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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7일 (화) 07:30 기준 최신판
{{기록물정보 |대표명칭= 고종윤음 |DB유형 = 목판본 |한글표기 = 고종윤음 |한자표기 = 高宗綸音 |시대 = 고종 3년 (1881) |분야 = 종교, 천주교 |제작시기 = 1881년 |제작자 = 고종 |image = }}
고종이 대소 관료와 서울과 지방의 백성들에게 내린 척사윤음으로 한문본과 언해본이 실려 있다.
천주교에 대한 척사로 발생한 사옥邪獄은 1801년 순조1 신유사옥을 기화로 헌종대 기해사옥, 병오사옥 그리고 고종 대 병인사옥이 대표적이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병인사옥이었다. 1866년 고종3 에 시작된 병인사옥은 다른 사옥과는 달리 6년 동안 지속되어 약 8,000명의 천주교인이 순교하였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등 열강의 침입을 경험하면서, 흥선대원군은 서구 열강에 대한 국가적 위기의식과 정치적 반대세력의 비난을 피하기 위하여 천주교인에 대한 박해를 지속하였다.1881년 고종이 내린 윤음은 사실상 마지막 척사윤음이었다. 이 윤음의 내용은 천주교 교리를 반박하고, 백성들에게 천주교에 현혹되지 말라는 취지의 다른 윤음과는 성격이 다르다. 고종은 정조 이후로 천주교인을 여러 번 징계했으나, 소멸되지 않았다고 전제하였다. 이어 천주교인이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을 설명하고, 유학 사상을 실생활에서 실천함으로써 순박한 풍속을 회복하고 사당私黨인 천주교인들을 소멸시키자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