥상에 LMG 기관총을 설치하고, 도청의 계엄군을 공격하고자 했는데, 병원장을 비롯해 관계자들의 만류로 작업을 중단했다. 동일한 21일, 계엄군은 도청에서 외곽으로 철수하던 중 안전한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도로변 혹은 불빛이 새어나오는 곳을 향해 사격하였고, 전남대 병원은 총탄세례를 받고 말았다.[2] 심지어 5월 27일에는 계엄군이 전남대학교 병원을 포위하고 총기를 난사하고, 병원 안으로 들어가 강압적인 수색을 했다.[3] 현재 전남대 5.18기념관에는 총탄 흔적이 남아있는 캐비닛와 가운이 전시되어 있어 당시 현장의 모습을 보여준다.[4]

과거 대학 본부는 현재 5.18연구소로 쓰이고 있으며, 5.18 민주화운동이 시작된 전남대학교 정문은 5.18사적지 1호, 쇄도하는 사망자와 부상자 치료에 전념한 전남대학교병원은 5.18사적지 9호로 지정되었다.

5.18기념재단은 2010년 오월길(5.18민주화운동 사적지와 광주의 역사, 문화자원 등을 주제별로 살펴보는 테마 탐방길)을 지정하였는데, 이 중 5·18민주화운동의 열망이 담긴 사적지를 찾아가는 길인 오월인권길에는 항쟁의 불씨가 도심으로 번져가던 길인 횃불코스[5]에 전남대학교 정문가 포함되어 있으며, 민주화의 염원이 숭고한 희생정신과 만나는 길인 희생코스[6]에 전남대학교병원이 포함되어 있다.


이후 1991년에도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열사가 있었다. 1991년은 전두환의 다음 대통령으로 군사정부 출신 노태우를 선출한 뒤 군사정권이 연장되어 아직 완전한 민주화를 이뤄내지 못했던 해였다. 1991년 4월 29일 명지대학교 강경대 학생이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이를 규탄하는 과정에서 "2만 학우여 단결하라! 노태우 정권 타도하자!"를 외치며 전남대학교 재학생이자 교지 <용봉>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던 박승희 열사가 당시 전남대학교 본부 (현 용봉관) 앞에서 분신 항거하였다. 전남대학교는 민주주의를 위해 불꽃이 된 박승희 열사를 기리기 위해 1999년 그녀가 분신했던 자리에 비를 세우고, 2020년 ‘박승희 정원’을 조성하고, 이를 전남대학교 민주길(교내에 산재한 민주화 운동의 정신, 인물, 장소들의 기념공간을 잇는 둘레길) 중 제 1노선인 정의의 길로 구성하였다. 정의의 길은 전남대학교 민주화 운동의 역사와 오월정신의 역사성을 종합하는 상징적인 길로 5.18민주화운동 최초의 발원지인 전남대학교 정문에서 박관현 언덕, 윤상원 숲, 김남주 뜰, 교육지표마당, 벽화마당, 5.18광장, 박승희 정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7]

전남대학교 사범대학 1호관 건물의 동쪽 벽면에는 《광주민중항쟁도》가 그려져 있는데, 1990년에 5.18민주화운동 10주년을 기념하여 전남대 그림패 ‘마당’, 예술대학 미술패 ‘신바람’, 사범대학 ‘미술교육과’ 학생들이 ‘전남대 벽그림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완성한 가로 10m, 세로 16m의 대형 벽화이다. 5.18민주화운동의 역사적인 가치와 의미를 표현한 최초의 벽화인데, 총을 든 청년과 시민, 공동체 정신을 보여주는 가마솥에 밥을 짓는 모습 등 5.18민주화운동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그려져 있고, 상부에 그려진 백두산 천지에는 통일에 대한 염원이 담겨있다. 2017년 9월, 세월이 흐르면서 흐려지고 훼손된 벽화를 되살리기 위해 전남대 민주동우회와 900여 명의 시민들이 약 2,600만 원의 성금을 모았고, 광주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2,000만 원을 기탁하여 벽화 복원팀을 꾸렸다. 20명의 전문작가팀과 423명의 일반 참여자(채색 작업 참여)들의 노력에 광주민중항쟁도는 다시 되살아났다. 2020년 전남대는 광주민중항쟁도를 통해 5·18정신을 계승하고, 민족의 통일을 염원하고자 ‘벽화마당’을 새롭게 조성하고, 벽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위치에 다리를 조성하였다.

Notes

  1. 『오월길』 5·18기념문화관, 인용일 2023-05-03, http://518road.518.org/sub.php?PID=0101&action=Read&idx=23
  2. 노성만, 『5·18 10일간의 야전병원(전남대학교병원 5·18민주화운동 의료활동집)』, 전남대학교병원, 2017.
  3. 5·18기념재단, 『오월 광주 여행』, MOVE, 2022.
  4. 전남대학교 정문(사적 1호), 광주역 광장(사적 2호), 시외버스 공용터미널 옛 터(사적 3호), 5·18 최초발포지(사적 21호), 광주 MBC 옛 터(사적 7호), 녹두서점 옛 터(사적 8호), 광주 YWCA 옛 터(사적 6호), 금남로(5·18기록관)(사적 4호), 광주YMCA(사적 5-4호), 구 상무관(사적 5-3호), 5·18민주광장(사적 5-2호), 도청과 5·18민주광장(사적 5-1호)
  5. 도청과 5·18민주광장(사적 5-1호), 남동성당(사적 25호), 전남대학교병원(사적 9호), 조선대학교(사적 12호), 배고픈다리 일대(사적 13호), 주남마을 인근 양민 학살지(사적 14호), 광목간 양민 학살지(사적 15호), 광주기독병원(사적 10호), 구 광주적십자병원(사적 11호), 광주공원(사적 20호)
  6. 전남대학교 민주길, 인용일 2023-05-03, https://518trail.jnu.ac.kr/SubPage.aspx?PageCode=K2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