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사 이야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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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한 이 곳은 부처님의 힘으로 몽고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하여 16년 동안 팔만대장경을 판각하였던 역사의 장소였으며(아직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병인양요의 격돌 속에서는 스님들이 실록과 서책들을 토굴로 나르고 옮기면서 지켜내기도 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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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등사에 들어설 때 여느 절과 다른 모양의 입구 모습에 의아했다. 산성의 성문을 들어서는 것과 같았는데 그것은 정족산성이다. 안으로 들어가면서 마치 절이 하나의 산채나 요새와 같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데 절안에서 볼 수 있는 대조루(對潮樓)는 밖에서는 '전등사(傳燈寺)'의 현판이 걸려있지만 안에서는 가장 먼저 밖의 동정을 살필 수 있는 망루(望樓)같은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절 뒤에는 마치 비밀통로와 같이(물론 지금은 안내판이 있고 길이 있지만) 사고(史庫)로 향하는 길이 있다. 어쩌면 그 사고(史庫)의 어느 뒤에 쯤에나 혹은 그 산의 어디쯤에는 절안의 사람들만이 아는 또 다른 비밀의 장소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년이 넘는 그 긴 역사속에서 수많은 외침의 격돌과 병란 속에서 스님들이 절과 절의 유산들을 지켜내어 올 수 있었던 그 안에는 그들만의 비법이 있지 않았을까... 문득 어렸을때 보았던 소림사의 영화가 떠오른다. 국난의 위기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나라를 지키고 중생들을 지키고자 했던 부처의 제자들의 모습들... 실제로 실록과 서책들을 토굴로 나르면서 지켰다는 안내문을 보면서 지금 이 시간의 이 곳에서 그 옛날의 그 모습들이 영화의 장면처럼 떠오르게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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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등사는 바로 천년의 역사를 담은 '''문화유산의 보고(寶庫)'''이자 국난의 위기를 헤쳐나갔던 '''요새(要塞)'''였던 것이다. 지금 이 전등사 이야기는 바로 이와 같은 두 가지 관점에서 전등사를 살펴보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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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https://namu.wiki/w/%EA%B0%95%ED%99%94%EB%8F%84 항쟁의 역사를 간직한 '국방의 요새' 경기 강화도(京畿 江華島) 저자 조진섭, 이경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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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5일 (일) 14:22 기준 최신판
개요
전등사는 381년 고구려 소수림왕때 지어졌다고 전해지는 국내 최고(最古)의 사찰 이다. 이처럼 오랜 시간을 견뎌올 수 있었던 전등사는 그 역사 만큼이나 많은 보물을 간직하고 있다. 대웅보전의 목조 석가여래삼불좌상과 약사전의 약사여래와 명부전의 시왕상과 목조 지장보살삼존상을 비롯하여 범종과 수미단과 업경대 등의 많은 불교문화유산과 함께 격동의 역사 속에서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정족산 사고(장사각과 선원보각)가 있다. 또한 이 곳은 부처님의 힘으로 몽고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하여 16년 동안 팔만대장경을 판각하였던 역사의 장소였으며(아직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병인양요의 격돌 속에서는 스님들이 실록과 서책들을 토굴로 나르고 옮기면서 지켜내기도 하였다.
전등사에 들어설 때 여느 절과 다른 모양의 입구 모습에 의아했다. 산성의 성문을 들어서는 것과 같았는데 그것은 정족산성이다. 안으로 들어가면서 마치 절이 하나의 산채나 요새와 같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데 절안에서 볼 수 있는 대조루(對潮樓)는 밖에서는 '전등사(傳燈寺)'의 현판이 걸려있지만 안에서는 가장 먼저 밖의 동정을 살필 수 있는 망루(望樓)같은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절 뒤에는 마치 비밀통로와 같이(물론 지금은 안내판이 있고 길이 있지만) 사고(史庫)로 향하는 길이 있다. 어쩌면 그 사고(史庫)의 어느 뒤에 쯤에나 혹은 그 산의 어디쯤에는 절안의 사람들만이 아는 또 다른 비밀의 장소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년이 넘는 그 긴 역사속에서 수많은 외침의 격돌과 병란 속에서 스님들이 절과 절의 유산들을 지켜내어 올 수 있었던 그 안에는 그들만의 비법이 있지 않았을까... 문득 어렸을때 보았던 소림사의 영화가 떠오른다. 국난의 위기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나라를 지키고 중생들을 지키고자 했던 부처의 제자들의 모습들... 실제로 실록과 서책들을 토굴로 나르면서 지켰다는 안내문을 보면서 지금 이 시간의 이 곳에서 그 옛날의 그 모습들이 영화의 장면처럼 떠오르게 된다.
전등사는 바로 천년의 역사를 담은 문화유산의 보고(寶庫)이자 국난의 위기를 헤쳐나갔던 요새(要塞)였던 것이다. 지금 이 전등사 이야기는 바로 이와 같은 두 가지 관점에서 전등사를 살펴보려고 한다.
천년고찰의 문화유산 전등사
사진[1]
국난극복의 기지였던 전등사
전등사 이야기
주요노드
- 역사 : 381년 고구려 진종사창건 ,1282년 전등사개명, 1726년 영조, 1866년 병인양요,
- 전설 : 삼랑성전설, 나부상전설
- 인물 : 소수림왕, 아도화상, 충렬왕비 정화궁주, 고려고종, 광해군, 영조, 양헌수
- 위치 : 정족산성, 삼랑성
- 문화유산 : 대웅보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약사전, 약사여래, 명부전, 시왕상, 목조 지장보살삼존상, 범종, 수미단, 업경대, 탱화, 청동수조, 정족산 사고, 장사각 ,선원보각,취향당, 정족산 사고본 조선왕조실록, 양헌수승전비, 고려가궐지.
- 국난극복 : 몽골 침략,고려고종, 대몽항쟁, 병자호란, 병인양요, 프랑스, 양헌수, 정족산사고, 토굴, ...
지식관계망
관련 사이트
출처
- ↑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학원 2019 봄 학술답사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