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동사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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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大同社會’論[1]
- 데이터 사회에 투영한 공자(孔子)의 ‘대동(大同)’ -

김현(金炫)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정보학 교수
전통문화연구회 동양고전정보화연구소 소장


‘대동(大同)’이란 공자(孔子)가 꿈꾸었던 이상사회(理想社會)의 이름이다. 그곳에서는 노인들이 돌아갈 곳이 있고, 장성한 이들이 쓰일 곳이 있으며, 어린이들이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날 곳이 있다. 누구나 일하여 먹을 수 있고, 그 능력이 없어도 사회가 보살펴서 모두가 함께 하는 모습을 그는 ‘대동(大同)’이라고 일컬었다. (《禮記》 禮運 大同篇)

전통시대의 유교 지식인들은 꿈꿔 왔던 이 ‘대동사회(大同社會)’를 이 글에서 언급하는 것은 그저 옛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대동사회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지혜와 능력을 모아 추구해야 할 미래 비전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공자(孔子)의 시대 이후 지난 세기(世紀)까지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새로운 일들이 우리 세계에 일어나고 있고, 그것이 21세기의 대동사회를 가능하게 할 새로운 환경일 수 있다는 것이다.

1. 첫 번째 키워드: 데이터 자유이용(自由利用)

내가 생각하는, 21세기 대동사회의 촉진제는 바로 ‘데이터의 자유이용(自由利用)’이다.

세계가 이미 그 영역에 진입하기 시작했다고 하는 ‘4차 산업혁명 사회’는 서로 이질적(異質的)이라고 생각되던 것들 사이에서 의미 있는 연결고리를 발견하고,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부가가치(附加價値)를 만들어내는 사회라고 한다. 그러한 융합(融合)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데이터이다.

10년 전 어머니의 뇌 건강 진단을 위해 이름 있는 신경외과(神經外科) 병원을 찾은 적이 있다. 그 때 의사(醫師)가 했던 말. “저희 병원은 노인성(老人性) 뇌질환(腦疾患) 환자 3,000 명의 임상(臨床)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병원보다 훨씬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말에 수긍하기보다는 의아한 생각이 들이었다. “우리나라의 환자만해도 수십만 명이 넘는다는데......”

오늘날, 혼자서 자기만의 데이터를 부둥켜안고 그것을 재화(財貨)로 쓰려고 하기보다는 그것을 공개(公開)함으로써 다른 데이터와의 융합 효과를 추구할 때 더 많은 부가가치를 유발할 수 있다고 하는 사고가 확산되어 가고 있다. 병원들은 아직도 갖가지 이유를 들어 이 변화에 동참하는 것을 주저하지만, 정치가와 공무원들조차도 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아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정부(政府)는 2013년에 이미 「공공 데이터의 제공 및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을 공표하여 공공 분야의 데이터부터 자유이용(自由利用)의 문을 열어 가기 시작했다. 선진국의 범주에 드는 나라들이 데이터 자유이용 정책을 앞 다투어 추진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데이터 기반 산업융합(産業融合)을 촉진하는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데이터 자유이용의 기술적, 산업적 효과에 대해서는 이미 그 논의가 무성하므로 이 지면에서 특별히 언급하지 않겠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데이터 자유이용’이야말로 가장 유망한 청년실업(靑年失業) 문제 해소책일 수 있다는 것이다.

청년실업의 해결책을 ‘누군가가 월급(月給)을 주는 일자리 수 늘리기’로 간주하는 한, 해결은커녕 날이 갈수록 문제의 심각성만 깊어갈 것이다. 지금까지 인간 사회에서 행해지던 기존의 ‘일’의 상당 부분이 소멸하는데, 그 ‘일’을 위한 ‘일자리’가 늘어날 리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또 하나 분명한 사실은 ‘현재(現在)의 것을 지키는 데 최적화(最適化) 되어 있는 공무원(公務員)들의 사고(思考)’로는 새로운 일거리를 만드는 일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가능성 있는 해법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어 내게 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들에게 자유롭게 금맥을 캐낼 수 있는 데이터의 노다지를 열어 주고, 그 안에서 상식(常識) 밖의 모험을 벌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데이터 융합을 통한 새로운 부가가치의 창출은 누구나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뻔한 수준의 접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상식으로 보면 매우 엉뚱하고 이상한 시도에서 의외의 가치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4 산업혁명 사회를 견인할 데이터 기반 산업융합의 촉진 전략은 모든 유용한 데이터를 누구든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하는 환경에서, 이상한 꿈을 꾸는 젊은이들이 마음껏 자신이 꿈꾸는 세계를 만들어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2. 두 번째 키워드: 기본소득(基本所得)

기본소득(基本所得)이란 정부가 그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일정한 급여를 지급하는 것이다. 기본소득 제도의 필요성과 정당성, 그리고 그 방법에 대한 논의는 유보하기로 한다. 여기서 언급하고자 나의 소견은, 기본소득제의 시행이 데이터의 융합에 의한 산업융합 촉진에 긍정적 기여를 할 것이라는 점이다.

데이터의 개방이 충분한 수준에 이르고, 그 환경에서 젊은이들이 각자의 개성(個性)에 따라 열정(熱情)을 쏟아 새로운 융합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고 해도, 그 중의 많은 부분은 단시간 내에 경제적 부가가치의 생산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미래(未來)의 가치를 좇아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어도, 현재(現在)의 소비자들이 그것을 사 주지 않으면 돈벌이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융합 데이터의 과실은 직접 그 어려운 일을 해낸 당자들보다 그 결과물을 또 하나의 인풋(Input) 데이터로 활용할 후발주자(後發走者)들이 거두게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당장의 돈벌이가 되는 일만 추구한다면, 세상을 바꿀 데이터 융합은 결코 확산되어 갈 수 없다. 미래가치(未來價値)에 대한 투자는 당장의 돈벌이에 매달리지 않을 여유가 있을 때 이루어질 수 있다. 정부는 공공재원(公共財源)으로 미래가치를 일으키는 사업을 진흥시킬 수 있다는 미망(迷妄)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무엇이 미래가치인지 판단할 능력이 없는 이들이 (결과적으로) 과거회귀적(過去回歸的)인 일에 재원을 낭비하기보다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지금은 이상하게 보여도 미래에 쓸모 있을 일을 도모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나은 미래정책(未來政策)일 수 있다.

한국의 청년들이 개성과 창의성, 스스로 관심을 가지고 닦은 지식의 활용을 도모하기보다는 안정적 고정급여(固定給與)를 받을 수 있는 정규직(正規職)에 목매는 이유는 소득 면에서 그것이 아니면 ‘무(無)’일 수밖에 없는 시스템 속에 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 제도는 꿈을 가진 젊은이들이 그들의 일을 포기하지 않게 할 최소한의 안전장치(安全裝置)로 기능할 수 있다.

기본소득에 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은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놀고먹으려는 도덕적(道德的) 해이(解弛)’에 빠지게 하리라는 염려 때문이다. 반면, 기본소득제 도입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이들은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직장이 없어서) 놀고먹을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될 것이므로 그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한다. 나의 주장은 ‘놀면서도 먹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마련되어야 이 사회의 숨통이 트이고 미래가 열린다는 것이다.

3. 세 번째 키워드: 인성교육(人性敎育)

전통문화(傳統文化) 데이터와 씨름하는 여러 명의 젊은이들에게 물어보았다. “보수도 없는데 지금 그 일 (데이터를 수집하고 가공하는 일)을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이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융합 데이터는 디지털 세상에서 현재(現在)와 과거(過去)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가상현실(假想現實)로 구현될 것이고, 그 결실은 학교교육(學校敎育)뿐 아니라 가상현실 게임과 관광 레저 산업에서도 응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당장의 돈벌이로 이어지지 않는다. 지식(知識)과 산업(産業)의 융합은 어느 한 순간에 한두 사람의 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전문성(專門性)을 달리하는 여러 단계를 걸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누군가 큰돈을 벌기까지, 그 사이에는 돈벌이에 연연해하지 않는 이들의 사회봉사적(社會奉仕的) 노력이 있어야 한다.

내가 기본소득제에 찬성하는 이유는 이같은 젊은이들이 현재의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일을 지속하는 데 그것이 영향을 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소액(少額)의 기본소득금액이 이들의 생계(生計)를 도울 것이라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기본소득은 불로소득(不勞所得)이 아니라 이들이 하고 있는 ‘사회적 봉사’에 대한 보상(報償)으로 간주할 수 있다. 관점을 바꾸어, 기본소득의 수혜(受惠)를 받기 때문에 그에 대한 사회적 의무(義務)를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로 이행(移行)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내가 이 사회로부터 ‘소득 제로(0)’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할 수 있는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에,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로써 그 혜택에 보답한다는 사고는 한 달에 몇 십만 원 받는다고 해서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나’라는 개인, 나의 일, 우리 사회, 그리고 그 사회의 미래 비전 사이의 관련성(關聯性)을 성찰(省察)할 수 있어야 한다. 젊은이들이 스스로 이러한 사고와 판단을 할 수 있게 하는 교육(敎育)이 필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인성교육(人性敎育)은 바로 이러한 사고를 촉진하는 교육을 말한다. 권위에 복종하고 가진 자들의 대의명분에 속아주기를 강요하는, 그런 식의 ‘국민정신교육(國民精神敎育)’이 아니다.

4. 신대동사회(新大同社會)의 융합(融合) 프레임워크

내가 가치(價値)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좇아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회, 그 일이 만족스런 돈벌이로 이어지지 못해도 그로 인해 나의 가족까지 곤궁하게 만들 불안(不安)이 없는 사회, 내가 성공하지 못해도 누군가는 내가 한 것을 가지고 더 가능성 있는 모험을 할 수 있고, 그래서 공익(公益)에 대한 기여(寄與)를 했다는 자부심(自負心)을 가질 수 있는 사회, 주어지지 않은 것에 불만스러워하기보다 항상 새로운 기회가 있음에 감사(感謝)하고 분발(奮發)하여 성장(成長)할 수 있는 사회. 2500년 전 공자(孔子)가 그린 대동사회(大同社會)를 21세기의 데이터 사회에 투영해 본 그림은 이런 것이다. 그리고 ‘데이터 자유이용’, ‘기본소득’, ‘인성교육’을 그와 같은 21세기 신대동사회(新大同社會)의 요건으로 상정해 보았다.

이 세 가지는 이미 우리 사회의 여러 그룹에서 공공정책(公共政策)의 키워드로 강조되고 있는 것들이다. 문제는 그 가운데 어느 한 가지를 주장하는 이들이 다른 것에는 무관심하거나 심지어는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산업융합(産業融合)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이면서도 그것을 대기업(大企業)이나 할 수 있는 기술적 과제로만 보려는 시각, 기본소득은 좌파(左派)의 포퓰리즘으로, 인성교육은 우파(右派)의 체제 수호 전략으로 의심하는 사고 속에서는 각각의 집단이 강조하는 미래전략(未來戰略)의 어느 것도 발전의 걸음을 내딛기 어려울 것이다. 이질적(異質的)인 것 사이의 소통(疏通)과 융합(融合)이 미래사회의 발전전략임을 강조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 그것에 대비한다는 정책들 사이의 소통과 융합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인 듯이 보인다.


  1. 『전통문화』 44호 (전통문화연구회, 2018. 4.)