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9번째 줄: | 9번째 줄: | ||
백석 시인이 통영 지역을 배경으로 쓴 '통영(統營)'이라는 시들도 있다.<ref>백석 시인이 '통영(統營)'이라는 제목으로 쓴 시가 세 편 있지만 백석과 란의 관계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vikinow&logNo=20101559819 <통영(統營)>] 3는 '통영' 문서에 작성하지 않았다.</ref> | 백석 시인이 통영 지역을 배경으로 쓴 '통영(統營)'이라는 시들도 있다.<ref>백석 시인이 '통영(統營)'이라는 제목으로 쓴 시가 세 편 있지만 백석과 란의 관계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vikinow&logNo=20101559819 <통영(統營)>] 3는 '통영' 문서에 작성하지 않았다.</ref> | ||
− | *'''<통영(統營) | + | *첫 번째 발표된 '''<통영(統營)>''' |
이 시는 1935년 <<조광>> 12월호에 [http://www.poemlove.co.kr/bbs/board.php?bo_table=tb01&wr_id=44451&sca=&sfl=wr_1&stx=%B9%E9%BC%AE-&spt=-133310 <여우난골족>], [http://www.poemlove.co.kr/bbs/board.php?bo_table=tb01&wr_id=9156&sca=&sfl=wr_1&stx=%B9%E9%BC%AE-&spt=-33217 <흰밤>]과 함께 발표되었다.<ref>안도현 「백석평전」88p</ref> | 이 시는 1935년 <<조광>> 12월호에 [http://www.poemlove.co.kr/bbs/board.php?bo_table=tb01&wr_id=44451&sca=&sfl=wr_1&stx=%B9%E9%BC%AE-&spt=-133310 <여우난골족>], [http://www.poemlove.co.kr/bbs/board.php?bo_table=tb01&wr_id=9156&sca=&sfl=wr_1&stx=%B9%E9%BC%AE-&spt=-33217 <흰밤>]과 함께 발표되었다.<ref>안도현 「백석평전」88p</ref> | ||
{{글상자 | {{글상자 | ||
22번째 줄: | 22번째 줄: | ||
− | *'''<통영(統營) | + | *두 번째 발표된 '''<통영(統營)>''' |
− | 백석은 <조선일보> 1936년 1월 23일자에 두 번째로 '통영'이라는 제목의 시를 | + | 백석은 <조선일보> 1936년 1월 23일자에 두 번째로 '통영'이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하였다. 1935년 <<조광>> 12월호에 같은 제목으로 시를 발표한 지 거의 두달 만이었다. 그 사이에 백석은 다시 통영을 다녀왔다.<ref>안도현 「백석평전」101p</ref> |
{{글상자 | {{글상자 | ||
|color=Aliceblue | |color=Aliceblue |
2019년 6월 17일 (월) 16:20 판
정의
통영은 경상남도 남해안 중앙부에 있는 시이다.[1]
내용
도시 '통영'
초겨울 비가 내리고 바람 끝이 차갑게 스쳐 지나가는 통영에는 윤이상 추모음악제 현수막이 도시의 거리마다 휘날린다. 옛적부터 문인·화가 등 예술적 자질이 돋보이는 인물이 많기로 유명했던 통영은 조선 중기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근거지가 되면서부터 역사 속에 떠올랐다. 이곳에 삼도수군통제사영(三道水軍統制使營)이 설치되고 그 준말이 불려지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충무라는 지명도 이순신의 시호 충무공에서 따온 이름임을 미루어 보면 그 역사적 배경이 넉넉히 짐작된다. 통영에는 아직도 그 유적이 남아 있으니, 통영시 문화동 여황산 기슭에 선 세병관(洗兵館)과 충무공 위패를 모신 충렬사(忠烈祠)가 그것이다.[2]
시(詩) <통영(統營)>
백석 시인이 통영 지역을 배경으로 쓴 '통영(統營)'이라는 시들도 있다.[3]
- 첫 번째 발표된 <통영(統營)>
이 시는 1935년 <<조광>> 12월호에 <여우난골족>, <흰밤>과 함께 발표되었다.[4]
- 두 번째 발표된 <통영(統營)>
백석은 <조선일보> 1936년 1월 23일자에 두 번째로 '통영'이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하였다. 1935년 <<조광>> 12월호에 같은 제목으로 시를 발표한 지 거의 두달 만이었다. 그 사이에 백석은 다시 통영을 다녀왔다.[5]
구마산(舊馬山)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
멀티미디어
이미지
전자지도
네트워크 그래프
... 등
참고문헌
기여
주석
- ↑ 네이버 지식백과 '통영시' (두산백과)
- ↑ 네이버 지식백과 '통영' - 충무공의 정신이 깃든 곳 (한국의 미 산책, 2007. 11. 30., 최선호)
- ↑ 백석 시인이 '통영(統營)'이라는 제목으로 쓴 시가 세 편 있지만 백석과 란의 관계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 <통영(統營)> 3는 '통영' 문서에 작성하지 않았다.
- ↑ 안도현 「백석평전」88p
- ↑ 안도현 「백석평전」101p
-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vikinow&logNo=20101559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