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0-901C.episode"의 두 판 사이의 차이
22번째 줄: | 22번째 줄: | ||
E0-901C 사진-견미사절단 hasContextualElement | E0-901C 사진-견미사절단 hasContextualElement | ||
E0-901C 그림-미국_대통령을_알현하는_보빙사절 hasContextualElement | E0-901C 그림-미국_대통령을_알현하는_보빙사절 hasContextualElement | ||
+ | E0-901C 일동기유 hasContextualElement | ||
+ | E0-901C 수신사일기_권1 hasContextualElement | ||
+ | E0-901C 수신사일기_권2 hasContextualElement | ||
+ | E0-901C 일사집략 hasContextualElement | ||
+ | E0-901C 일본문견사건 hasContextualElement | ||
+ | E0-901C 사화기략 hasContextualElement | ||
#End | #End | ||
</pre> | </pre> | ||
28번째 줄: | 34번째 줄: | ||
==Theme== | ==Theme== | ||
− | Episode 3: 새로운 문물을 향한 | + | Episode 3: 새로운 문물을 향한 탐방 |
==Synopsis== | ==Synopsis== |
2022년 4월 26일 (화) 23:53 기준 최신판
#Links E0-901C 조일수호조규 hasContextualElement E0-901C 그림-조일수호조규 hasContextualElement E0-901C 김기수 hasContextualElement E0-901C 김홍집 hasContextualElement E0-901C 박영효 hasContextualElement E0-901C 민영익 hasContextualElement E0-901C 홍영식 hasContextualElement E0-901C 수신사_파견_1876 hasContextualElement E0-901C 수신사_파견_1880 hasContextualElement E0-901C 수신사_파견_1882 hasContextualElement E0-901C 조사시찰단 hasContextualElement E0-901C 신사유람단 hasContextualElement E0-901C 견미사절단 hasContextualElement E0-901C 보빙사 hasContextualElement E0-901C 백관의_상복 hasContextualElement E0-901C 백관의_편복 hasContextualElement E0-901C 스즈키_신이치 hasContextualElement E0-901C 스즈키_사진관 hasContextualElement E0-901C 조미수호통상조약 hasContextualElement E0-901C 사진-견미사절단 hasContextualElement E0-901C 그림-미국_대통령을_알현하는_보빙사절 hasContextualElement E0-901C 일동기유 hasContextualElement E0-901C 수신사일기_권1 hasContextualElement E0-901C 수신사일기_권2 hasContextualElement E0-901C 일사집략 hasContextualElement E0-901C 일본문견사건 hasContextualElement E0-901C 사화기략 hasContextualElement #End
Theme
Episode 3: 새로운 문물을 향한 탐방
Synopsis
1876년 조일수호조규 당시 회담모습을 스케치한 것으로 알려진 일러스트를 보면 전통복식을 입고 있는 조선 측과 서양복식을 입고 있는 일본 측으로 양자가 구별되고 있다. 이는 1856년 미국과 일본 간에 맺어졌던 조약 상황과도 같은 모습이다.[1]
조선은 개항 이후 1876년 4월에서 5월(음력)에 걸쳐 김기수를 수신사[2]로 하여 일본에 사절을 파견하였고, 이어서 1880년 6월부터 8월(음력)에 걸쳐 김홍집을 수신사로 하여 일본으로 파견한다. 그리고 1881년 4월초부터 윤 7월까지 일본의 문물제도를 시찰하고자 조사시찰단[3](소위 ‘신사유람단’)을 파견한다. 이 때까지 이들은 공무를 볼 때는 전통식 관복인 사모와 흉배가 달린 단령을 입고, 그 외의 상황에서는 전통식 편복을 입고 지냈다.[4]
1882년 8월 9일(음력)에 제물포를 출발하여 일본에 도착한 후 11월 27일(음력) 돌아오는 일정으로 박영효를 특명전권대사 겸 수신사로 파견한다. 박영효는 10월 26일(음력 9월 15일)에 동경 구단자카의 스즈키 신이치가 운영하는 스즈키 사진관에서 사진을 촬영한 바 있다. 이 사진에는 상투를 자른 짧은 머리에 양복차림을 하고 있다. 이는 이전의 수신사들과는 다른 행동이라 볼 수 있다.[5]
1883년 조미수호조약[6]의 비준을 위해 민영익을 전권대신으로, 홍영식을 부대신으로 하여 미국으로 견미사절단(보빙사)[7]을 파견하였다.[8] 9월 2일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여 시카고, 워싱턴을 거쳐 9월 18일 뉴욕에 머무르고 있던 미국 대통령을 예방하고 국서를 봉정하였다.[9] 대통령과의 만남은 『뉴욕 타임즈』에 자세하게 묘사되었으며,[10][11] 일러스트로도 묘사되어 『Frank Leslie의 그림 신문』 9월 29일자에 실렸다.[12] 여러 기록을 통해 보빙사 일행도 앞선 수신사 일행들과 마찬가지로 전통식 복장으로 공무를 행하고 평상시에도 전통식 편복으로 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이들은 조선 역사상 최초로 서양 현지에서 서구 복식 체계를 경험하였다는 것에서 특별한 점이 있다.[13]
Storytelling Network
- ↑ 이경미, 『제복의 탄생』, 민속원, 2012, 103쪽.
- ↑ 조항래, “수신사(修信使)”,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95.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1506
- ↑ 정옥자, “조사시찰단(朝士視察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96.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3036
- ↑ 이경미, 『제복의 탄생』, 민속원, 2012, 105~114쪽.
- ↑ 이경미, 『제복의 탄생』, 민속원, 2012, 114~117쪽.
- ↑ 김원모, “조미조약(朝美條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97.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1767
- ↑ 정경숙, “보빙사(報聘使)”,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95.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3371
- ↑ 『高宗實錄』 20년(1883) 6월 5일 癸丑;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http://sillok.history.go.kr/id/kza_12006005_001
- ↑ 손정숙, 「한국 최초 미국 외교사절 보빙사의 견문과 그 영향」, 『한국사상사』 Vol.29, 한국사상사학회, 2007, 260쪽.
- ↑ “Orient Salaans and Dress -The Corean Embassy Received By Presidene Arthur”, New York Times, 1883.09.18.(이민식, 『근대 한미관계 연구』, 백산자료원, 1998, 115~124쪽 재인용.)
- ↑ New York Times, 1883.09.17.(김원모, 「朝鮮 報聘使의 美國使行(1883) 硏究(上)」, 『동방학지』 Vol.49,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1985, 58쪽 재인용.)
- ↑ Frank Leslie's Illustrated Newspaper, 1883.09.29.(김원모, 「朝鮮 報聘使의 美國使行(1883) 硏究(上)」, 『동방학지』 Vol.49,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1985, 78쪽 재인용.)
- ↑ 이경미, 『제복의 탄생』, 민속원, 2012, 119~1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