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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g>山後花開海映紅 (<small>산후화개해영'''홍'''</small>) 산뒤마을 꽃이 피니 바다에 붉게 비치고,<br />黃司馬坐管春風 (<small>황사마좌관춘'''풍'''</small>) 황진사는 좌정하여 봄바람을 맞고 있네.<br />丙寅往事何堪說 (<small>병인왕사하감설</small>)    병인년 지난 일을 어찌 감히 말로 할까, <br />聖廟播遷茅屋中 (<small>성묘파천모옥'''중'''</small>) 대성전의 위패 옮겨 모셨네 이 마을 초가집에.<br /></b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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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g>山後花開海映紅 (<small>산후화개해영'''홍'''</small>)     산뒤마을 꽃이 피니 바다에 붉게 비치고,<br />黃司馬坐管春風 (<small>황사마좌관춘'''풍'''</small>)     황진사는 좌정하여 봄바람을 맞고 있네.<br />丙寅往事何堪說 (<small>병인왕사하감설</small>)    병인년 지난 일을 어찌 감히 말로 할까, <br />聖廟播遷茅屋中 (<small>성묘파천모옥'''중'''</small>)     대성전의 위패 옮겨 모셨네 이 마을 초가집에.<br /></big>
  
진사 황명희(黃明凞)의 조상 직장 황호덕(黃浩悳)이 일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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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사 황명희(黃明凞)의 조상 직장 황호덕(黃浩悳)이 일찍이 강화부의 분교관(分敎官)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병인양요가 일어나 성이 함락되던 날 밤에 대성전으로 들어가 5분의 성인의 위패를 지고 나와 이 마을의 집에 안치했다가 서양인이 물러나자 다시 대성전에 봉안하였다.
화부의 분교관(分敎官)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병인양요가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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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山後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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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 길상면 선두리 산후마을 즉, 산뒷말이다.

2019년 4월 11일 (목) 14:44 판

山後花開海映紅 (산후화개해영)     산뒤마을 꽃이 피니 바다에 붉게 비치고,
黃司馬坐管春風 (황사마좌관춘) 황진사는 좌정하여 봄바람을 맞고 있네.
丙寅往事何堪說 (병인왕사하감설) 병인년 지난 일을 어찌 감히 말로 할까,
聖廟播遷茅屋中 (성묘파천모옥) 대성전의 위패 옮겨 모셨네 이 마을 초가집에.
  • 진사 황명희(黃明凞)의 조상 직장 황호덕(黃浩悳)이 일찍이 강화부의 분교관(分敎官)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병인양요가 일어나 성이 함락되던 날 밤에 대성전으로 들어가 5분의 성인의 위패를 지고 나와 이 마을의 집에 안치했다가 서양인이 물러나자 다시 대성전에 봉안하였다.


산후(山後488)) 488) 길상면 선두리 산후마을 즉, 산뒷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