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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은 건국 초기에 함경도와 평안도의 북방 국경 지대는 군익도 체제(軍翼道體制)를 통해 방어 임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남방의 연해(沿海) 요충지에는 군진(軍鎭)을 설치하고 군사와 전선을 배치해 외적을 방어하고자 했다. 이에 비해 내륙 지방에는 실제적 군사 조직이 없었다. 따라서 조선에서는 외적이 북방의 국경 지대나 연해 지역의 방어 거점을 돌파해서 내륙 지역으로 공격해 올 경우 이를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어려웠다. 결국 1455년(세조 1) 기존 방어 체제의 한계를 해소하기 위해 군익도 체제를 전국적으로 확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더욱 체계화시켜 개편한 것이 진관 체제였다. 이 진관 체제는 내륙 지방에 주진(主鎭)을 세우고, 그 밑에는 거진을 설치하는 것이었다.<ref>[http://contents.history.go.kr/front/tg/view.do?treeId=0105&levelId=tg_003_1440&ganada=&pageUnit=10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교과서 용어 해설, 시대별, 조선시대, 진관 체제]</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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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진이 설치된 내륙 지역은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해안 지역은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가 지휘하도록 했다. 거진에는 첨절제사(僉節制使)를 두어 군사 업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곧 진관 체제는 수령의 통제 아래 지리적 이점을 활용한 작전 구사가 가능하며, 하나의 진이 무너지더라도 다른 진이 방어선 역할을 담당하는 구조였다.<ref>[http://contents.history.go.kr/front/tg/view.do?treeId=0105&levelId=tg_003_1440&ganada=&pageUnit=10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교과서 용어 해설, 시대별, 조선시대, 진관 체제]</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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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조선의 기본 방어체계 진관체제(鎭管體制)
- 조선 전기에 지방을 방어하는 군사 방어 체계이다. 진관 체제는 조선의 행정 조직 단위였던 ‘읍(邑)’을 군사 조직 단위인 ‘진(鎭)’으로 편성하고, 각 읍의 수령이 군사 지휘권을 가지도록 규정한 제도이다. 진관 체제는 내륙 지방의 군사적 요충지에 중심이 되는 주진(主鎭)을 세우고 그 밑에는 거진(巨鎭)을 설치하도록 조치했다.[1]
- 조선은 건국 초기에 함경도와 평안도의 북방 국경 지대는 군익도 체제(軍翼道體制)를 통해 방어 임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남방의 연해(沿海) 요충지에는 군진(軍鎭)을 설치하고 군사와 전선을 배치해 외적을 방어하고자 했다. 이에 비해 내륙 지방에는 실제적 군사 조직이 없었다. 따라서 조선에서는 외적이 북방의 국경 지대나 연해 지역의 방어 거점을 돌파해서 내륙 지역으로 공격해 올 경우 이를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어려웠다. 결국 1455년(세조 1) 기존 방어 체제의 한계를 해소하기 위해 군익도 체제를 전국적으로 확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더욱 체계화시켜 개편한 것이 진관 체제였다. 이 진관 체제는 내륙 지방에 주진(主鎭)을 세우고, 그 밑에는 거진을 설치하는 것이었다.[2]
- 주진이 설치된 내륙 지역은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해안 지역은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가 지휘하도록 했다. 거진에는 첨절제사(僉節制使)를 두어 군사 업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곧 진관 체제는 수령의 통제 아래 지리적 이점을 활용한 작전 구사가 가능하며, 하나의 진이 무너지더라도 다른 진이 방어선 역할을 담당하는 구조였다.[3]
강화도방어체계와 관련하여
- 강화도를 둘러쌓고 지어진 진, 보 등은 위 진관 체제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다. 즉 진과 보의 중요도에 따라서 파견되는 지휘하는 관인의 품계가 달랐다. 원래 진은 전통적으로 만호가 통솔하며, 보는 별장이 통솔하는 것이 관례이다. 그런데 강화도의 진과 보를 보면 특이한 관례가 있는데 바로 첨절제사 종3품 관직이 초지진과 월곶진을 관할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 두 진은 매우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에 위치했으며 그 때문에 수시로 외세가 침략 할 때 제일 먼저 공격 받는 지역이었다. 그러므로 진의 규모와 성격 때문에 관품이 높은 관인이 직접 부임하여 이곳을 통솔한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강화도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조선의 각 도에도 그런 모습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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