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 세계 순회공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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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LILLUSTRE FRANCAIS.1939.1.25_2 - 복사본.JPG|300px|center|섬네일|《Dame de cour de Shiragi(옥적의 곡(신라 궁녀)》(L'illustre Francais 1939.1)]]
  
 
중일전쟁(中日戰爭) 시기 [[파나이호 사건]](USS Panay incident,1937.12.12)을 계기로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磨) 내각에 의해 추진된 조선 무용가 [[최승희]](崔承喜,1912~?)의 세계 순회공연(1938~1940).
 
중일전쟁(中日戰爭) 시기 [[파나이호 사건]](USS Panay incident,1937.12.12)을 계기로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磨) 내각에 의해 추진된 조선 무용가 [[최승희]](崔承喜,1912~?)의 세계 순회공연(1938~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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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의 세계 순회공연에는《검무》·《고구려의 수인》·《신로심불로》·《봉산탈춤》·《천하대장군》·《초립동》·《활량 춤》과 같이 선이 굵은 남성 무용이 비중 있게 편성되었다. 이는 최승희가 주창한 남의 힘에 강요되지 않는 ‘박력이 있는’ 조선무용을 표상화한 것이었다. 또한 최승희의 조선무용은 승전국 ‘신라’라는 역사적 소재를 통해 조선의 자주성을 표출한 것으로 비춰지는데, 이는 ‘신라’ 소재의 《검무》·《보현보살》·《옥적의 곡(신라 궁녀의 춤)》이 프로그램에 비중 있게 편성된 것에서 확인되고 있다. 특히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한 신라 화랑의 무용인 《검무》는 세계 순회공연에서 주로 무대 마지막 순서에 올려지며 비평가들에게 가장 강한 인상을 남겼다. [[최승희의 검무]]와 [[최승희의 봉산탈춤]]은 미국·유럽 순회에서 비평가들로부터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최승희의 보살춤]]은 중남미에서 많은 인기를 받아 《보현보살(Bodhisattva“Hugen”)》, 《관음보살(Bodhisatta“Kwannon”)》의 2가지 버전이 발표되었다.  
 
최승희의 세계 순회공연에는《검무》·《고구려의 수인》·《신로심불로》·《봉산탈춤》·《천하대장군》·《초립동》·《활량 춤》과 같이 선이 굵은 남성 무용이 비중 있게 편성되었다. 이는 최승희가 주창한 남의 힘에 강요되지 않는 ‘박력이 있는’ 조선무용을 표상화한 것이었다. 또한 최승희의 조선무용은 승전국 ‘신라’라는 역사적 소재를 통해 조선의 자주성을 표출한 것으로 비춰지는데, 이는 ‘신라’ 소재의 《검무》·《보현보살》·《옥적의 곡(신라 궁녀의 춤)》이 프로그램에 비중 있게 편성된 것에서 확인되고 있다. 특히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한 신라 화랑의 무용인 《검무》는 세계 순회공연에서 주로 무대 마지막 순서에 올려지며 비평가들에게 가장 강한 인상을 남겼다. [[최승희의 검무]]와 [[최승희의 봉산탈춤]]은 미국·유럽 순회에서 비평가들로부터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최승희의 보살춤]]은 중남미에서 많은 인기를 받아 《보현보살(Bodhisattva“Hugen”)》, 《관음보살(Bodhisatta“Kwannon”)》의 2가지 버전이 발표되었다.  
  
이처럼 비록 일제에 의해 의도되었지만 일제강점기 19개국 150여회의 최승희의 세계 순회공연은 조선의 현실을 세계에 알리고, 조선무용의 예술성을 세워갔다는 점에서 예술운동의 성격을 띠었다. 최승희가 세계 순회공연에서 발표한 (신)조선무용 동작은 이후 북한 사회에서 전통성과 사상성 등을 담은 조선무용으로 정립되었다. 《조선민족무용기본》(1958)과 2017년 북한에서의 민족문화유산 등록은 이를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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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의 움직임에서 착안한《농촌 소녀의 춤》·《방아타령》·《봉산탈춤》의 향토무용은 ‘농민과 노동자 속으로’라는 프로예술 슬로건을 실행한 조선무용이다. 조선의 프로 예술가들은 나프(NAPF)로부터 극찬을 받은《봉산탈춤》·《방아타령》과 같은 향토무용을 세계 무대에 올린 최승희가 조선에서 큰 성과를 거둘 것으로 주목했다. 이는 최승희의 세계 순회공연이 조선 프로 예술가들과 깊은 연대 속에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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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12월, 세계에 올릴 30여 종의 조선무용을 창작하며<ref>「半島의 舞姬 崔承喜氏 外遊키로 決定 明春初歐米에」, 《매일신보》 1936년 12월 11일 자.</ref> “조선에도 예술이 있다는 것을 알리려 한다.”<ref>崔承喜, 「독립 무용연구소 건설」, 『나의 自敍傳』, 京城:以文堂, 1937, 24쪽 ; 崔承喜, 「朝鮮을 떠나면서-오직 여러분의 聲援을 바랄 뿐입니다」, 『여성』 2권 4호, 1937년 4월, 79쪽.</ref> 는 포부를 밝히던 최승희의 세계 순회공연은 서양의 신문물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 조선의 진화되고 강인한 모습을 세계인들에게 보여주고자 계획했던 것이었다. “군함은 나라를 위하여 싸웁니다. 나는 ‘조선의 리듬’ 크게 말하면 ‘동양의 리듬’을 가지고 서양으로 싸움을 (하러) 건너갑니다.”라고 다짐했던 최승희의 각오는<ref>崔承一, 「倫敦, 巴里로 가는 舞姬 崔承喜 -누이 承喜에게 주는 편지」,『삼천리』 제7권 제11호, 1935년 12월, 81쪽.</ref> 조선무용에서 발휘되고 있는 그의 강한 선과 정신이 어떠한 목적으로 세계인들 앞에서 추어지고 있었는지를 잘 드러내 주는 대목일 것이다.<ref>김연수, 「일제강점기 최승희의 세계 순회공연(1938~1940)과 ‘조선무용’」, 건국대학교 사학과 석사학위 논문, 2022, 15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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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비록 일제에 의해 의도되었지만 일제강점기 19개국 150여회의 최승희의 세계 순회공연은 조선의 현실을 세계에 알리고, 조선무용의 예술성을 세워갔다는 점에서 예술운동의 성격을 띠었다. 최승희가 세계 순회공연에서 발표한 (신)조선무용 동작은 이후 북한 사회에서 전통성과 사상성 등을 담은 조선무용으로 정립되었다. 《조선민족무용기본》(1958)과 2017년 북한에서의 민족문화유산 등록은 이를 말해준다.<ref>김연수, 「일제강점기 최승희의 세계 순회공연(1938~1940)과 ‘조선무용’」, 건국대학교 사학과 석사학위 논문, 2022.</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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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일제강점기 최승희의 세계 순회공연(1938~1940)과 '조선무용'」, 건국대학교 사학과 석사학위 논문, 2022 을 참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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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사학위논문 || 김연수, 일제강점기 최승희의 세계 순회공연(1938~1940)과 '조선무용' || www.riss.kr || http://www.riss.kr/link?id=T16082088
 
| 석사학위논문 || 김연수, 일제강점기 최승희의 세계 순회공연(1938~1940)과 '조선무용' || www.riss.kr || http://www.riss.kr/link?id=T16082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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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일제강점기 최승희의 세계 순회공연(1938~1940)과 '조선무용'」, 건국대학교 사학과 석사학위 논문, 2022 을 참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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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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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17일 (수) 12:06 기준 최신판

Story

《Dame de cour de Shiragi(옥적의 곡(신라 궁녀)》(L'illustre Francais 1939.1)

중일전쟁(中日戰爭) 시기 파나이호 사건(USS Panay incident,1937.12.12)을 계기로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磨) 내각에 의해 추진된 조선 무용가 최승희(崔承喜,1912~?)의 세계 순회공연(1938~1940).

1912년 경성에서 태어난 최승희는 오빠인 카프(KAPF) 문사 최승일(崔承一)의 예술운동의 영향으로 프로 예술가의 사명을 받아 들였다. 최승일은 최승희를 조선 신무용 운동의 ‘선구자'로 양성하기 위해 1926년 이시이 바쿠(石井漠)의 문하생으로 입문시켰고, 최승희는 입문한 지 6개월 만에 데뷔하며 무용 스타가 되었다. 1929년 최승일의 지도로 경성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설립한 최승희는 1930년대부터는 조선·일본 내 최고 무용가로서 입지를 굳히게 된다.

1937년 후미마로 내각은 중일전쟁으로 악화된 미·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고노에 히데마로(近衞秀麿)을 비롯한 일본의 예술가들을 미국을 비롯한 해외로 보냈다. 최승희의 순회공연 역시 그 일환으로써 일본 내각에 의해 미국으로 보내진 것이었다. 조선의 역사·전통·민속을 토대로 예술을 재해석하고 무용화한 최승희의 조선무용 발표회는 1938년 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데뷔 공연부터 1939년 유럽, 1940년 중남미에 이르기까지 대성공을 이루었다. 조선에도 예술이 있다는 것을 알리겠다는 포부를 가졌던 최승희의 세계 순회공연은 서양의 무용 예술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 조선의 진화되고 강인한 모습을 세계인들에게 보여주었다.

최승희의 세계 순회공연에는《검무》·《고구려의 수인》·《신로심불로》·《봉산탈춤》·《천하대장군》·《초립동》·《활량 춤》과 같이 선이 굵은 남성 무용이 비중 있게 편성되었다. 이는 최승희가 주창한 남의 힘에 강요되지 않는 ‘박력이 있는’ 조선무용을 표상화한 것이었다. 또한 최승희의 조선무용은 승전국 ‘신라’라는 역사적 소재를 통해 조선의 자주성을 표출한 것으로 비춰지는데, 이는 ‘신라’ 소재의 《검무》·《보현보살》·《옥적의 곡(신라 궁녀의 춤)》이 프로그램에 비중 있게 편성된 것에서 확인되고 있다. 특히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한 신라 화랑의 무용인 《검무》는 세계 순회공연에서 주로 무대 마지막 순서에 올려지며 비평가들에게 가장 강한 인상을 남겼다. 최승희의 검무최승희의 봉산탈춤은 미국·유럽 순회에서 비평가들로부터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최승희의 보살춤은 중남미에서 많은 인기를 받아 《보현보살(Bodhisattva“Hugen”)》, 《관음보살(Bodhisatta“Kwannon”)》의 2가지 버전이 발표되었다.

농민의 움직임에서 착안한《농촌 소녀의 춤》·《방아타령》·《봉산탈춤》의 향토무용은 ‘농민과 노동자 속으로’라는 프로예술 슬로건을 실행한 조선무용이다. 조선의 프로 예술가들은 나프(NAPF)로부터 극찬을 받은《봉산탈춤》·《방아타령》과 같은 향토무용을 세계 무대에 올린 최승희가 조선에서 큰 성과를 거둘 것으로 주목했다. 이는 최승희의 세계 순회공연이 조선 프로 예술가들과 깊은 연대 속에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936년 12월, 세계에 올릴 30여 종의 조선무용을 창작하며[1] “조선에도 예술이 있다는 것을 알리려 한다.”[2] 는 포부를 밝히던 최승희의 세계 순회공연은 서양의 신문물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 조선의 진화되고 강인한 모습을 세계인들에게 보여주고자 계획했던 것이었다. “군함은 나라를 위하여 싸웁니다. 나는 ‘조선의 리듬’ 크게 말하면 ‘동양의 리듬’을 가지고 서양으로 싸움을 (하러) 건너갑니다.”라고 다짐했던 최승희의 각오는[3] 조선무용에서 발휘되고 있는 그의 강한 선과 정신이 어떠한 목적으로 세계인들 앞에서 추어지고 있었는지를 잘 드러내 주는 대목일 것이다.[4]

이처럼 비록 일제에 의해 의도되었지만 일제강점기 19개국 150여회의 최승희의 세계 순회공연은 조선의 현실을 세계에 알리고, 조선무용의 예술성을 세워갔다는 점에서 예술운동의 성격을 띠었다. 최승희가 세계 순회공연에서 발표한 (신)조선무용 동작은 이후 북한 사회에서 전통성과 사상성 등을 담은 조선무용으로 정립되었다. 《조선민족무용기본》(1958)과 2017년 북한에서의 민족문화유산 등록은 이를 말해준다.[5]


김연수, 「일제강점기 최승희의 세계 순회공연(1938~1940)과 '조선무용'」, 건국대학교 사학과 석사학위 논문, 2022 을 참고 함.

Web Resource

type resource URL
참고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 컬렉션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www.nl.go.kr
참고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db.history.go.kr
참고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newslibrary.naver.com
참고 노스트라인베스트팔렌 역사 신문 포털(Zeitungs Portal NRW) zeitpunkt.nrw
참고 미국 의회 도서관 (Library of Congres) www.loc.gov
참고 스탠포드 대학 후버 연구소(Stanford University Hoover Institution) www.hoover.org
참고 캘리포니아 디지털 신문 컬렉션(California Digital Newspaper Collection) cdnc.ucr.edu

Bibliography

type bibliographic index online resource url
석사학위논문 김연수, 일제강점기 최승희의 세계 순회공연(1938~1940)과 '조선무용' www.riss.kr http://www.riss.kr/link?id=T16082088


Notes

Date Country City Theater
1938.1.22. pm 8:30 U n i t e d States of America San Francisco Community Playhouse
1938.2.2 pm 8:30 U n i t e d States of America Los Angeles Wilshire Ebell theatre
1938.2.6 U n i t e d States of America New York Metropolitan Opera House
1938.2.20. pm 3:00 U n i t e d States of America New York Guild Theatre
1938.3.5 U n i t e d States of America New York Y.M.H.A.
1938.11.6 U n i t e d States of America New York Guild Theatre
U n i t e d States of America New York
U n i t e d States of America Philadelphia
U n i t e d States of America Boston
U n i t e d States of America Chicago
1939.1.31 pm 9:00 France Paris Salle Pleyel
1939.2.6 Belgium Bruxelles Palais des beaux-arts de Bruxelles
1939.2. France Midi-Pyrénées
1939.2.26 France Cannes Casino municipal de Cannes
1939.2 France Nice
1939.3.1 pm 9:00 France Marseille Opéra municipal de Marseille
1939.3.31 Germany Duisburg Duisburger Hof Hotel
1939.4.2 pm 8:00 Germany Duisburg Theater Duisburg
1939.4 Belgium Bruxelles
1939.4 Austria Wien
1939.4 Hungary Budapest
1939.4.15~ Netherlands
1939.4.17~20 pm 8:15 Netherlands Hague Princesse Schouwburg
1939.4.22 Netherlands Haarlem Stadsschouwburg
1939.4.30~5.4 Belgium Bruxelles The International Dance Competition in Brussels 심사원
1939.5.10 Belgium Bruxelles Palais des beaux-arts de Bruxelles
1939.5.11 Belgium Antwerp Koninklijk Kunstverbond Antwerpen
1939.5.13 Belgium Louvain
1939.6.15~16 pm 9:00 France Paris Téâtre de Chaillot
1939.6.24 pm 8:15 Netherlands Hague Kurhaus of Scheveningen
1939.6.27 pm 8:15 Netherlands Hague Kurhaus of Scheveningen
1939.8 France 해안지 공연
1939.11~ Cuba La Habana 1주일간 머물며 공연
1939.12.28 pm 8:45 U n i t e d States of America New York St.James Theatre Holiday Dance Festival(12.26~31)
1940.2.17. pm 8:30 U n i t e d States of America New York McMillin Academic Theatre
1940.2.22 U n i t e d States of America Chicago Civic Theater
1940.2. U n i t e d States of America Seattle Seattle University
1940.3.10. pm 2:30 U n i t e d States of America Seattle Moore Theatre
1940.3.15 U n i t e d States of America Portland
1940.3.30 pm 7:00 U n i t e d States of America Hollywood Woman's Club of Hollywood (Hollywood Concert Hall)
1940.4.7. pm 8:30 U n i t e d States of America San Francisco Curran Theatre
1940.4.20 Puerto Rico
1940.4.21 Puerto Rico
1940.4.22 Puerto Rico
1940.4.24 Puerto Rico
1940.5.27~ Brazil Rio de Janeiro Theatro Municipal do Rio de Janeiro
1940.5.31 Brazil Rio de Janeiro Theatro Municipal do Rio de Janeiro
1940.6.3 Brazil São Paulo Municipal Theatre of São Paulo
1940.6.5 pm 9:00 Brazil São Paulo Municipal Theatre of São Paulo
1940.6.7 Brazil São Paulo Municipal Theatre of São Paulo
1940.6.20 Argentina Buenos Aires Teatro Politeama
1940.6.24 Argentina Buenos Aires Teatro Politeama
1940.7.1 Argentina Buenos Aires Teatro Politeama
1940.7 Argentina San Pedro
1940.7.15. pm 6:35 Uruguay Montevideo Solís Theatre
1940.8.5 Chile Santiago Municipal Theatre of Santiago
1940.8.8 Chile Santiago Municipal Theatre of Santiago
1940.8.9 Chile Santiago Municipal Theatre of Santiago
1940.8.25 Peru Lima Teatro Municipal de Lima
1940.8.30 Peru Lima Teatro Municipal de Lima
1940.8.31 Peru Lima Teatro Municipal de Lima
Ecuador
1940.9.17 Colombia Bogota Teatro Colón
1940.9.22.pm 9:30 Colombia Bogota Teatro Colón
Panama
1940.10.13~14 Costa Rica San José Teatro Nacional de Costa Rica
1940.10. Mexico Mexico City
1940.10. Mexico Mexico City
1940.10.23 pm 9:15 Mexico Mexico City Palacio de Bellas Artes
1940.10.26 pm 4:45 Mexico Mexico City Palacio de Bellas Artes
1940.11.3 am 11:00 Mexico Mexico City Palacio de Bellas Artes
1940.11.8 pm 9:15 Mexico Mexico City Palacio de Bellas Artes

Story Network Graph

주석

  1. 「半島의 舞姬 崔承喜氏 外遊키로 決定 明春初歐米에」, 《매일신보》 1936년 12월 11일 자.
  2. 崔承喜, 「독립 무용연구소 건설」, 『나의 自敍傳』, 京城:以文堂, 1937, 24쪽 ; 崔承喜, 「朝鮮을 떠나면서-오직 여러분의 聲援을 바랄 뿐입니다」, 『여성』 2권 4호, 1937년 4월, 79쪽.
  3. 崔承一, 「倫敦, 巴里로 가는 舞姬 崔承喜 -누이 承喜에게 주는 편지」,『삼천리』 제7권 제11호, 1935년 12월, 81쪽.
  4. 김연수, 「일제강점기 최승희의 세계 순회공연(1938~1940)과 ‘조선무용’」, 건국대학교 사학과 석사학위 논문, 2022, 15쪽.
  5. 김연수, 「일제강점기 최승희의 세계 순회공연(1938~1940)과 ‘조선무용’」, 건국대학교 사학과 석사학위 논문,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