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第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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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第九
주돈이의 통서 제9장 원문 및 朱注이다.
- 洪範曰:「思曰睿,睿作聖。」無思,本也;思通,用也。幾動於彼,誠動於此。無思而無不通,為聖人。
- 『서경』 「주서」 <홍범>편에서 말하였다. “생각은 밝아야 한다. 밝아야 성인이 된다.”[1] 생각이 없는 것이 근본이고,[2] 생각이 통하는 것이 用이다. 기미가 저기(本)에서 싹트고, 성이 여기(用)에서 드러난다. 생각함이 없다가 모든 것에 통달한 것을 성인이라 한다.[3]
- 睿,通也。無思,誠也;思通,神也。所謂「誠、神、幾,曰聖人」也。
- 睿는 통한다는 것이다. 생각함이 없음은 誠이고, 생각이 통함은 神이니, 이른바 ‘본성으로 주어진 진실함을 보존하고, 신묘하게 감응할 수 있으며, 기미를 잘 포착하는자를 성인이라 한다.’ 는 것이다.[4]
- 不思,則不能通微;不睿,則不能無不通。是則無不通,生於通微,通微,生於思。
- 생각하지 않으면 은미한 데까지 통할(환하게 깨달을) 수 없다. 슬기롭지 않으면 불통함이 없을 수 없다. 이는 즉 통달함은 은미한 데까지 통하는 데에서 생기고, 은미한 데까지 통함은 생각함에서 생긴다는 것이다.
- 通微,睿也;無不通,聖也。
- 은미한 데까지 통함은 슬기로움이고, 모든 것에 통달한 것은 성인이다.
- 故思者,聖功之本,而吉凶之幾也。
- 그러므로 생각함은 성인에 이르는 공부의 근본이고, 길흉이 나뉘는 기점이다.[5]
- 思之至,可以作聖而無不通;其次,亦可以見幾通微,而不陷於凶咎。
- 생각함이 지극하면, 성인이 되어서 모든 것에 통달할 수 있을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성인의 경지까지는 못가더라도) 또한 기미를 보고 환하게 깨달을 수 있어서 재앙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 又曰:「知幾其神乎!」
- 또 말하였다. “기미를 아는 것이 귀신같구나!”
- 聖也。
- 성인이다.
주석
- ↑ 『尙書』 「周書」 <洪範>4 二、五事:一曰貌,二曰言,三曰視,四曰聽,五曰思。貌曰恭,言曰從,視曰明,聽曰聰,思曰睿。恭作肅,從作乂,明作哲,聰作謀,睿作聖。
- ↑ 『朱子語類』 睿有思,有不通;聖無思,無不通。又曰:「聖人時思便通,非是塊然無思,撥著便轉。恁地時,聖人只是箇瓠子!」說「無思本也」。슬기로움은 생각이 있으니, 통하지 않음이 있고, 성인은 생각이 없으니, 통하지 않음이 없다. 또 말하였다. “성인은 때때로 생각하면 곧 통하니, 괴연하게 생각이 없다가 건드려줘야 곧 굴러가는 것이 아니다. 이런 때라면, 성인은 다만 바가지일 것이다!” 「無思本也」에 대해 말한 것이다.
- ↑ 『朱子語類』 問:「『無思,本也;思通,用也,無思而無不通為聖人。』不知聖人是有思耶?無思耶?」曰:「無思而無不通是聖人,必思而後無不通是睿。」時舉云:「聖人『寂然不動』,是無思;才感便通,特應之耳。」曰:「聖人也不是塊然由人撥後方動,如莊子云『推而行,曳而止』之類。只是才思便通,不待大故地思索耳。」時舉因云:「如此,則是無事時都無所思,事至時才思而便通耳。」 (『無思,本也;思通,用也,無思而無不通為聖人。』에 대해 물었다. “잘 모르겠습니다만 성인은 생각이 있으신 겁니까 생각이 없으신 겁니까?” 답했다. “생각이 없으나 통달한 것이 성인이고, 반드시 생각한 이후에 통달하는 것이 슬기로움이다.” 시거가 말하였다. “성인은 적연부동하시니, 이것이 생각이 없다는 것이고, 感하자마자 곧 통하니, 다만 應하실 뿐이겠습니다.” 답했다. “성인은 괴연하게(흙덩이처럼) 있다가 남에게 자극받은 후에야 움직여서 마치 장자가 말한 ‘밀면 가고, 끌면 멈춘다.’와 같은 부류인 것도 아니다. 다만 생각하자마자 곧 통하니, 특별한 사색을 할 필요가 없을 뿐이다.” 시거가 이로 인해 말하였다. “이와 같다면 일이 없을 때는 전혀 생각하는 바가 없다가, 일이 닥친 때에는 생각하자마자 곧 통할 뿐이겠습니다.”)
- ↑ 『通書』 「聖第四」
- ↑ 『朱子語類』 「幾」,是事之端緒。有端緒方有討頭處,這方是用得思。(幾는 일의 단서이다. 단서가 있어야만 탐구할 곳이 있는 것이니, 여기에서 생각을 쓰는 것이다.)
- ↑ 「繫辭下」 子曰:「知幾其神乎?君子上交不諂,下交不瀆,其知幾乎,幾者動之微,吉之先見者也,君子見幾而作,不俟終日。易曰:『介于石,不終日,貞吉。』介如石焉,寧用終日,斷可識矣,君子知微知彰,知柔知剛,萬夫之望。」 (공자가 말하였다:기미[幾]를 앎이 그 신묘함이로다! 군자가 윗사람과 사귀면서 아첨하지 않으며 아랫사람과 사귀면서 모독하지 않으니, 그 기미를 앎이로다! 기미는 움직임의 은미함으로 길함이 먼저 나타난 것이다. 군자가 기미를 보고 일어나 하루가 마치기를 기다리지 아니하니, 『주역』에 “돌보다 견고하기에 하루를 마치지 않으니 곧고 길하다”고 하니, 견고함이 돌과 같거늘 어찌 하루를 마치겠는가? 결단함을 알 수 있다. 군자가 은미한 것을 알며 드러난 것을 알며, 부드러운 것을 알며 굳센 것을 아니, 모든 사람들의 선망이 된다. [번역은 『한국주역대전』 참조])
- ↑ 『朱子語類』 「思」一章,「幾」、「機」二字無異義。舉易一句者,特斷章取義以解上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