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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교도 8인조는 강화읍교회(현 강화중앙교회)의 여덟 청년으로 구성된 비밀결사대다. 1919년 3월 18일 강화만세운동이 일어나고 3월 21일 다시 한번 만세운동을 준비하던 사람들로 강화읍교회 청년회 간부인 강화보통학교출신 21살 조봉암을 비롯하여 구연준, 김한영, 김영희, 주창일, 조구원, 고제몽, 오영섭을 가리킨다. 이들은 전국의 만세시위소식을 강화사람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강화 각 지역에 밤마다 벽보를 붙이고, 일제에 경고문을 붙이다가 4월 30일 전원 검거된다. </ref> | + | 예수교도 8인조는 강화읍교회(현 강화중앙교회)의 여덟 청년으로 구성된 비밀결사대다. 1919년 3월 18일 강화만세운동이 일어나고 3월 21일 다시 한번 만세운동을 준비하던 사람들로 강화읍교회 청년회 간부인 강화보통학교출신 21살 조봉암을 비롯하여 구연준, 김한영, 김영희, 주창일, 조구원, 고제몽, 오영섭을 가리킨다. 이들은 전국의 만세시위소식을 강화사람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강화 각 지역에 밤마다 벽보를 붙이고, 일제에 경고문을 붙이다가 4월 30일 전원 검거된다. <ref> 출처: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74517&code=23111668]</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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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15일 (토) 09:19 판
예수교도 8인조는 강화읍교회(현 강화중앙교회)의 여덟 청년으로 구성된 비밀결사대다. 1919년 3월 18일 강화만세운동이 일어나고 3월 21일 다시 한번 만세운동을 준비하던 사람들로 강화읍교회 청년회 간부인 강화보통학교출신 21살 조봉암을 비롯하여 구연준, 김한영, 김영희, 주창일, 조구원, 고제몽, 오영섭을 가리킨다. 이들은 전국의 만세시위소식을 강화사람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강화 각 지역에 밤마다 벽보를 붙이고, 일제에 경고문을 붙이다가 4월 30일 전원 검거된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