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1 박려정"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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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신경숙의 『외딴방』''' | <br> '''신경숙의 『외딴방』''' | ||
− | 가정의 경제부담을 덜기 위해 농촌에서 도시로 등 떠밀려 고단한 노동의 길에 들어서야만 했던 청춘들은 지역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했을 뿐더러 한국의 노동문학사에 큰 기여를 해왔다. 가난한 시골 청년들은 상경하여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일을 하지만 총 급여 2만2천원, 2평 남짓한 방에서 4-5명이 모여 노동의 고단함을 달래야 했다. 그들은 사회적 변두리에 살았지만 도시경제의 중심이었고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 + | 가정의 경제부담을 덜기 위해 농촌에서 도시로 등 떠밀려 고단한 노동의 길에 들어서야만 했던 청춘들은 지역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했을 뿐더러 한국의 노동문학사에 큰 기여를 해왔다. 가난한 시골 청년들은 상경하여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일을 하지만 총 급여 2만2천원, 2평 남짓한 방에서 4-5명이 모여 노동의 고단함을 달래야 했다. 그들은 사회적 변두리에 살았지만 도시경제의 중심이었고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br/> |
− | 공장기숙사가 충분하지 않았던 시절에 생긴 특별한 쪽방, 젊은이들은 치열한 노동생활 속에서 몇 명이 함께 방을 쓰며 피곤한 몸을 달랬다. 산업구조가 바뀌고 그 속에 있는 근로자들은 중국동포 이주 노동자들로 대체되었다. 아직도 그 ‘서른일곱 개의 방’은 노동자들의 고단한 몸을 달래주는 ‘보금자리’로 작용하고 있다. 1960년대 이후 지금까지 가리봉동은 산업화, 공단, 산업 재구조화와 재개발에 밀린 낙후지역, 그리고 중국동포밀집지역 등 한국사회의 역동적인 변화를 잘 드러내는 상징적인 장소로 수많은 문학과 영화의 배경이 되었다. | + | 공장기숙사가 충분하지 않았던 시절에 생긴 특별한 쪽방, 젊은이들은 치열한 노동생활 속에서 몇 명이 함께 방을 쓰며 피곤한 몸을 달랬다. 산업구조가 바뀌고 그 속에 있는 근로자들은 중국동포 이주 노동자들로 대체되었다. 아직도 그 ‘서른일곱 개의 방’은 노동자들의 고단한 몸을 달래주는 ‘보금자리’로 작용하고 있다. 1960년대 이후 지금까지 가리봉동은 산업화, 공단, 산업 재구조화와 재개발에 밀린 낙후지역, 그리고 중국동포밀집지역 등 한국사회의 역동적인 변화를 잘 드러내는 상징적인 장소로 수많은 문학과 영화의 배경이 되었다. <br/> |
− | 이러한 맥락에서 구로구 일대는 근현대 노동의 메카, 잊혀져갈 ‘공돌이·공순이’, 한국 경제 성장의 격변을 함께 한 한국 근현대사의 중심지로서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공간장소의 흔적을 좇아 디지털화 할 가치가 충분하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들을 콘텐츠에 담아보고자 시도했다. | + | 이러한 맥락에서 구로구 일대는 근현대 노동의 메카, 잊혀져갈 ‘공돌이·공순이’, 한국 경제 성장의 격변을 함께 한 한국 근현대사의 중심지로서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공간장소의 흔적을 좇아 디지털화 할 가치가 충분하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들을 콘텐츠에 담아보고자 시도했다.<br/> |
==콤플렉스== | ==콤플렉스== |
2021년 6월 22일 (화) 20:56 판
인문정보학과 박사1학기 F20212754 박려정 |
주제 소개
"수원행 전철이 통과하는 전철역이 그 동네의 시작이다.
전철역 앞에서부터 길은 세 갈래로 나뉜다. 길은 세 갈래였어도 어느 길로 접어드나 공단과 연결되었다.
단지 그 집으로 통하는 좌측길만 사진관과 보리밭다방 사이로 골목이 또 있었고, 그 골목을 사이에 두고 집들이 들어서 있었다.
그러나 집들이 있는 그 골목을 벗어나 시장으로 통하는 육교를 건너고 나면 그 시장 끝도 역시 공단이었다."
신경숙의 『외딴방』
가정의 경제부담을 덜기 위해 농촌에서 도시로 등 떠밀려 고단한 노동의 길에 들어서야만 했던 청춘들은 지역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했을 뿐더러 한국의 노동문학사에 큰 기여를 해왔다. 가난한 시골 청년들은 상경하여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일을 하지만 총 급여 2만2천원, 2평 남짓한 방에서 4-5명이 모여 노동의 고단함을 달래야 했다. 그들은 사회적 변두리에 살았지만 도시경제의 중심이었고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공장기숙사가 충분하지 않았던 시절에 생긴 특별한 쪽방, 젊은이들은 치열한 노동생활 속에서 몇 명이 함께 방을 쓰며 피곤한 몸을 달랬다. 산업구조가 바뀌고 그 속에 있는 근로자들은 중국동포 이주 노동자들로 대체되었다. 아직도 그 ‘서른일곱 개의 방’은 노동자들의 고단한 몸을 달래주는 ‘보금자리’로 작용하고 있다. 1960년대 이후 지금까지 가리봉동은 산업화, 공단, 산업 재구조화와 재개발에 밀린 낙후지역, 그리고 중국동포밀집지역 등 한국사회의 역동적인 변화를 잘 드러내는 상징적인 장소로 수많은 문학과 영화의 배경이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구로구 일대는 근현대 노동의 메카, 잊혀져갈 ‘공돌이·공순이’, 한국 경제 성장의 격변을 함께 한 한국 근현대사의 중심지로서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공간장소의 흔적을 좇아 디지털화 할 가치가 충분하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들을 콘텐츠에 담아보고자 시도했다.
콤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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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며
주석
참고문헌
- 김현, 『인문정보학의 모색』, 2012. 12. 북코리아.
- 김현·임영상·김바로, 『디지털 인문학 입문』, 2016. 5. HUE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