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술환국"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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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왕비 장씨마저도 희빈으로 강등되고 폐비 민씨(인현왕후)를 다시 왕비로 맞아들였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65191&cid=46622&categoryId=46622 갑술환국]</ref>
 
그리고 왕비 장씨마저도 희빈으로 강등되고 폐비 민씨(인현왕후)를 다시 왕비로 맞아들였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65191&cid=46622&categoryId=46622 갑술환국]</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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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으로 축출된 남인은 다시는 정권에 대두하지 못했으며 이후 당쟁은 노론과 소론이 대립하는 양상을 보였다. <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19214&cid=62047&categoryId=62047 갑술환국]</ref>
 
이 사건으로 축출된 남인은 다시는 정권에 대두하지 못했으며 이후 당쟁은 노론과 소론이 대립하는 양상을 보였다. <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19214&cid=62047&categoryId=62047 갑술환국]</ref>
 
=='''인물들과의 연관성'''==
 
=='''인물들과의 연관성'''==

2019년 6월 24일 (월) 04:16 판

정의

1694년(숙종 20) 기사환국으로 집권한 남인이 폐비민씨(인현왕후) 복위운동을 반대하여 화를 입어 실권하고 소론노론이 재집권하게 된 사건[1]

인물

내용

결과

이 사건을 계기로 숙종은 남인을 물리치고 남구만을 영의정, 박세채를 좌의정, 윤지완을 우의정에 각각 기용, 소론 정권을 성립시키게 되었다.

노론측도 폐비 민씨가 복위된 것을 비롯, 송시열·민정중·김익훈·김수흥·조사석·김수항 등이 복관되는 등 기사환국 이전의 상태가 되었다.

반면, 남인측은 민암·이의징이 사사되고, 권대운·목내선·김덕원·민종도·이현일·장희재 등 다수가 유배되었다.

그리고 왕비 장씨마저도 희빈으로 강등되고 폐비 민씨(인현왕후)를 다시 왕비로 맞아들였다.[2]

이 사건으로 축출된 남인은 다시는 정권에 대두하지 못했으며 이후 당쟁은 노론과 소론이 대립하는 양상을 보였다. [3]

인물들과의 연관성

네트워크 그래프

출처

주석

  1. 갑술환국
  2. 갑술환국
  3. 갑술환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