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의 두 판 사이의 차이

DH 교육용 위키
이동: 둘러보기, 검색
(새 문서: {{유교}} '''성리학'''(性理學, {{llang|en|Cheng-Zhu School}})은 12세기에 남송주희(朱熹)가 집대성한 유교의 주류 학파이다. 성리학의...)
 
잔글 (판 1개)
 
(한 명의 사용자에 의한 4개의 중간 편집이 숨겨짐)
1번째 줄: 1번째 줄:
{{유교}}
+
==성리학==
 +
[[유교]]에 철학적 세계관을 부여하고 [[유교]]를 심성 수양의 도리로 확립한 새로운 학풍.
  
'''성리학'''(性理學, {{llang|en|Cheng-Zhu School}})은 12세기에 [[남송]][[주희]](朱熹)가 집대성한 [[유교]]의 주류 학파이다. 성리학의 어원은 [[주희]]가 주창한 성즉리(性卽理)를 축약한 명칭이다.
+
===정의===
 +
중국에서는 이미 당대부터 종래의 훈고학(訓詁學)과는 다른 [[유교]]학풍을 세우려는 노력이 있었으며, 그 노력은 북송대에 이르러 성리학이라는 사상체계와 학문방법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후 남송의 [[주희]](朱熹 : 1130~1200)에 의해 성리학의 집대성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성리학을 주자학(朱子學)이라 부르기도 한다. 명대의 왕수인(王守仁 : 1472~1528)의 학문·사상, 즉 [[양명학]]까지 성리학에 포함시킬 수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주자학]]만을 성리학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송대 성리학의 성립에는 [[불교]] 철학이 많은 영향을 미쳤으나, 성리학의 세계관과 [[불교]]의 세계관은 근본적인 성격이 달랐다. [[불교]]의 세계관에서 현실의 자연과 사회는 궁극적으로 부정되어야 할 가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나 성리학의 세계관은 자연과 사회를 도덕적인 본성을 갖는 것으로 인식하고 그 속에 존재하는 사물들의 개별성을 긍정했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주자]](주희)의 이름을 따서 '''주자학'''(朱子學)이라고도 하고, [[송나라]] 시대의 유학이라는 뜻에서 '''송학'''(宋學)이라고도 하며, 송나라 시대 이전의 유학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새로운 기풍의 유학이라는 뜻에서 '''신유학'''(新儒學)이라고도 한다. [[정호]](程顥)와 [[정이 (학자)|정이]](程頥)에서 주희(朱熹)로 이어지는 학통이라는 뜻에서 '''정주학'''(程朱學), '''정주 성리학'''(程朱性理學), 또는 '''정주 이학'''(程朱理學)으로도 불린다. '''이학'''(理學) 또는 '''도학'''(道學)이라고도 한다.
+
===내용===
 +
[[주희]]에 의해 집대성된 성리학은 자연과 사회의 발생·운동을 이()와 기()의 개념에 의해 설명한다. 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것에 의해 우주 만물이 생성되며, 그런 점에서 기는 만물을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그런데 기는 맑음과 흐림, 무거움과 가벼움 등에 따른 차이가 있으며, 따라서 기에 의해 구성되는 우주 만물은 차별성·등급성을 갖는다. 결국 자연·인간·사회가 모두 위계적 질서를 갖는 것이다. 한편 태극(太極), 즉 천리(天理)·이의 개념은 만물 생성의 근원이 되는 정신적 실재로서 기의 존재 근거이며, 동시에 만물에 내재하는 원리로서 기의 운동법칙이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만물의 존재 근거가 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만물에는 모두 이가 내재한다는 점에서 이의 개념은 인간과 사물의 원리적 보편성을 설명하는 범주이다. 이기론에 바탕을 둔 인간 이해는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의 개념을 중심으로 하는 인성론으로 체계화되었다. 본연지성은 모든 인간의 마음 속에 본래 존재하고 있는 이로서, 도덕적 본성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기질지성은 인간 형성에 관여하는 기에 의해 형성되는 것으로 육체와 감각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인간 본능을 의미한다. 이 가운데 본연지성에 따른 행위는 선한 것이며, 기질지성에 따른 행위는 인욕에 의해 악으로 흐르는 경향을 갖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인욕을 없애고 천리를 보존하는 도덕 실천을 통해 본연지성에 따르는 생활방식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활방식을 가지기 위해서 사물에 존재하는 천리를 인식하는 궁리(窮理)와 인욕의 발동을 억제하는 내면적 수양으로서의 거경(居敬)이라는 수양 방법이 제시되었다 (→ 색인 : 거경궁리). 그런데 성리학에서 강조하는 이의 구체적 내용은 삼강오상을 비롯한 [[유교]]적 윤리도덕이었으며, 나아가 [[관료제]]적 통치질서, 신분계급적 사회질서, 가부장제적·종법제적 가족질서를 포함하는 명분론적 질서였다. 따라서 성리학은 이의 보편성을 통해 [[유교]]적 윤리도덕과 명분론적 질서의 보편성을 교설하며, 인간은 명분론적 질서 속에서 각각의 계층적 지위에 합당한 일을 성실하게 수행해야 하는 존재로 설명했다. 결국 성리학은 명분론적 질서를 합리화하는 사상체계였으며, 명분론적 질서에 맞는 생활을 하는 것이 모든 인간의 도덕적 의무라고 했다.
  
학문의 목적은 위기지학(爲己之學, 자기(수양, 수기)를 위한 학문)이다.
+
===참고 문헌===
 
+
*한국유학의 철학적 전개 : 배종호, 원광대학교 출판부, 1989
== 주자 이전 ==
+
*퇴계의 연거와 사상형성 : 권오봉, 포항공과대학, 1989
대략 진종조(眞宗朝)로부터 인종조(仁宗朝, 998~1063)에 걸친 시기에 송나라의 학문 문화가 새로운 경향을 가지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범중엄]](范仲淹)이나 정학(正學)의 4선생으로 호칭된 [[호원]](胡瑗), [[손복]](孫復), [[석개]](石介), [[진양]](陳襄) 등은 각기 특색있는 학풍이나 주장을 가지고 서로 잇따라 나와 성리학의 선하(先河)를 이루었다.
+
*한국유학연구 : 유명종, 이문출판사, 1988
 
+
*한국유학사 : 이병도, 아세아문화사, 1987
범중엄은 그 명절(名節)과 고매한 식견으로 시대의 선구자로서 계몽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특히 [[서하]](西夏) 경영에 정치적 수완을 보여 중앙정부의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였다. 학문적으로는 [[사서오경|6경]](六經)에 통하였으며 더욱이 [[역경|역]](易)에 정통하였고 [[장재|장횡거]](張橫渠)에게 《[[중용]]》을 주어 유학의 문에 들어가게 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
*조선후기성리학 : 유명종, 이문사, 1985
 
+
*한국사상대계-성리학사상편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편·발행, 1984
호원(胡瑗, 993-1059)은 안정 선생(安定 先生)이라고 호칭되며 교육가로서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는데, 정이천(程伊川)도 그 문하에서 배운 준재(俊才)이다. 그의 <주역구의(周易口義)>는 역(易)을 이론적으로 해명하고 한대 유가(儒家)와 같이 상수론(象數論)을 혼합하지 않았다. 이천(伊川)의 역전(易傳)에 그 영향이 보인다.
+
*한국유학논구 : 윤사순, 현암사, 1980
 
+
*퇴계철학의 연구 : 윤사순, 고려대학교 출판부, 1980
손복(孫復, 992-1057)은 태산선생(泰山先生)으로 호칭되었다. 진사 시험에 합격하지 못해 태산(泰山)에 은퇴하여 강학(講學)에 힘을 쏟았으며 <춘추존왕발미(春秋尊王發微)>를 저술하였다. 그는 이 저술에서 종래의 주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스러운 자기의 해석을 전개하고 있지만 그중에도 다시 <춘추(春秋)>의 본지(本旨)를 정명정분(正名定分)에 있다고 하고 또 <춘추>에 실린 사실을 전부 도의에 위배된 것뿐이라고 하였다. 손복 및 그 제자인 석개(石介, 1005-1045)는 춘추론을 통하여 중국(宋王朝)의 정통성과 고전사상의 정통적 부활 및 양(楊)·묵(墨)·불(佛)·노(老) 사상의 배격을 주장하여 송조 국가체제의 정신적 지주를 수립하려고 하였다.
+
*조선조유학사상연구 : 김길환, 일지사, 1980
 
+
*정도전사상의 연구 : 한영우, 서울대학교 출판부, 1973
진양(陳襄, 1017-1080))은 <대학(大學)> <중용(中庸)>에 의거 실천도덕론을 전개하여 <성명기(誠明記)>와 함께 송대 도덕의 궁리진성(窮理盡性)·격물치지설(格物致知說)의 방향을 잡아 놓았다. 그의 지방정치에 있어서의 권농정책(勸農政策)이나 향촌민(鄕村民)의 교도에 이용한 <고령선생권유문(古靈先生勸誘文)>은 남송(南宋)의 주자(朱子)에 이르러서 크게 채택되어 그 모범이 되었다.<ref>{{글로벌세계대백과2 |제목=동양사상 - 동양의 사상 - 중국의 사상 - 송·명의 사상 - 송학의 발흥}}</ref>
+
*율곡의 생애와 사상 : 이병도, 서문당, 1973
 
+
*조선유학사 : 현상윤, 민중서관, 1949
== 주자의 집대성 ==
+
*고려 성리학 수용의 사상적 배경 : 이원명, 건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2
[[주자]](朱子)의 학문은 [[북송]](北宋)에서 일어난 신경향의 학술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여 이것을 절충하고 또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것이다. 또 4서<ref>《[[대학 (책)|대학]]》·《[[중용]]》·《[[논어]]》·《[[맹자 (책)|맹자]]》</ref> 를 특별히 중요시하여 주석을 하였고, 《대학》의 〈성의〉(誠意)장의 주해는 죽기 3일 전까지 계속해서 수정했다.<ref name="글로벌_2"/>
+
*성리학의 수용과 의의 〈한국사론〉 18 : 배종호, 국사편찬위원회, 1988
 
+
*성리학 〈한국사연구입문〉 : 김태영, 지식산업사, 1987(2판)
=== 이기론(理氣論) ===
+
*퇴율이전 조선성리학의 문제발전 〈동방학지〉 42 : 류인희,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1984
{{참고|이기론}}
+
*성리학 〈한국학연구입문〉 : 윤사순, 지식산업사, 1981
이기론에서는 [[정이천]](程伊川)의 2원론(二元論)을 계승하여 다시 더욱 상세·엄밀하게 체계화하였다. 형이상적(形而上的), 형이하적(形而下的) 논리 구별을 분명하게 하였다. 또 [[주돈이]]의 태극론(太極論)도 받아서 태극(太極)은 오직 1개의 이(理)의 자(字)라고 규정하여, ‘이(理)=태극(太極)=도(道, 형이상)’와 ‘기(氣)=음양5행(陰陽五行, 형이하)’인 것은 형이하(形而下)의 음양2기(陰陽二氣)의 교감에 의해 생성되는 개체와 상즉불리(相卽不離)인 것이라고 말하였다.<ref name="글로벌_2"/>
+
*16세기 사림파의 성리학 이해 〈한국사론〉 7 : 김항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1981
 
+
*조선성리학의 재평가 〈창작과 비평〉 33 : 이태진, 창작과 비평사, 1974
=== 도덕론(道德論) ===
+
도덕론에서 이천이 명(命)·성(性)·이(理)·[[마음|심]](心)을 동일하게 보았기 때문에 ‘성즉리(性卽理)’, ‘심즉리(心卽理)’라고 한 데 대하여, 주자는 ‘성즉리(性卽理)’만을 취하고 심(心)은 형이하적(形而下的)인 것, 즉 음양2기(陰陽二氣)의 작용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사람의 성(性)은 이(理)이고 지선(至善)한 것이며 사람의 본연의 것이라고 하였다. 심(心)은 이(理)가 있는 곳, 이가 작용하는 장소이다. 또한 심(心)의 발동은 이(理)에 의하여 있게 되는데, 그 이야말로 사람에게 본래의 성(性)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사람의 본연의 성(性)이 지선(至善)하지만 현실에는 악도 존재하고 악인도 있다. 그것은 기품<ref>사람도 기(氣)의 집합에 의하여 이루어져 있고, 그 기가 모이는 방법, 기를 받는 방식은 개별적인 것이라고 주자는 생각하였다.</ref> 에 과불급(過不及)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理)=태극(太極)’이라고 하는 형이상적인 것은 항상 사사물물(事事物物) 속에 있다. 사사물물이 없으면 따라서 이(理)는 없다. 즉 1물(一物)에 ‘1리(一理)=1태극(一太極)’이 있는 것이다. 논리적 과정을 말하면 이(理)가 있어야 물(物)이 있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물(物)이 없는 이(理)는 없다. 이런 까닭으로 이기(理氣)에 선후는 없다고 한다. 또 주자에 의하면 1물(一物)에 1태극(一太極)이 있는데, 이 이(理)는 즉 만물의 이(理)이다. [[달]]이 [[호수]]나 냇물에 비쳐도 달은 원래 하나의 것이다. 일반자(一般者)·형이상자(形而上者)는 항상 개체에 내재하여 개체를 통하여 일반자(一般者)는 실현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가 도덕론에 적용되면 사람은 자기의 본연의 성(性)(理)을 회복하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덕]]을 완성하는 것이며, 개별적 인간은 실천에 의하여서만 일반자(一般者)로서의 ‘도(道)~이(理)-성(性)’을 구현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ref name="글로벌_2"/>
+
 
+
=== 수양론(修養論) ===
+
수양론은 우선 격물치지(格物致知)이며 궁리진성(窮理盡性)인 것이다. 주자에 의하면 사사물물의 이를 궁구한다고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는 나를 궁구하는 것이며 나를 다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물(物)의 이(理)’와 ‘심(心)의 이(理)’와의 통일적인 파악에는 아직 불충분한 점이 있었다. [[육구연|육상산]](陸象山)이나 명(明)의 [[왕수인|왕양명]](王陽明)이 그 정곡을 찔러 비판했다.<ref name="글로벌_2"/>
+
 
+
== 후대에 미친 영향 ==
+
주자사상(朱子思想)이 송대 이후 끼친 영향은 지극히 크다. 주자학은 주자의 생전에 있어 지방관적, 재야적(在野的) 입장에서의 사상을 구축했음에도 불구하고 원(元)·명(明)을 거쳐 청조에 이르기까지 관학적(官學的)인 아카데미즘의 주류를 형성하였다. 뿐만 아니라 주자학은 조선이나 일본(日本)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
 
+
=== 한국의 성리학 수용 ===
+
{{참고|한국의 유교}}
+
한국에서는 고려시대에 [[안향]](安向)이 《[[주자전서]]》를 들여와 연구한 데서 비롯되었으며,성리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체계를 파악해 크게 일가를 이룬 이는 [[백이정]](白頤正)이라 할 수 있다.
+
조선시대에 이르러 이언적·이황·이이·기대승·김장생 등 뛰어난 학자들이 배출되면서,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여 정신적인 면과 도덕적인 면을 중시하는 [[주리설]]과 인간의 감성을 중시하고 현실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주기설]] 등이 나오게 되었다. 주리설은 영남지방에서 발전하여 '영남학파'라고 하는데, [[이언적]]·[[이황]]·[[류성룡]]·[[김성일]]로 이어졌으며, 주기설은 기호지방에서 발전하여 '기호학파'라고 하는데 [[서경덕]]·[[기대승]]·[[성혼]]·[[이이]]에 이르러 완성되었고, [[김장생]] 등에게 이어졌다.<ref name="글로벌_3">{{글로벌세계대백과2
+
|제목=시사 - 현대사회와 시사 - 사회·환경·학술·문화 - 학술·문화 - 성리학}}</ref>
+
 
+
== 주요 성리학자 ==
+
;중국
+
* [[주돈이]]
+
* [[정호]]
+
* [[정이 (학자)|정이]]
+
* [[주희]]
+
;한국
+
{{Col-begin}}
+
{{Col-3}}
+
* [[안향]]
+
* [[이색]]
+
* [[정도전]]
+
* [[김종직]]
+
* [[서경덕]]
+
* [[조식 (1501년)|조식]]
+
{{Col-3}}
+
* [[이황]]
+
* [[기대승]]
+
* [[이이]]
+
* [[성혼]]
+
* [[강항]]
+
* [[송시열]]
+
{{Col-3}}
+
* [[박세당]]
+
* [[박세채]]
+
* [[백이정]]
+
* [[이항로]]
+
* [[기정진]]
+
* [[노수신]]
+
{{Col-end}}
+
 
+
; 여성 학자
+
* [[임윤지당]]
+
 
+
== 함께 보기 ==
+
* [[태극도설]]
+
* [[이기론]]
+
* [[유교]]
+
* [[한국의 유교]]
+
* [[송·명 시대의 사상]]
+
* [[양명학]]
+
* [[선종]]
+
 
+
== 각주 ==
+
{{각주}}
+
 
+
== 참고 문헌 ==
+
* {{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분류=유교}}
+
 
+
{{제자백가 둘러보기}}
+
{{철학}}
+
 
+
[[분류:성리학| ]]
+
[[분류:중국 철학]]
+
[[분류:한국 철학]]
+
[[분류:베트남 철학]]
+
[[분류:일본 철학]]
+

2017년 3월 5일 (일) 08:32 기준 최신판

성리학

유교에 철학적 세계관을 부여하고 유교를 심성 수양의 도리로 확립한 새로운 학풍.

정의

중국에서는 이미 당대부터 종래의 훈고학(訓詁學)과는 다른 유교학풍을 세우려는 노력이 있었으며, 그 노력은 북송대에 이르러 성리학이라는 사상체계와 학문방법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후 남송의 주희(朱熹 : 1130~1200)에 의해 성리학의 집대성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성리학을 주자학(朱子學)이라 부르기도 한다. 명대의 왕수인(王守仁 : 1472~1528)의 학문·사상, 즉 양명학까지 성리학에 포함시킬 수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주자학만을 성리학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송대 성리학의 성립에는 불교 철학이 많은 영향을 미쳤으나, 성리학의 세계관과 불교의 세계관은 근본적인 성격이 달랐다. 불교의 세계관에서 현실의 자연과 사회는 궁극적으로 부정되어야 할 가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나 성리학의 세계관은 자연과 사회를 도덕적인 본성을 갖는 것으로 인식하고 그 속에 존재하는 사물들의 개별성을 긍정했다.

내용

주희에 의해 집대성된 성리학은 자연과 사회의 발생·운동을 이(理)와 기(氣)의 개념에 의해 설명한다. 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것에 의해 우주 만물이 생성되며, 그런 점에서 기는 만물을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그런데 기는 맑음과 흐림, 무거움과 가벼움 등에 따른 차이가 있으며, 따라서 기에 의해 구성되는 우주 만물은 차별성·등급성을 갖는다. 결국 자연·인간·사회가 모두 위계적 질서를 갖는 것이다. 한편 태극(太極), 즉 천리(天理)·이의 개념은 만물 생성의 근원이 되는 정신적 실재로서 기의 존재 근거이며, 동시에 만물에 내재하는 원리로서 기의 운동법칙이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만물의 존재 근거가 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만물에는 모두 이가 내재한다는 점에서 이의 개념은 인간과 사물의 원리적 보편성을 설명하는 범주이다. 이기론에 바탕을 둔 인간 이해는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의 개념을 중심으로 하는 인성론으로 체계화되었다. 본연지성은 모든 인간의 마음 속에 본래 존재하고 있는 이로서, 도덕적 본성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기질지성은 인간 형성에 관여하는 기에 의해 형성되는 것으로 육체와 감각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인간 본능을 의미한다. 이 가운데 본연지성에 따른 행위는 선한 것이며, 기질지성에 따른 행위는 인욕에 의해 악으로 흐르는 경향을 갖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인욕을 없애고 천리를 보존하는 도덕 실천을 통해 본연지성에 따르는 생활방식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활방식을 가지기 위해서 사물에 존재하는 천리를 인식하는 궁리(窮理)와 인욕의 발동을 억제하는 내면적 수양으로서의 거경(居敬)이라는 수양 방법이 제시되었다 (→ 색인 : 거경궁리). 그런데 성리학에서 강조하는 이의 구체적 내용은 삼강오상을 비롯한 유교적 윤리도덕이었으며, 나아가 관료제적 통치질서, 신분계급적 사회질서, 가부장제적·종법제적 가족질서를 포함하는 명분론적 질서였다. 따라서 성리학은 이의 보편성을 통해 유교적 윤리도덕과 명분론적 질서의 보편성을 교설하며, 인간은 명분론적 질서 속에서 각각의 계층적 지위에 합당한 일을 성실하게 수행해야 하는 존재로 설명했다. 결국 성리학은 명분론적 질서를 합리화하는 사상체계였으며, 명분론적 질서에 맞는 생활을 하는 것이 모든 인간의 도덕적 의무라고 했다.

참고 문헌

  • 한국유학의 철학적 전개 : 배종호, 원광대학교 출판부, 1989
  • 퇴계의 연거와 사상형성 : 권오봉, 포항공과대학, 1989
  • 한국유학연구 : 유명종, 이문출판사, 1988
  • 한국유학사 : 이병도, 아세아문화사, 1987
  • 조선후기성리학 : 유명종, 이문사, 1985
  • 한국사상대계-성리학사상편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편·발행, 1984
  • 한국유학논구 : 윤사순, 현암사, 1980
  • 퇴계철학의 연구 : 윤사순, 고려대학교 출판부, 1980
  • 조선조유학사상연구 : 김길환, 일지사, 1980
  • 정도전사상의 연구 : 한영우, 서울대학교 출판부, 1973
  • 율곡의 생애와 사상 : 이병도, 서문당, 1973
  • 조선유학사 : 현상윤, 민중서관, 1949
  • 고려 성리학 수용의 사상적 배경 : 이원명, 건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2
  • 성리학의 수용과 그 의의 〈한국사론〉 18 : 배종호, 국사편찬위원회, 1988
  • 성리학 〈한국사연구입문〉 : 김태영, 지식산업사, 1987(2판)
  • 퇴율이전 조선성리학의 문제발전 〈동방학지〉 42 : 류인희,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1984
  • 성리학 〈한국학연구입문〉 : 윤사순, 지식산업사, 1981
  • 16세기 사림파의 성리학 이해 〈한국사론〉 7 : 김항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1981
  • 조선성리학의 재평가 〈창작과 비평〉 33 : 이태진, 창작과 비평사, 1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