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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g>翠香堂鎖紫雲窓 (<small>취향당쇄자운'''창'''</small>)    취향당 현판은 자운창에 걸려있어,<br />御墨煌煌彩亘江 (<small>어묵황황채긍'''강'''</small>)    임금님 글씨 빛이 나니 문채가 강물 같네.<br />十二毫龍蟠屈勢 (<small>십이호룡반궐세</small>)    열두 글자 용이 되어 웅크린 자세이니, <br />萬年鎭我一東邦 (<small>만년진아일동'''방'''</small>)    일만 년 지나도록 우리나라 지켜주리.<br /></big>
 
  <big>翠香堂鎖紫雲窓 (<small>취향당쇄자운'''창'''</small>)    취향당 현판은 자운창에 걸려있어,<br />御墨煌煌彩亘江 (<small>어묵황황채긍'''강'''</small>)    임금님 글씨 빛이 나니 문채가 강물 같네.<br />十二毫龍蟠屈勢 (<small>십이호룡반궐세</small>)    열두 글자 용이 되어 웅크린 자세이니, <br />萬年鎭我一東邦 (<small>만년진아일동'''방'''</small>)    일만 년 지나도록 우리나라 지켜주리.<br /></big>
  
○ 해산석실의 외관(外館)이 취향당(翠香堂)<ref>취향당(翠香堂)</ref>인데 여기에서 선보·보록을 임시로 봉안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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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산석실의 외관(外館)이 취향당(翠香堂)<ref>취향당(翠香堂)[http://rose.miletos.co.kr/221188680486] </ref>인데 여기에서 선보·보록을 임시로 봉안한 곳이다.
 
○ 영조 때에 종부시의 관리가 정족성에 선원록(璿源錄)을 봉안하였다. 후에 영조가 써서 내려준 “계사년(1713, 숙종 39)에 봉안하고 와서 자다. 신묘년(1771, 영조 48) 여름에 써서 부치다(粤癸巳奉安來宿 辛卯夏書付)”라는 12글자를 이 당 안에 게재하였다.
 
○ 영조 때에 종부시의 관리가 정족성에 선원록(璿源錄)을 봉안하였다. 후에 영조가 써서 내려준 “계사년(1713, 숙종 39)에 봉안하고 와서 자다. 신묘년(1771, 영조 48) 여름에 써서 부치다(粤癸巳奉安來宿 辛卯夏書付)”라는 12글자를 이 당 안에 게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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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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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 해산석실
 
* 해산석실
* 취향당
+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7618&cid=41826&categoryId=41826 선보]
* 선보
+
 
* 보록
 
* 보록
* 종부시
+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49596&cid=46622&categoryId=46622 종부시]
* 선원록
+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76818&cid=46708&categoryId=46708 선원록]
* 봉안
+
 
* 粤癸巳奉安來宿 辛卯夏書付
 
* 粤癸巳奉安來宿 辛卯夏書付

2019년 4월 22일 (월) 09:12 판

翠香堂鎖紫雲窓 (취향당쇄자운)    취향당 현판은 자운창에 걸려있어,
御墨煌煌彩亘江 (어묵황황채긍) 임금님 글씨 빛이 나니 문채가 강물 같네.
十二毫龍蟠屈勢 (십이호룡반궐세) 열두 글자 용이 되어 웅크린 자세이니,
萬年鎭我一東邦 (만년진아일동) 일만 년 지나도록 우리나라 지켜주리.

○ 해산석실의 외관(外館)이 취향당(翠香堂)[1]인데 여기에서 선보·보록을 임시로 봉안한 곳이다. ○ 영조 때에 종부시의 관리가 정족성에 선원록(璿源錄)을 봉안하였다. 후에 영조가 써서 내려준 “계사년(1713, 숙종 39)에 봉안하고 와서 자다. 신묘년(1771, 영조 48) 여름에 써서 부치다(粤癸巳奉安來宿 辛卯夏書付)”라는 12글자를 이 당 안에 게재하였다.



인물

  • 영조

참고

  1. 취향당(翠香堂)[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