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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5일 (일) 08:13 기준 최신판

민씨할머니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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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김온의 부인 여흥민씨는 울산김씨 집안을 중흥시킨 사람으로 '민씨 할머니'라 불린다. 울산김씨 집안 출신의 인물들로 김인후(민씨 할머니의 둘째 아들 김달원의 현손),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2대 대통령 김성수 선생이 있다.울산김씨 집안은 명당을 찾아 조상을 모시는 일에 정성을 다했으며 이런 풍수가풍은 민씨 할머니로부터 미롯된 것이라고 보아 민씨할머니 묘소가 장성의 필암서원, 남원의 노봉서원, 옥과의 영귀서원 등에 모셔져있다.

내용

울산김씨의 중시조비 여흥민씨(麗興閔氏)의 묘소는 풍수지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물론, 풍수지리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복부혈의 명당 터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 여흥민씨(1350-1421)는 아호(雅號)가 하소부인(荷沼夫人)으로 한성판윤 량(亮)의 따님이며 태종비 원경왕후 민비와 사촌이다. 그녀는 울산김씨 시조 김덕지(金德摯: 신라 경순왕의 둘째왕자)의 17세손인 김온(金穩)과 혼인하여 달근, 달원, 달지 3형제를 두었는데 둘째아들인 달원의 현손이 바로 신라, 고려, 조선조에 걸쳐 공자를 모신 문묘(文廟)에 배향된 18명의 인물 중 한명인 하서(河西) 김인후(金?厚) 선생(1510-1560)이다. 이들 해동18현 중 호남출신은 유일하게 하서선생뿐으로 바로 장성 출신이다.

이야기

울산김씨 문중에서는 울산김씨가 하서선생 및 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하서선생을 배출한 장성뿐 아니라 호남의 명문가로 자리 잡게 된 배경에는 하서선생의 5대조 할머니인 하소부인이 영세흥왕(永世興旺)의 터에 묻힌 때문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런데 이 터를 하소부인 자신이 직접 신후지지로 잡았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이 죽으면 이 터에 묻어줄 것을 유언하며 “내가 이 터에 묻히면 말을 탄 자손이 밀등에 가득할 것이며 현인이 나면 필시 필암은 서원 터가 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하서산생을 비롯하여 수많은 인재가 배출되어 울산김씨는 명문가가 되었고 필암서원이 세워졌으니 그녀의 예언은 무섭도록 적중한 셈이다. 그녀가 이처럼 정확한 예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풍수지리에 해박한 지식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녀의 해박한 풍수지식은 한양의 궁성 터를 잡고 축조에 참여한 무학대사가 업무상 자주 한성판윤댁을 드나들었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무학대사로부터 풍수지리서나 교육 등을 통하여 풍수이론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녀의 풍수이론을 정립한 <<하소결(荷沼訣)>>은 울산김씨의 문화유산으로 지금도 전해오고 있다고 한다.

또한 울산김씨가 장성에 세거하게 된 것도 하소부인이 황룡면 맥동에 처음 터를 잡아 정착하면서부터라고 한다. 한양에서 살던 하소부인이 이곳 장성까지 와서 정착하게 된 연유는 태종이 왕권강화를 위해 외척을 배척할 때 사촌오빠인 민무구, 민무질 형제의 옥사에 양주목사로 재직하던 남편이 함께 연루되어 사약을 받는 화를 입게 되자 멸문지화를 피하려 세 아들을 데리고 南으로 南으로 내려오다 보니 이곳 장성까지 내려오게 되었다고 한다. 장성의 여러 곳 중 하필 맥동에다 삶터를 정한 것은 어느 산마루에서 나무로 깎아 만든 매(罵)를 날렸더니 내려앉은 곳이 바로 맥동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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