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孔子上第三十八"의 두 판 사이의 차이
DH 교육용 위키
(→孔子上第三十八) |
|||
(같은 사용자에 의한 4개의 중간 편집이 숨겨짐) | |||
3번째 줄: | 3번째 줄: | ||
---- | ---- | ||
:'''『春秋』, 正王道, 明大法<ref> 『漢語大詞典』 1. 基本法則. 唐 韓愈 《答劉秀才論史書》 “愚以爲凡史氏褒貶大法, 『春秋』已備之矣.”</ref>也, 孔子為後世王者而修也. 亂臣賊子誅死者於前, 所以懼生者於後也. 宜乎萬世無窮, 王祀夫子, 報德報功之無盡焉.''' | :'''『春秋』, 正王道, 明大法<ref> 『漢語大詞典』 1. 基本法則. 唐 韓愈 《答劉秀才論史書》 “愚以爲凡史氏褒貶大法, 『春秋』已備之矣.”</ref>也, 孔子為後世王者而修也. 亂臣賊子誅死者於前, 所以懼生者於後也. 宜乎萬世無窮, 王祀夫子, 報德報功之無盡焉.''' | ||
− | :『춘추』는 왕도를 바로 세우고 대법을 밝혔으니, 공자께서 후세의 임금을 위해 편수하신 것이다. [『춘추』에서] 전에 주살당한 난신적자[를 기록한 것은] 뒤에 태어난 자를 두렵게 하려는 것이다. 만세토록 부자를 왕으로 제사하여<ref> | + | :『춘추』는 왕도를 바로 세우고 대법을 밝혔으니, 공자께서 후세의 임금을 위해 편수하신 것이다. [『춘추』에서] 전에 주살당한 난신적자[를 기록한 것은] 뒤에 태어난 자를 두렵게 하려는 것이다.<ref> 『孟子』 「滕文公下」 9. 孔子成『春秋』而亂臣賊子懼.</ref> 만세토록 부자를 왕으로 제사하여<ref> 王充, 『論衡』 「超奇」 孔子作『春秋』, 以示王意. 然則孔子之『春秋』, 素王之業也; 같은 책, 「定賢」 孔子不王, 素王之業, 在於『春秋』. ; 百度百科 孔子 페이지[https://baike.baidu.com/item/%E5%AD%94%E5%AD%90/1584?fr=aladdin#5]의 「5.歷代追諡」를 참조하면, 공자가 역대 군주들에게 받았던 봉호와 시호를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공자를 왕으로 봉한 것은 당 현종 때 시작되었다. |
− | {| | + | {| cellpadding="10" cellspacing="0" border="1" width="100%" |
|- | |- | ||
− | + | ! 年代 | |
− | + | ! 封賜來源 | |
− | + | ! 封號和諡號 | |
− | + | ! 封諡原因及意義來源 | |
|- | |- | ||
− | | 739년(開元27년) | + | | 739년(開元27년)|| 唐 玄宗 || 文宣王 || |
− | | 唐 玄宗 | + | |
− | | 文宣王 | + | |
− | | | + | |
|- | |- | ||
− | | 1008년(大中祥符원년) | + | | 1008년(大中祥符원년) || 宋 眞宗 || 玄聖文宣王 || 『莊子』 「天道」 玄聖素王之道也。 |
− | | 宋 眞宗 | + | |
− | | 玄聖文宣王 | + | |
− | | 『莊子』 「天道」 玄聖素王之道也。 | + | |
|- | |- | ||
− | | 1012년(大中祥符5년) | + | | 1012년(大中祥符5년) || 宋 眞宗 || 至聖文宣王 || 因避宋聖祖趙玄朗諱而改至聖, 至聖出自『中庸』, “唯天下至聖, 爲能聰、明、睿知、足以有臨也.” |
− | | 宋 眞宗 | + | |
− | | 至聖文宣王 | + | |
− | | 因避宋聖祖趙玄朗諱而改至聖, 至聖出自『中庸』, “唯天下至聖, 爲能聰、明、睿知、足以有臨也.” | + | |
|} | |} | ||
− | </ref> 그 공덕에 보답함을 그치지 않음이 마땅하도다! | + | </ref>(혹은 후세 왕들이 부자를 제사하여) 그 공덕에 보답함을 그치지 않음이 마땅하도다! |
− | = | + | =주석= |
<references/> | <references/> |
2019년 5월 29일 (수) 11:51 기준 최신판
孔子上第三十八
주돈이의 통서 제38장 원문 및 朱注이다.
- 『春秋』, 正王道, 明大法[1]也, 孔子為後世王者而修也. 亂臣賊子誅死者於前, 所以懼生者於後也. 宜乎萬世無窮, 王祀夫子, 報德報功之無盡焉.
- 『춘추』는 왕도를 바로 세우고 대법을 밝혔으니, 공자께서 후세의 임금을 위해 편수하신 것이다. [『춘추』에서] 전에 주살당한 난신적자[를 기록한 것은] 뒤에 태어난 자를 두렵게 하려는 것이다.[2] 만세토록 부자를 왕으로 제사하여[3](혹은 후세 왕들이 부자를 제사하여) 그 공덕에 보답함을 그치지 않음이 마땅하도다!
주석
- ↑ 『漢語大詞典』 1. 基本法則. 唐 韓愈 《答劉秀才論史書》 “愚以爲凡史氏褒貶大法, 『春秋』已備之矣.”
- ↑ 『孟子』 「滕文公下」 9. 孔子成『春秋』而亂臣賊子懼.
- ↑ 王充, 『論衡』 「超奇」 孔子作『春秋』, 以示王意. 然則孔子之『春秋』, 素王之業也; 같은 책, 「定賢」 孔子不王, 素王之業, 在於『春秋』. ; 百度百科 孔子 페이지[1]의 「5.歷代追諡」를 참조하면, 공자가 역대 군주들에게 받았던 봉호와 시호를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공자를 왕으로 봉한 것은 당 현종 때 시작되었다.
年代 封賜來源 封號和諡號 封諡原因及意義來源 739년(開元27년) 唐 玄宗 文宣王 1008년(大中祥符원년) 宋 眞宗 玄聖文宣王 『莊子』 「天道」 玄聖素王之道也。 1012년(大中祥符5년) 宋 眞宗 至聖文宣王 因避宋聖祖趙玄朗諱而改至聖, 至聖出自『中庸』, “唯天下至聖, 爲能聰、明、睿知、足以有臨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