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대 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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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하서의 인품은 고매하였으며 의리가 있었다. 정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한 것이다. 마침 하서와 사제의 인연을 맺었던 인종이 즉위한 지 겨우 8개월 만에 3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그의 결심을 더욱 확고해졌다. 고향 장성으로 돌아온 하서는 인종의 기일이 되면 집 뒤편에 있는 산에 올라가 온종일 통곡을 하고 돌아왔다. 평생 인종을 잊지 못하고 그를 향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행했던 하서의 통곡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남아 있다.1560년 51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면서 임종 후에도 옥과현감 이후의 관직은 비문에 쓰지 말라는 유언을 자손들에게 남기어 인종에 대한 절의를 표시했다. 계란처럼 생겼다는 난산(卵山) 뒤편에 지금도 하서가 통곡하던 통곡대 바위가 홀로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