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련사 전설"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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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련사(五蓮寺) 전설은 강화도 고려산에 있었던 5 개의 연꽃 사찰의 걸립에 대한 전설이다. 전설의 버전이 여러 것이 있으며 공동적으로 나오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천축국의 스님이 고려산에 와서 다섯 색깔의 연꽃을 공중에 날려 떨어진 곳마다 연꽃 색깔과 같은 이름으로 절을 지었다고 한다. 1905년에 발간한 백련사중건기에 의하면 이 사건은 진나라 의희 12년에 있었던 일이라 서기 416년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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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련사는 조사가 원하는 데에 떨어지질 못해 원통한 나머지 '원통암'이라는 절을 지었다. (이 내용은 다른 곳에서 확인할 수 없다.) | **청련사는 조사가 원하는 데에 떨어지질 못해 원통한 나머지 '원통암'이라는 절을 지었다. (이 내용은 다른 곳에서 확인할 수 없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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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중건지(1905)에 오련사의 창건이 진나라 의희 12년인 서기 418년의 일이라고 밝히고 있다. 백제의 불교를 처음 전한 마라난타도 갗은 동진에서 온 천축국의 승려였으며, 시기는 384년이라고 한다. '마라난타가 잭제 한산주에 와서 절을 지으니 이것이 잭제 불교의 시초이다'라고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로부터 약 30년이 지나 강화의 오련사가 창건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백제 불교 초전당시에 천축국의 승려는 강화도를 거쳐 한강을 거슬러 올라사 수도로 갔을 사능성이 매우 크다. 강화의 불교 사원의 건립은 백제의 불교 공인관도 밀접한 관련이 있응 것으로 볼 수 있다. (pp. 11-12). </pre> | 백련사중건지(1905)에 오련사의 창건이 진나라 의희 12년인 서기 418년의 일이라고 밝히고 있다. 백제의 불교를 처음 전한 마라난타도 갗은 동진에서 온 천축국의 승려였으며, 시기는 384년이라고 한다. '마라난타가 잭제 한산주에 와서 절을 지으니 이것이 잭제 불교의 시초이다'라고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로부터 약 30년이 지나 강화의 오련사가 창건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백제 불교 초전당시에 천축국의 승려는 강화도를 거쳐 한강을 거슬러 올라사 수도로 갔을 사능성이 매우 크다. 강화의 불교 사원의 건립은 백제의 불교 공인관도 밀접한 관련이 있응 것으로 볼 수 있다. (pp. 11-12). </pr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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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3일 (일) 17:54 기준 최신판
오련사(五蓮寺) 전설은 강화도 고려산에 있었던 5 개의 연꽃 사찰의 걸립에 대한 전설이다. 전설의 버전이 여러 것이 있으며 공동적으로 나오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천축국의 스님이 고려산에 와서 다섯 색깔의 연꽃을 공중에 날려 떨어진 곳마다 연꽃 색깔과 같은 이름으로 절을 지었다고 한다. 1905년에 발간한 백련사중건기에 의하면 이 사건은 진나라 의희 12년에 있었던 일이라 서기 416년이다.
전설의 버전들
아래의 내용은 "인천의 전통사찰과 불교미술(3)"(2015,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에서 가져왔다
- 1783년 강화부지
- 전하는 말에 의하면, 천축국의 이승이 오색의 연꽃을 허골에 날려서 그 꽃들이 떨어지는 곳을 따라서 가각 절을 세웠다고 한다. 이곳에 붉은 연꽃이 떨어지면 그 이름을 적련사라 하였고, 흰 연꽃이면 또한 백련사라 하였다 한다. 그리하여 국정사의 동쪽에는 청련사의 터가 있는데, 혹자는 고려산을 오현산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 1905년 백련사중건기
- 옛날 동진 의희 12년(416)에 천축조사가 고려산에 와서 산 정상의 오련담에 5색의 연꽃이 영롱하게 피어 있는 것을 보고... 5색의 연꽃을 한 송이씩 꺾어 공중으로 날린 후 그 꽃이 떨어진 곳마다 절을 각각 지었다. 여기에 백색의 연꽃이 떨어져서 백연사라하였다.
- 1906년 심도기행
- 고려산은 강화부의 진산이면 일명 오련산이하 한다. 전하기를 전축의 승려가 일찍이 다섯 빛쌀의 연꽃을 하늘에 날려서 각각 떨어진 곳에 사찰 한개씩을 세웠다고 한다. 지금은 청련사와 백련사와 적련사 세 사찰만이 있고 나머지는 모두 폐지되었다.
- 1932년 속수증보강도지
- 세상에 전하기를 천축국의 이승이 고려산 정상에 와보니 산에 5개의 우물이 있고, 우물마다 연꽃이 있는데 각기 다른색이었다. 모두 5생이었는데 그 천축국의 스님이 5색의 연꽃을 꺾어 공중으로 던지고 그 떨어지는 곳마다 절을 하나씩 세웠다. 이 절은 청련이 떨어진 곳으므로 이름을 '청련사'라 하였다. 그 밖에 적련사, 백련사, 황련사, 흑련사는 아래와 같다.
- 1942년 전등사본말사지
- 옛적 진나라 의희 12년 천축조사가 심도에 와서 고려산을 답사하다가 산 정상에 으르러 오현지를 발견하였다. 천축조사는 그5종의 연꽃을 꺾어 공중으로 날려서 그 연꽃이 떨어지는 곳마다 절을 창건하였다. 이 곳은 청련이 떨어졌으므로 절을 자은 즉시로 '청련사'라 칭하였다.
- 백제 전지왕 12년(416년) 병진년에 천축조사가 개산하고 백련사라 이름 하였다.
- 고려산 오련지 안내판
- 청련사는 조사가 원하는 데에 떨어지질 못해 원통한 나머지 '원통암'이라는 절을 지었다. (이 내용은 다른 곳에서 확인할 수 없다.)
오련사 전설의 역사적 의의
"인천의 전통사찰과 불교미술(3)"에 의하면
백련사중건지(1905)에 오련사의 창건이 진나라 의희 12년인 서기 418년의 일이라고 밝히고 있다. 백제의 불교를 처음 전한 마라난타도 갗은 동진에서 온 천축국의 승려였으며, 시기는 384년이라고 한다. '마라난타가 잭제 한산주에 와서 절을 지으니 이것이 잭제 불교의 시초이다'라고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로부터 약 30년이 지나 강화의 오련사가 창건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백제 불교 초전당시에 천축국의 승려는 강화도를 거쳐 한강을 거슬러 올라사 수도로 갔을 사능성이 매우 크다. 강화의 불교 사원의 건립은 백제의 불교 공인관도 밀접한 관련이 있응 것으로 볼 수 있다. (pp.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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