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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石室深深炳有'''光''' (<small>석실심심병유'''광'''</small>) 석실이 깊지만 빛이 있어 밝으니,<br />丹書玉牒帶天'''香''' (<small>단서옥첩대천'''향'''</small>) 귀중한 서첩들이 天香을 띠고 있네.<br />此山並列名山四 (<small>차산병렬명산사</small>) 정족산과 나란히 한 명산이 네 곳이니, <br />太白五臺又赤'''裳''' (<small>태백오대우적'''상'''</small>) 태백산 오대산과 적상산이 그곳이네.<br /> </big> | <big>石室深深炳有'''光''' (<small>석실심심병유'''광'''</small>) 석실이 깊지만 빛이 있어 밝으니,<br />丹書玉牒帶天'''香''' (<small>단서옥첩대천'''향'''</small>) 귀중한 서첩들이 天香을 띠고 있네.<br />此山並列名山四 (<small>차산병렬명산사</small>) 정족산과 나란히 한 명산이 네 곳이니, <br />太白五臺又赤'''裳''' (<small>태백오대우적'''상'''</small>) 태백산 오대산과 적상산이 그곳이네.<br /> </big> | ||
− | ○ 해산석실(海山石室)은 전등사 뒤에 있는데, 그 안에는 선원각(璿源閣)과 장사각(藏史閣)이 있어서 선보(璿譜)와 보록(寶錄)을 봉안하였다. 현종 경자년(1660)에 강화유수였던 도계(道溪) 유심(柳淰)이 창건하였다. | + | ○ 해산석실(海山石室)은 전등사 뒤에 있는데, 그 안에는 선원각(璿源閣)과 장사각(藏史閣)이 있어서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7618&cid=41826&categoryId=41826 선보(璿譜)<ref>선보[http://waks.aks.ac.kr/subject.aspx?dataID=3909]</ref>]와 보록(寶錄)을 봉안하였다. 현종 경자년(1660)에 강화유수였던 도계(道溪) 유심(柳淰)이 창건하였다. |
2019년 4월 16일 (화) 18:09 판
石室深深炳有光 (석실심심병유광) 석실이 깊지만 빛이 있어 밝으니,
丹書玉牒帶天香 (단서옥첩대천향) 귀중한 서첩들이 天香을 띠고 있네.
此山並列名山四 (차산병렬명산사) 정족산과 나란히 한 명산이 네 곳이니,
太白五臺又赤裳 (태백오대우적상) 태백산 오대산과 적상산이 그곳이네.
○ 해산석실(海山石室)은 전등사 뒤에 있는데, 그 안에는 선원각(璿源閣)과 장사각(藏史閣)이 있어서 선보(璿譜)[1]와 보록(寶錄)을 봉안하였다. 현종 경자년(1660)에 강화유수였던 도계(道溪) 유심(柳淰)이 창건하였다.
인물
유심(1608∼1667)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징보(澄甫), 호는 도계(道溪). 경상도관찰사, 평안도관찰사를 역임한 후, 1660년 강화유수를 지냈다. 글씨에 뛰어났으며, 특히 송설체(松雪體)에 능하였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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