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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기 | + | *김동기, “外部空間構成要素로서의 基壇에 관한 硏究”, 목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1. |
− | *서정호 | + | *서정호, “한국 전통 사찰(개심사)”, 건축 권7,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 건축공학과, 1988. |
− | *진승우 | + | *진승우, “開心寺建築에 나타나는 象徵性과 位階性에 觀한 硏究”, 건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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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15일 (금) 23:23 판
서산 개심사(瑞山 開心寺)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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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 번호 | |
지정일 | |
지정 명칭 | 서산 개심사(瑞山 開心寺) |
한자 명칭 | |
영문 명칭 | |
분류 | |
건립·제작 | |
주소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안길 79 수덕사 |
위도 | 36.7464922 |
경도 | 126.5901204 |
웹사이트 |
목차
개관
충남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상왕산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말사이다. 충남 4대 사찰 중 하나이며, 사적기에 따르면, 651년(의자왕 11) 혜감국사(慧鑑國師)가 창건하고 개원사(開元寺)라 하던 것을 1350년 처능(處能)이 중창하며 개심사로 고쳤다. 그 후 1475년(조선 성종 6) 중창하였으며 1955년 전면 보수하였다. 보물 제143호인 대웅전, 보물 1619호인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보물 1765호 시직사자도, 보물 1766호 제석·범천도 및 팔금강·사위보살도가 있으며 충남문화재자료 제194호인 명부전(冥府殿) 및 심검당(尋劍堂) 등이 있으며, 이 밖의 문화재로는 대웅전 앞의 오층석탑과 청동 향로가 있다. 이 절에서 개판된 장경으로는 1580년(선조 13) 개판된 『도가논변모자리혹론(道家論辨牟子理惑論)』과 1584년에 개판된 『몽산화상육도보설(蒙山和尙六道普說)』·『법화경』 등이 있다.
사찰 특색
지형
사찰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가야산 원효봉과 일락산, 상왕산 등의 장벽을 이루고 산중턱의 계류를 낀 아담한 곳이다. 가야산 줄기의 상왕산(象王山) 기슭에 자리잡은 고찰로 김동기(2000)에 따르면 급한 구릉에 자리잡고 있는 까닭에 넓은 대지를 확보하기 어려워 대지의 깊이에 비해 좌우의 폭이 넓은 형상이라고 한다.
또 서정호(1988)에서는 위의 상왕산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산이 코끼리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고 하며, 이 코끼리는 개심사 소개문에 따르면 부처님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코끼리의 갈증을 풀어주기 위하여 연못을 만들었다고 한다.
건축
대웅보전
해당 사찰의 대웅보전은 조선 초기의 건물로 1963년에 보물 제143호로 지정되었다. 고려말 맞배지붕양식에서 조선시대의 화려한 팔작지붕양식으로 넘어오는 시기에 지어진 건물로 서정호(1988)에 따르면 다포계 건축양식과 주심포 계통 양식이 절충된 형식을 지녔다고 한다. 내부에는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있다.
심검당
심검상은 조선 초기 요사채[1]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다. 단청을 전혀쓰지 않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또, 1962년 해체 수리 시 발견된 상량문에 따르면, 영조 시기까지 6번을 중창했다고 한다.
명부전
명부전은 조선 중기에 건립된 건축으로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 194호이다.
무량수각 동편에 위치하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측면에 풍판(風板: 비바람을 막기 위해 연이어 대는 널빤지)이 있는 조선 초기의 건물이다. 명부전 내부에는 철불지장보살좌상과 시왕상(十王像)이 봉안되어 있는데, 기도의 영험이 신통하다 하여 참배객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팔상전은 명부전 북쪽에 위치하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 건물로 문수보살상을 봉안하고 있다.[2]
개심사 내 보물
목조아미타여래좌상(보물 제1619호)
이 아미타불상은 최근(2004년) 발견된 복장물 <아미타불상중수 봉함판>의 수보묵서명(修補墨書銘)에 의해 고려 충렬왕 6년(1280) 불사를 위해 특별히 설립된 승재색(僧齋色)의 주관 하에 내시 시흥위위(內侍試興威衛)의 장사(長史) 송(宋)씨가 보수를 담당한 것임이 밝혀졌다. 아미타불상 중수는 현재까지 발견된 승재색의 불사활동 관련 자료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다.[3]
오방오제위도 및 사직사자도(보물 제1765호)
개심사 오방오제위도와 사직사자도는 1676년에 화승 일호(一浩)가 단독으로 그린 것으로, 사찰에서 의식을 행할 때 도량장엄용으로 조성한 불화이다. 현존하는 도량장엄용 불화 가운데에서 조성연대가 가장 올라가는 작품으로 가치가 높다.
형태는 축(軸)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5폭의 오제위도 중 중방, 동방, 남방지군도는 중앙부가 비단이고 그 양쪽에는 마를 덧대어 화폭을 마련하였다. 전체적으로 채색이 엷은 편으로, 묘선이 활달하며 상호나 상의 비례 등이 안정감 있게 표현되었다.[4]
제석·범천도 및 팔금강·사위보살도(보물 제1766호)
개심사 제석·범천도 및 팔금강·사위보살도 불화는 1772년에 제작된 도량장엄용 의식불화로 제석천도, 범천도, 사보살도, 팔금강도로 구성되어 있다.
괘불도와 도량옹호번이 함께 남아 있는 드문 사례에 해당하기 때문에, 야외 의식불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5]
영산회괘불탱 (보물 제1264호)
석가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영산회괘불탱으로,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 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이다.
조선 영조 48년(1772)에 그려진 이 그림은 임금과 왕비, 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해 그려진 것이다. 주로 붉은색과 녹색을 사용하였고 아름답고 복잡한 문양에서 매우 화려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비현실적인 신체비례와 복잡한 문양에서 18세기 후기의 특징을 살필 수 있는 작품이다[6]
사진 및 도면
사진
도면
관련 사이트
참고문헌
- 최선호, 『한국의 미산책』, 해냄, 2007.
- 김동기, “外部空間構成要素로서의 基壇에 관한 硏究”, 목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1.
- 서정호, “한국 전통 사찰(개심사)”, 건축 권7,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 건축공학과, 1988.
- 진승우, “開心寺建築에 나타나는 象徵性과 位階性에 觀한 硏究”, 건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
답사 후기
- 답사 중/후에 느낀 것. 보완되어야 할 부분이 있으면 적어주세요!
출처
- ↑ 절에 있는 승려들이 거처하는 집.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요사 [寮舍]
-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심사 [開心寺]
- ↑ 출처: [문화재청] 서산 개심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瑞山 開心寺 木造阿彌陀如來坐像] (문화재청, 문화재검색)
- ↑ 출처: [문화재청] 서산 개심사 오방오제위도 및 사직사자도 [瑞山 開心寺 五方五帝位圖 및 四直使者圖] (문화재청, 문화재검색)
- ↑ 출처: [문화재청] 서산 개심사 제석·범천도 및 팔금강·사위보살도 [瑞山 開心寺 帝釋·梵天圖 및 八金剛·四位菩薩圖] (문화재청, 문화재검색)
- ↑ 출처: [문화재청] 개심사영산회괘불탱 [開心寺靈山會掛佛幀] (문화재청, 문화재검색)
- ↑ 한국의 미산책
- ↑ 문화재청 서산 개심사 대웅전
- ↑ 개심사 홈페이지
- ↑ 문화재청 서산 개심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 ↑ 문화재청 시직사자도
- ↑ 서산 개심사 제석·범천도 및 팔금강·사위보살도 - 범천도
- ↑ 문화재청 개심사영산회괘불탱 전체
기여
역할 | 이름 | 전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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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 박철민 | 고문헌관리학 |
편집 | 서소리 | 인문정보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