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장사각(藏史閣)"의 두 판 사이의 차이

DH 교육용 위키
이동: 둘러보기, 검색
1번째 줄: 1번째 줄:
 
  <big>石室深深炳有'''光''' (<small>석실심심병유'''광'''</small>)    석실이 깊지만 빛이 있어 밝으니,<br />丹書玉牒帶天'''香''' (<small>단서옥첩대천'''향'''</small>)    귀중한 서첩들이 天香을 띠고 있네.<br />此山並列名山四 (<small>차산병렬명산사</small>)    정족산과 나란히 한 명산이 네 곳이니, <br />太白五臺又赤'''裳''' (<small>태백오대우적'''상'''</small>)    태백산 오대산과 적상산이 그곳이네.<br /> </big>
 
  <big>石室深深炳有'''光''' (<small>석실심심병유'''광'''</small>)    석실이 깊지만 빛이 있어 밝으니,<br />丹書玉牒帶天'''香''' (<small>단서옥첩대천'''향'''</small>)    귀중한 서첩들이 天香을 띠고 있네.<br />此山並列名山四 (<small>차산병렬명산사</small>)    정족산과 나란히 한 명산이 네 곳이니, <br />太白五臺又赤'''裳''' (<small>태백오대우적'''상'''</small>)    태백산 오대산과 적상산이 그곳이네.<br /> </big>
  
○ 해산석실(海山石室)은 전등사 뒤에 있는데, 그 안에는 선원각(璿源閣)과 장사각(藏史閣)이 있어서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7618&cid=41826&categoryId=41826 선보(璿譜)<ref>선원보첩(璿源譜牒)[http://waks.aks.ac.kr/subject.aspx?dataID=3909]</ref>]와 보록(寶錄)을 봉안하였다. 현종 경자년(1660)에 강화유수였던 도계(道溪) 유심(柳淰)이 창건하였다.
+
○ 해산석실(海山石室)은 전등사 뒤에 있는데, 그 안에는 선원각(璿源閣)<ref>선원각(璿源閣)[http://waks.aks.ac.kr/rsh/dir/rview.aspx?rshID=AKS-2013-CKD-1240001&dataID=00009699@AKS-2013-CKD-1240001_DIC][https://hanja.dict.naver.com/search?query=%EC%84%A0%EC%9B%90%EA%B0%81]</ref>과 장사각(藏史閣)<ref>장사각(藏史閣)[http://waks.aks.ac.kr/dir/searchView.aspx?dataID=00004198@AKS-2013-CKD-1240001_DIC]</ref>이 있어서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7618&cid=41826&categoryId=41826 선보(璿譜)<ref>선원보첩(璿源譜牒)[http://waks.aks.ac.kr/subject.aspx?dataID=3909]</ref>]와 보록(寶錄)을 봉안하였다. 현종 경자년(1660)에 강화유수였던 도계(道溪) 유심(柳淰)이 창건하였다.
  
  

2019년 4월 16일 (화) 18:19 판

石室深深炳有 (석실심심병유)    석실이 깊지만 빛이 있어 밝으니,
丹書玉牒帶天 (단서옥첩대천) 귀중한 서첩들이 天香을 띠고 있네.
此山並列名山四 (차산병렬명산사) 정족산과 나란히 한 명산이 네 곳이니,
太白五臺又赤 (태백오대우적) 태백산 오대산과 적상산이 그곳이네.

○ 해산석실(海山石室)은 전등사 뒤에 있는데, 그 안에는 선원각(璿源閣)[1]과 장사각(藏史閣)[2]이 있어서 선보(璿譜)[3]와 보록(寶錄)을 봉안하였다. 현종 경자년(1660)에 강화유수였던 도계(道溪) 유심(柳淰)이 창건하였다.



인물

유심(1608∼1667)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징보(澄甫), 호는 도계(道溪). 경상도관찰사, 평안도관찰사를 역임한 후, 1660년 강화유수를 지냈다. 글씨에 뛰어났으며, 특히 송설체(松雪體)에 능하였다.



참고

  1. 선원각(璿源閣)[1][2]
  2. 장사각(藏史閣)[3]
  3. 선원보첩(璿源譜牒)[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