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학궤범"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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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 ==정의== | ||
− | + | 『악학궤범(樂學軌範)』은 성종 24년(1493), 성현(成俔), 유자광(柳子光), 신말평(申末平), 박곤(朴𦓼), 김복근(金福根)이 왕명을 받아 조선시대 의궤와 악보를 정리하여 편찬한 악서(樂書)이다. | |
==내용== | ==내용== | ||
− | ==== | + | ====『악학궤범』의 편찬과 복각==== |
− | *성현은 | + | *성현은 『악학궤범』의 편찬 이유에 대해 서문(序文)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
“장악원(掌樂院) 소장의 의궤와 악보가 오래되어 해어졌고, 요행히 보존된 것 역시 모두 소략하고 오류가 있으며 빠진 것이 많다. 이제 무령군 유자광 및 성현, 주부 신말평, 전악 박곤·김복근에게 명하여 다시 교정하게 하였는데, 먼저 율관 만드는 원리를 말하고 다음에는 율 쓰는 법을 말하였으며, 악기·의물의 형체·제작하는 것과 무도의 철조와 진퇴의 절차에 이르기까지 모두 기재하였다. 책이 이루어지자 『樂學軌範』이라고 명명하였다.”<ref>이혜구, 『신역 악학궤범』, 국립국악원, 2000, 34쪽.</ref> | “장악원(掌樂院) 소장의 의궤와 악보가 오래되어 해어졌고, 요행히 보존된 것 역시 모두 소략하고 오류가 있으며 빠진 것이 많다. 이제 무령군 유자광 및 성현, 주부 신말평, 전악 박곤·김복근에게 명하여 다시 교정하게 하였는데, 먼저 율관 만드는 원리를 말하고 다음에는 율 쓰는 법을 말하였으며, 악기·의물의 형체·제작하는 것과 무도의 철조와 진퇴의 절차에 이르기까지 모두 기재하였다. 책이 이루어지자 『樂學軌範』이라고 명명하였다.”<ref>이혜구, 『신역 악학궤범』, 국립국악원, 2000, 34쪽.</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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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으로 인해 악기와 악제(樂制)가 불에 타서 없어졌으나, 불탄 자리에서 『악학궤범』을 구해 광해군 2년(1610)에 복각하였다. 인조 때 음악이 쇠퇴하자 효종 5년(1655)에 다시 간행하여 반포하였고, 영조 19년(1743)에 아악기를 중수할 목적으로 복각하였다. | *임진왜란으로 인해 악기와 악제(樂制)가 불에 타서 없어졌으나, 불탄 자리에서 『악학궤범』을 구해 광해군 2년(1610)에 복각하였다. 인조 때 음악이 쇠퇴하자 효종 5년(1655)에 다시 간행하여 반포하였고, 영조 19년(1743)에 아악기를 중수할 목적으로 복각하였다. | ||
− | ==== | + | ====『악학궤범』의 내용==== |
*권1: 아악(雅樂)·당악(唐樂)·향악(鄕樂)의 음악 이론을 다루었다. | *권1: 아악(雅樂)·당악(唐樂)·향악(鄕樂)의 음악 이론을 다루었다. | ||
*권2: '아악진설도설(雅樂陳設圖說)'과 '속악진설도설(俗樂陳設圖說)'을 실었다. 성종 당시의 여러 제향과 조회·연향 때 악기 진설하는 법을 그 전의 오례의(五禮儀)와 세종 때와 비교하여 설명하였다. 또한 제향에 쓰이는 아악의 악보와 악장(樂章)을 게재하고, 성종 당시의 조회·연향에 쓰이는 음악의 절차·곡목·춤 이름을 세종 때의 '회례연의(會禮宴儀)'와 비교·기술하였다. | *권2: '아악진설도설(雅樂陳設圖說)'과 '속악진설도설(俗樂陳設圖說)'을 실었다. 성종 당시의 여러 제향과 조회·연향 때 악기 진설하는 법을 그 전의 오례의(五禮儀)와 세종 때와 비교하여 설명하였다. 또한 제향에 쓰이는 아악의 악보와 악장(樂章)을 게재하고, 성종 당시의 조회·연향에 쓰이는 음악의 절차·곡목·춤 이름을 세종 때의 '회례연의(會禮宴儀)'와 비교·기술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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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4: 성종조의 '당악정재도의(唐樂呈才圖儀)'를 상세히 설명하였다. | *권4: 성종조의 '당악정재도의(唐樂呈才圖儀)'를 상세히 설명하였다. | ||
− | *권5:한글로 적힌 「동동」·「정읍」·「처용가」·「진작」의 노래를 보여 준다. | + | *권5: 한글로 적힌 「동동」·「정읍」·「처용가」·「진작」의 노래를 보여 준다. |
− | *권6:'아부악기도설(雅部樂器圖說)'에서는 악기의 전체 모양을 그림으로 그리고 그림에 악기의 치수를 적고 재료를 설명하였다. | + | *권6: '아부악기도설(雅部樂器圖說)'에서는 악기의 전체 모양을 그림으로 그리고 그림에 악기의 치수를 적고 재료를 설명하였다. |
− | *권7:'당부악기도설(唐部樂器圖說)'과 '향부악기도설(鄕部樂器圖說)'에서는 악기의 전체 모양을 그림으로 그리고 그림에 악기의 치수를 적고 재료를 설명하였다. | + | *권7: '당부악기도설(唐部樂器圖說)'과 '향부악기도설(鄕部樂器圖說)'에서는 악기의 전체 모양을 그림으로 그리고 그림에 악기의 치수를 적고 재료를 설명하였다. |
− | *권8:'당악정재의물도설(唐樂呈才儀物圖說)'에서는 당악정재에 쓰이는 의물을 그림으로 그리고 치수를 기입하고 재료를 적어서 실제 제작을 가능하게 | + | *권8: '당악정재의물도설(唐樂呈才儀物圖說)'에서는 당악정재에 쓰이는 의물을 그림으로 그리고 치수를 기입하고 재료를 적어서 실제 제작을 가능하게 하였다. '연화대복식도설(蓮花臺服飾圖說)', '정대업정재의물도설(定大業呈才儀物圖說)'에서는 복식과 의물을 그림으로 그려 설명하였다. '향악정재악기도설(鄕樂呈才樂器圖說)'에서는 아박(牙拍)·향발(響鈸)·무고(舞鼓)·후도처용무(後度處容舞)에서 춤추는 사람이 쓰는 악기를 그림으로 그리고 치수를 기입·설명하였다. |
− | *권9:'관복도설(冠服圖說)' | + | *권9: '[[관복도설]](冠服圖說)'·'처용관복(處容冠服)'·'무동관복(舞童冠服)'·'[[여기복식]](女妓服飾)'에서는 복식을 그림으로 그리고 치수를 적어, 책을 보고 관복을 지을 수 있게 하였다. |
− | ==== | + | ====『악학궤범』의 복식사적 가치==== |
− | 권8의 ‘연화대복식도설(蓮花臺服飾圖說)’·‘정대업정재의물도설(定大業呈才儀物圖說)’, 권9의 | + | 권8의 ‘연화대복식도설(蓮花臺服飾圖說)’·‘정대업정재의물도설(定大業呈才儀物圖說)’, 권9의 ‘[[관복도설]](冠服圖說)’·‘처용관복(處容冠服)’·‘무동관복(舞童冠服)’·‘[[여기복식]](女妓服飾)’에는 구체적인 복식의 형태·치수·재료가 적혀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수많은 서적과 유물이 소실되어 전해지지 않는 상황에서, 『악학궤범』은 조선전기 복식을 연구하는데 필수적이고 귀중한 자료이다.<ref>박가영, 「『악학궤범』 복식의 착용에 관한 연구」, 국악원논문집 제 16집, 2004, 7쪽.</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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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참고문헌== | ||
− |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악학궤범 악학궤범]",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 + |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악학궤범 악학궤범(樂學軌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
*이혜구, 『신역 악학궤범』, 국립국악원, 2000. | *이혜구, 『신역 악학궤범』, 국립국악원, 2000. | ||
*박가영, 「『악학궤범』 복식의 착용에 관한 연구」, 국악원논문집 제 16집, 2004. | *박가영, 「『악학궤범』 복식의 착용에 관한 연구」, 국악원논문집 제 16집, 2004. | ||
− | [[분류:복식콘텐츠]] [[분류:복식2020단국대]][[분류: | + | [[분류:복식콘텐츠]] [[분류:복식2020단국대]] |
+ | [[분류:Record]][[분류:Record-문헌]] | ||
+ | [[분류:김지원]] |
2020년 12월 9일 (수) 18:15 기준 최신판
악학궤범(樂學軌範) | |
대표명칭 | 악학궤범 |
---|---|
한자표기 | 樂學軌範 |
유형 | 고문헌 |
저자 | 성현, 유자광, 신말평, 박곤, 김복근 |
간행시기 | 1493년 |
시대 | 조선 성종 |
수량 | 9권 3책 |
소장처 | 서울대학교 도서관 |
목차
정의
『악학궤범(樂學軌範)』은 성종 24년(1493), 성현(成俔), 유자광(柳子光), 신말평(申末平), 박곤(朴𦓼), 김복근(金福根)이 왕명을 받아 조선시대 의궤와 악보를 정리하여 편찬한 악서(樂書)이다.
내용
『악학궤범』의 편찬과 복각
- 성현은 『악학궤범』의 편찬 이유에 대해 서문(序文)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장악원(掌樂院) 소장의 의궤와 악보가 오래되어 해어졌고, 요행히 보존된 것 역시 모두 소략하고 오류가 있으며 빠진 것이 많다. 이제 무령군 유자광 및 성현, 주부 신말평, 전악 박곤·김복근에게 명하여 다시 교정하게 하였는데, 먼저 율관 만드는 원리를 말하고 다음에는 율 쓰는 법을 말하였으며, 악기·의물의 형체·제작하는 것과 무도의 철조와 진퇴의 절차에 이르기까지 모두 기재하였다. 책이 이루어지자 『樂學軌範』이라고 명명하였다.”[1]
- 임진왜란으로 인해 악기와 악제(樂制)가 불에 타서 없어졌으나, 불탄 자리에서 『악학궤범』을 구해 광해군 2년(1610)에 복각하였다. 인조 때 음악이 쇠퇴하자 효종 5년(1655)에 다시 간행하여 반포하였고, 영조 19년(1743)에 아악기를 중수할 목적으로 복각하였다.
『악학궤범』의 내용
- 권1: 아악(雅樂)·당악(唐樂)·향악(鄕樂)의 음악 이론을 다루었다.
- 권2: '아악진설도설(雅樂陳設圖說)'과 '속악진설도설(俗樂陳設圖說)'을 실었다. 성종 당시의 여러 제향과 조회·연향 때 악기 진설하는 법을 그 전의 오례의(五禮儀)와 세종 때와 비교하여 설명하였다. 또한 제향에 쓰이는 아악의 악보와 악장(樂章)을 게재하고, 성종 당시의 조회·연향에 쓰이는 음악의 절차·곡목·춤 이름을 세종 때의 '회례연의(會禮宴儀)'와 비교·기술하였다.
- 권3: 『고려사』 악지(樂志)의 '당악정재(唐樂呈才)'와 '속악정재(俗樂呈才)'를 설명하였다.
- 권4: 성종조의 '당악정재도의(唐樂呈才圖儀)'를 상세히 설명하였다.
- 권5: 한글로 적힌 「동동」·「정읍」·「처용가」·「진작」의 노래를 보여 준다.
- 권6: '아부악기도설(雅部樂器圖說)'에서는 악기의 전체 모양을 그림으로 그리고 그림에 악기의 치수를 적고 재료를 설명하였다.
- 권7: '당부악기도설(唐部樂器圖說)'과 '향부악기도설(鄕部樂器圖說)'에서는 악기의 전체 모양을 그림으로 그리고 그림에 악기의 치수를 적고 재료를 설명하였다.
- 권8: '당악정재의물도설(唐樂呈才儀物圖說)'에서는 당악정재에 쓰이는 의물을 그림으로 그리고 치수를 기입하고 재료를 적어서 실제 제작을 가능하게 하였다. '연화대복식도설(蓮花臺服飾圖說)', '정대업정재의물도설(定大業呈才儀物圖說)'에서는 복식과 의물을 그림으로 그려 설명하였다. '향악정재악기도설(鄕樂呈才樂器圖說)'에서는 아박(牙拍)·향발(響鈸)·무고(舞鼓)·후도처용무(後度處容舞)에서 춤추는 사람이 쓰는 악기를 그림으로 그리고 치수를 기입·설명하였다.
- 권9: '관복도설(冠服圖說)'·'처용관복(處容冠服)'·'무동관복(舞童冠服)'·'여기복식(女妓服飾)'에서는 복식을 그림으로 그리고 치수를 적어, 책을 보고 관복을 지을 수 있게 하였다.
『악학궤범』의 복식사적 가치
권8의 ‘연화대복식도설(蓮花臺服飾圖說)’·‘정대업정재의물도설(定大業呈才儀物圖說)’, 권9의 ‘관복도설(冠服圖說)’·‘처용관복(處容冠服)’·‘무동관복(舞童冠服)’·‘여기복식(女妓服飾)’에는 구체적인 복식의 형태·치수·재료가 적혀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수많은 서적과 유물이 소실되어 전해지지 않는 상황에서, 『악학궤범』은 조선전기 복식을 연구하는데 필수적이고 귀중한 자료이다.[2]
지식관계망
클래스
- Actor-인물 : 성종
- Actor-인물 : 성현
- Actor-인물 : 유자광
- Actor-인물 : 신말평
- Actor-인물 : 박곤
- Actor-인물 : 김복근
- Record-문헌 : 『악학궤범』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성종 | 『악학궤범』 | A와 B는 서로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악학궤범』 | 성현 | A는 B가 만들었다 | A dcterms:creator B |
『악학궤범』 | 유자광 | A는 B가 만들었다 | A dcterms:creator B |
『악학궤범』 | 신말평 | A는 B가 만들었다 | A dcterms:creator B |
『악학궤범』 | 박곤 | A는 B가 만들었다 | A dcterms:creator B |
『악학궤범』 | 김복근 | A는 B가 만들었다 | A dcterms:creator B |
연화대복식도설 | 복식 | A는 B를 묘사하였다 | A ekc:depicts B |
정대업정재의물도설 | 복식 | A는 B를 묘사하였다 | A ekc:depicts B |
관복도설 | 복식 | A는 B를 묘사하였다 | A ekc:depicts B |
처용관복 | 복식 | A는 B를 묘사하였다 | A ekc:depicts B |
무동관복 | 복식 | A는 B를 묘사하였다 | A ekc:depicts B |
여기복식 | 복식 | A는 B를 묘사하였다 | A ekc:depicts B |
네트워크 그래프
└☞ 본 네트워크 그래프에서 사용된 아이콘 이미지는 '한국 문화 엔사이브'의 아이콘 모음 자료를 활용하였다.
주석
참고문헌
- "악학궤범(樂學軌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이혜구, 『신역 악학궤범』, 국립국악원, 2000.
- 박가영, 「『악학궤범』 복식의 착용에 관한 연구」, 국악원논문집 제 16집,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