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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건국 30주년을 맞이하여 제작한 <나타요해>는 중국 사회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며, 왜곡된 권력주의 시대의 종결을 의미한다. 또한 중국 애니메이션의 흥망성쇠는 ‘교육성’과 ‘오락성’ 사이에서 결정지을 것이 아니라, 애니메이션 자체의 미적 표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함을 잘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이후 중국 애니메이션은 애석하게도 <대요천궁>으로부터 <나타요해>까지 지켜왔던 “애니메이션 전(全) 연령화”를 지켜나기지 못하고, 상업에 초점을 맞춘 “애니메이션 저(低)연령화”의 길로 발을 들여놓았다 | 중국의 건국 30주년을 맞이하여 제작한 <나타요해>는 중국 사회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며, 왜곡된 권력주의 시대의 종결을 의미한다. 또한 중국 애니메이션의 흥망성쇠는 ‘교육성’과 ‘오락성’ 사이에서 결정지을 것이 아니라, 애니메이션 자체의 미적 표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함을 잘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이후 중국 애니메이션은 애석하게도 <대요천궁>으로부터 <나타요해>까지 지켜왔던 “애니메이션 전(全) 연령화”를 지켜나기지 못하고, 상업에 초점을 맞춘 “애니메이션 저(低)연령화”의 길로 발을 들여놓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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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8일 (일) 23:27 기준 최신판
기본 정보
* 개봉:중국-1979년, 일본-1980년, 영국-1981년, 한국-1982년, 프랑스-1989년
*감독: 왕쑤천,얜딩샌, 쒸징다
*장르: 애니메이션
*배급사: 상하이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줄거리[1]
<나타요해>에서 나타가 부활하여 용궁에 쳐들어가 용왕을 혼내주는 것으로 각색되었다. 이는 아들이 아버지를 해치는 천륜을 거스르는 이야기 대신, 봉건 통치의 절대적 권위자인 ‘진용천자’를 동해용왕으로 묘사하여 풍자하였다. 이러한 각색들을 통하여 애니메이션 <나타요해>는 원작소설 <봉신연의>의 ‘암흑적 색채’를 성공적으로 벗어버리고, 감동적인 동화 세계를 그려낼 수 있었다.
<나타요해>는 한편으로는 당시 중국의 시대적 배경과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에 맞게 각색을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의 유교사상 중 ‘효’와 ‘혈육의 정’에 대한 전통사상을 그대로 가진 작품이다. ‘나타’는 불교에 나오는 신이지만, 원작소설 <봉신연의>와 애니메이션 <나타요해>는 모두 중국의 작품으로써 중국의 유교사상으로 불교의 신인 ‘나타’를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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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 부활 전의 나타
부활 전의 나타는 붉은색의 배두렁이(肚兜)를 입고 혼천릉(浑天绫)과 건곤권(乾坤圈)을 지닌 모습이었다. 나타는 비록 어리지만 정의감이 남달랐으며 자기보다 약한 자를 돕는 심성 어진 아이였다.
- 부활 후의 나타
부활 후의 나타는 삼두육비(三头六臂)를 익혔는데, 3쌍의 눈으로 위로는 9층의 하늘을, 아래로는 18층의 지옥을 꿰뚫어 보았다. 또한 발에는 풍화륜(風火輪)을 지녀 어디든 날아갈 수 있고, 6개의 손에는 각각 다른 법기들을 다룰 수 있었다. 훗날 옥황상제(玉皇大帝)의 원사(元帅)가 되어 하늘과 지상의 못된 요괴들을 혼내준다.
- 동해용왕
동해의 수정궁(水晶宫)에 살고 있는 동해용왕은 모든 물속의 종족들을 다스리는 우두머리이다. 동해용왕의 자리는 여와(女娲)가 책봉한 것이다. 그는 우뢰와 번개, 비, 해일, 홍수 등을 관장한다.
- 이정
진당관(陈塘关)의 총병(总兵)이며 나타의 아버지이다. 나타가 신비로운 구슬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처음엔 괴물로 여겨 죽이려고 했으나, 남다른 힘을 가진 것을 알고는 엄격히 대했다. 지극히 원칙을 따지는 자라 원칙에 어긋났다는 이유로 아들의 생사마저 방관하는 다소 무정한 사람이다.
- 태을진인
“곤륜 12금신(昆仑十二金仙)” 중 한 명이며, 나타의 스승이다. 그는 연꽃의 힘으로 나타를 부활시켜 삼두육비(三头八臂)를 전수하고, 건곤권(乾坤圈), 혼천릉(浑天绫), 화첨창(火尖枪), 풍화륜(風火輪) 등 수많은 보물들을 준다.
- 삼태자
- 야차
지옥에서 형벌집행을 담당한다. 야차들을 거느리는 귀왕들 셋이 각각의 시왕의 보좌를 한다고 한다. 지옥도에서 죄인을 불가마에 쑤셔넣는 얼굴이 흉물스럽게 찌그러진 괴물들이 야차다. 이런 녀석들은 염마졸 또는 귀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화에 사용된 신화적 요소
애니메이션 <나타요해>는 중국 명나라 신마(神魔)소설(신과 마의 다툼을 다룬 소설)인 <봉신연의(封神演义)> 의 제12화에 나오는 내용을 각색한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소년 나타(哪吒)와 악을 저지르는 동해용왕(东海龙王) 사이의 대결을 다룬 신화이야기로서, 중국 최초의 장편 컬러 시네마스코프 애니메이션이다.
나타의보물
1)혼천릉(混天綾): 나타가 태어날 때부터 허리에 두르고 있던 붉은 비단. 물에 넣고 휘저으면 물을 울리며 진동시키는 능력이 있어 동해에 놀러간 나타는 이것으로 동해용왕 오광의 수정궁을 뒤흔들기도 한다. 적을 둘둘 말아 생포하는 능력도 있다.
2)건곤권(乾坤圈): 권(圈)이란 둥근 고리모양의 무기로 손에 쥐고 타격하는 무기다. 나타의 건곤권은 투척이 가능하며 나타의 의지에 따라 자유자재로 공중을 누빌 수 있다. 나타의 주력무기 중 하나
3)금전(金砖): 기와, 혹은 벽돌 같은 모양을 한 투척무기로 역시 파괴력이 강한 나타의 주력무기
4)화첨창(火尖槍): 자루까지 쇠로 된 창으로 나타의 건원산 창법과 함께 엄청난 위력을 낸다. 끝에서 불을 뿜어낸다는 대목도 나온다.총검임?
5)음양검: 자웅 두 자루의 쌍검으로 정확한 능력은 등장하지 않는다. 삼두팔비로 변한 나타가 드는 무기.
6)구룡신화조(九龙神火罩): 태을진인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병기로 작은 새장의 모습을 하고 있다. 상대를 향해 던지면 거대해져서 상대를 집어삼키며, 이때 주문을 외워 발동시키면 새장 속에서 아홉 마리의 화룡이 나타나 상대를 태워죽이는 능력이 있다. 석기낭랑이 이것에 끔살당했다.
7)풍화륜(風火輪): 밑에서 바람과 불을 일으키는 한 쌍의 바퀴로 나타는 이것을 이동수단으로 삼는다.
나타의 이야기
애니메이션 <나타요해>는 중국 최초의 장편 컬러 시네마스코프 애니메이션으로써 당시 애니메이션의 최고수준을 대표하는 작품이었다. <대요천궁>과 함께 중국 애니메이션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나타요해>에는 <대요천궁>의 주요 제작인원들이 거의 그대로 투입되었다.
삼두육비(三头六臂)의 나타와 사해용왕의 격투 장면 삼두육비(三头六臂)의 나타와 사해용왕의 격투 장면 <대요천궁>에서 손오공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했던 옌딩샨은 <나타요해> 중에서는 캐릭터의 움직임을 맡았다. 경극(京剧)의 전통적인 요소를 가미한 캐릭터들은 그 일거수일투족에 전통의 미가 다분히 묻어나도록 움직임을 연출했다. 특히 결말 부분의 삼두육비(三头六臂: 머리가 셋이고, 팔이 여섯.)로 변신한 나타가 사해용왕과 격투를 펼치는 장면에서는 액션이 매우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움직임의 흐름이 우아하고 매끄러워서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냈다.
불교*신화
중국의 유교(儒教)사상으로 다루어진 불교의 신 “나타” 중국 애니메이션의 쌍벽이라 할 수 있는 <대요천궁(大闹天宫)>과 <나타요해>는 모두 중국 고전문학작품을 각색한 것이다. 그러나 <대요천궁>은 원작에 충실한 반면, <나타요해>는 주제와 착상 자체에 근본적인 변화를 주었다. 스토리의 각본을 맡은 왕왕(王往)은 감독 왕쑤천(王树忱, 왕수침)이 가명을 사용한 것이다.
원작소설 <봉신연의(封神演义)> 중, 나타의 형상은 매우 폭력적이고 오만하다. 나타와 동해용궁이 얽히게 된 발단 또한 우연이었다. 나타가 혼천릉(浑天绫)으로 목욕을 하는 바람에 동해용왕의 수정궁(水晶宫)이 흔들리게 되고, 이에 동해용왕의 부하인 야차가 육지로 조사하러 나오게 되었다. 나타를 만난 야차가 대화로써 이를 말리려 하였으나 충돌이 생기게 되고 나타는 야차를 제거한다. 또한 야차를 찾으러 나온 동해용왕의 삼태자(三太子)까지 말투가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죽이게 된다.
애니메이션 <나타요해>에서의 나타는 남다른 힘을 소유하였으나, 그 힘을 약자를 돕는 데만 쓰는 정의감이 넘치고 심성이 어진 아이이다. 애니메이션 <나타요해>에서의 나타와 동해용궁 사이 모순 또한 동해용왕의 무리한 요구 때문이었다. 용왕은 어린아이들을 제물로 바치지 않으면 비 한 방울도 내려주지 않겠다고 했고, 나타는 사람들을 위하여 불의에 맞서서 싸운다.
이야기의 고조 부분은 신화 <봉신연의> 중에서 ‘효(孝)’를 강조한 내용이었다. 원작 중에서 사해용왕이 나타의 부모를 죽여 나타의 죄를 물으려 할 때, 나타는 당찬 표정으로 나서서 칼로 살과 뼈를 도려내어 부모에게 돌려줌으로써 부모를 연루시키지 말라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용왕은 나타의 효심을 찬양하며 그렇게 하겠노라고 한다. 즉, ‘효’를 위해 자신을 희생함은 신과 인간이 공동으로 승인한 ‘숭고함’인 것으로 ‘용맹함을 찬미’하는 감정을 이끌어낸다.
그러나 애니메이션 <나타요해>에서의 클라이맥스 부분은 ‘부자의 정’과 ‘생사(生死)’가 충돌을 일으키면서 스토리가 비극으로 치닫는다. 사해용왕이 홍수를 일으켜 마을이 큰물에 잠기자 지극히 원칙주의자인 나타의 아버지 – 이정(李靖)은 무정하게도 나타를 포박하고 검으로 겨누었다. 나타는 커다란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아버지를 쳐다보면서 ‘아버지……’ 하고 낮은 소리로 흐느끼듯 부르고 또 불렀다. 바로 이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어린 나타의 비통한 심정과 동화되게 하면서 슬픈 감정을 이끌어낸다.
원작소설 <봉신연의>에서는 이야기의 결말 부분에서 나타가 어머니의 꿈에 나타나 자신이 부활할 수 있도록 사당을 지어 불공을 올려달라고 한다. 그러나 나타의 아버지인 이정에게 발각되고 사당은 아버지의 손에 부서져버렸다. 그 후 연꽃의 힘으로 부활한 나타가 제일 처음 찾아가 복수하려고 한 대상은 자신의 아버지였다.
그러나 이 부분은 애니메이션 <나타요해>에서 나타가 부활하여 용궁에 쳐들어가 용왕을 혼내주는 것으로 각색되었다. 이는 아들이 아버지를 해치는 천륜을 거스르는 이야기 대신, 봉건 통치의 절대적 권위자인 ‘진용천자(真龙天子; 황제를 이르는 말이되, 글자 그대로의 뜻은 ‘용이 될 하늘의 아들’이다.)’를 동해용왕으로 묘사하여 풍자하였다. 이러한 각색들을 통하여 애니메이션 <나타요해>는 원작소설 <봉신연의>의 ‘암흑적 색채’를 성공적으로 벗어버리고, 감동적인 동화 세계를 그려낼 수 있었다.
<나타요해>는 한편으로는 당시 중국의 시대적 배경과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에 맞게 각색을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의 유교(儒教)사상 중 ‘효’와 ‘혈육의 정’에 대한 전통사상을 그대로 가진 작품이다. ‘나타’는 불교에 나오는 신이지만, 원작소설 <봉신연의>와 애니메이션 <나타요해>는 모두 중국의 작품으로써 중국의 유교사상으로 불교의 신인 ‘나타’를 다루었다.
수천 년 동안 중국의 사상을 지배해온 유교는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를 강조하는데, 이는 중국의 사회적 구조에서 ‘부권(父權)’이 절대적 지위임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효도’는 윤리의 기초가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유교사상 중 ‘초아(超我; 나를 뛰어넘다)’의 핵심 내용이 되었다.
이야기의 클라이맥스 부분에는 나타가 ‘초아’의 힘으로 뼈와 살을 발라내어 부모에게 돌려줌으로써 ‘효’를 지키는 내용이 있다. 이는 나타에 대한 유교사상의 압도적 승리라고도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뼈와 살을 아버지에게 돌려줌으로써 아버지의 ‘절대적 권리’가 무너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즉, ‘부권’의 권리가 막강함을 인정하는 반면, 봉건적인 부권에 대한 저항적 심리도 함께 보여준다.
중국의 건국 30주년을 맞이하여 제작한 <나타요해>는 중국 사회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며, 왜곡된 권력주의 시대의 종결을 의미한다. 또한 중국 애니메이션의 흥망성쇠는 ‘교육성’과 ‘오락성’ 사이에서 결정지을 것이 아니라, 애니메이션 자체의 미적 표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함을 잘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이후 중국 애니메이션은 애석하게도 <대요천궁>으로부터 <나타요해>까지 지켜왔던 “애니메이션 전(全) 연령화”를 지켜나기지 못하고, 상업에 초점을 맞춘 “애니메이션 저(低)연령화”의 길로 발을 들여놓았다
참고 사이트
[네이버 영화]
각주
기여
호영 : 최초 작성
노현지: 페이지 오류 수정 및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